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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⑦ - 철도원

기사승인 2018.10.22  1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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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⑦ - 철도원
 
  
  - 제작 : 1956년, 이탈리아
  - 감독 : 피에트로 제르미
  - 배우 : 피에트로 제르미, 에도아르도 네볼라, 실바 코시나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16분
  - 수상 : 산세바스티안영화제 여우주연상, 최우수외국어영화상
         이탈리아영화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전후(戰後) 이탈리아 서민의 팍팍한 일상과 따뜻한 심정, 가족 구성원의 분열과 화해를 그린 ‘철도원(Il Ferroviere)’은 이탈리아 출신 피에트로 제르미(1914~1974)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걸작 중 하나다.
 
 그가 감독, 각본, 주연 등 1인 3역을 소화한 ‘철도원’은 철도노동자로서 권위적인 아버지, 참으로 인자하기 그지없는 현모양처 어머니, 백수로 빈둥거리는 큰아들, 혼전 임신과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늘 삐거덕거리는 딸, 가족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귀염둥이 막내 등 복닥거리는 다섯 식구의 캐릭터와 사건·사고를 치밀한 극사실주의 화법으로 묘사한 영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향한 마지막 위대한 표현의 하나로 간주 되는 ‘철도원’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흑백 화면 위에 도시 서민의 한없이 무거운 삶을 거짓 없이 투영시켜 놓고 있다. 일면 따스해 보이기도 하는 그 모습 너머로 모락모락 피어나는 애틋한 감정과 정서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가족의 분열과 화해를 말하다
 
 가부장적이며 비타협적인 인물 안드레아(피에트로 제르미)는 나이 오십이 된 철도기관사다. 성탄 전야를 맞은 밤, 술 좋아하는 안드레아는 힘든 노동을 마치고 단골술집 ‘우고의 바’에서 동료들과 어울려 한잔을 즐긴다. 거나해진 안드레아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안드레아의 아내 사라(루이자 델라 노체)는 가난한 살림에도 언제나 순종적이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자애로운 엄마다. 큰아들 마르첼로(레나토 스페치알리)는 실업자로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신세. 거기에 딸 줄리아(실바 코시나)는 혼전 임신 상태다. 머리가 다 큰 마르첼로와 줄리아는 아버지 안드레아와 늘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다. 귀염둥이 막내 산드리노(에도아르도 네볼라)는 공부는 잘 못하지만 눈치가 말짱하고 어린 것이 나름 속도 깊으며 자존심도 있다. 자식 중에서는 유일하게 안드레아를 따르며 아버지를 영웅처럼 여기는 존재다.
 
 딸 줄리아가 산기를 느끼자 엄마 사라는 아버지를 부르기 위해 산드리노를 선술집에 보낸다. 그러나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미를 지닌 안드레아는 늦게 귀가하고 결국 줄리아는 사산한다. 싸늘한 가족들의 태도와 딸의 사산이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안드레아는 깊은 자괴감으로 고통받는다. 다음 날,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기관차를 몰던 안드레아는 철로에 뛰어든 젊은 사내를 치어 죽이는 사고를 저지르고 만다.
 
 남편과의 불화를 겪으며 이혼을 암시하는 딸, 도박에 빠져 엄마의 패물에 손을 대는 큰아들로 인해 마음고생을 겪던 아내 사라는 남편의 사고 소식에 또 한 번 절망한다. 사고 이후 석탄보일러 화차 기관사로 좌천된 안드레아는 봉급마저 삭감되어 어려운 나날을 보낸다. 마음 편할 일 없는 안드레아는 큰아들과 멱살잡이를 하고, 남자관계가 복잡한 딸을 무차별 구타한다. 그날부터 두 자식은 아버지를 멀리한다. 그 무렵 철도노조는 근무시간과 교대문제 등을 이슈로 내걸고 파업에 돌입한다. 기관사 부족으로 열차가 멈출 위기에 놓인 순간 빚 독촉에 시달리던 안드레아는 동료 기관사 리베라니(사로 우르치)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열차에 오른다.
 
 동네 아이들은 산드리노를 배신자의 아들이라 놀리며 왕따시킨다. 대체근무자로 열차운행에 가담한 안드레아를 보는 동료들의 시선도 몹시 따갑다. 모두로부터 외면받는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하던 안드레아는 일도 나가지 않고 잠적해 버린다. 막내 산드리노는 리베라니 아저씨와 함께 아버지를 찾아 나서고,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한 여자와 취해 떠들고 있는 안드레아를 발견하지만 그냥 발길을 돌린다.
 
 배신자의 아들로 낙인찍혀 더 이상 친구들과 놀 수 없게 된 산드리노는 아버지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마음먹고 공부에 열중한다. 선생님으로부터 합격점수를 받은 산드리노는 아버지가 있는 술집을 찾아 집으로 돌아가자며 손을 이끈다. 상심에 빠져 술로 나날을 보내던 안드레아는 아들 산드리노의 모습에 힘을 얻어 ‘우고의 바’로 향한다.
 
 오늘도 시끌벅적한 ‘우고의 바’. 안드레아가 문을 여는 순간 실내는 정적에 싸여버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료들은 안드레아를 반갑게 맞으며 묵은 감정을 털어낸다. 술잔이 오가고 오랜만에 ‘우고의 바’에는 기타와 노랫소리가 울린다. 그러나 이미 심신이 피폐해진 안드레아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안드레아가 병상에 누워 생활한 지 3개월이 흘렀다. 다시 성탄 전야가 돌아왔지만 안드레아와 아내, 막내 산드리노 뿐인 집안은 쓸쓸하기만 하다. 모처럼 기운을 차린 안드레아는 세 식구만의 조촐한 식탁에 분위기를 띄워 보려 애쓴다. 그 순간, 절친 리베라니와 큰아들 마르첼로가 찾아온다. 깊은 포옹을 나누는 두 부자. 이어서 직장 동료들과 이웃 사람들이 선물꾸러미를 들고 하나둘 몰려들기 시작한다. 흥분한 안드레아는 포도주를 따고 집안은 일순간에 성탄 파티장으로 변한다. 안드레아는 기타를 치며 즐거워하고, 늘 그늘이었던 아내 사라의 얼굴에도 모처럼 환한 미소가 찾아온다. 한창 흥이 무르익어갈 무렵,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로 줄리아의 음성을 듣는 안드레아의 감정은 더욱 북받친다.
 
 파티가 끝나자 뜻있는 성탄을 보낸 안드레아와 아내는 서로에게 감사한다. 아내의 흰머리가 눈에 들어온 안드레아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안드레아는 아내에게 기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안드레아는 홀로 침대에 누워 기타를 뜯으며 주방에서 커피를 준비하는 사라를 향해 앞으로의 행복한 생활을 이야기한다. 잠시 후 기타 소리는 점차 희미해지고 안드레아는 마치 침대에 누워 잠자듯 조용히 숨을 거둔다.
 
누구의 잘못도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막내아들 산드리노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즉 ‘철도원’은 꼬마 산드리노의 눈으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을 이야기하는 영화다. 산드리노는 아버지와 엄마, 누나와 매형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해체된 가족의 매듭을 다시 묶는 역할을 한다. 결말에 이르러 분열됐던 가족들은 오래된 감정과 오해를 씻고 재회한다. 마치 이런 것이 가족이라는 듯, 감독은 그 과정에서 누구의 잘잘못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안드레아의 죽음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학교를 향해 달려가는 산드리노의 해맑은 얼굴이 화면 가득히 클로즈업되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내일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출연 당시 여덟 살 소년이었던 에도아르도 네볼라는 1954년부터 1965년까지 15편의 영화에 출연했을 만큼 이탈리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아역 배우였다. 그는 막내 산드리노 역을 맡아 귀엽고 유머 있으며, 때로는 악동 같은 깜찍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가 태어나던 해인 1948년에 발표된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 도둑’에 출연했던 아홉 살 소년 엔조 스타이오라의 모습과 비교하며 감상하면 더 좋을 듯하다. 올해 70세가 된 그는 아직도 배우, 작곡가,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50년대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화는 서정성 짙은 음악으로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는 특징을  보여준다. ‘철도원’의 ‘La Dedico A Te' 역시 그런 곡 중 하나.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헤아리는 듯, 애조 띤 멜로디가 두드러지는 이 주제곡은 이탈리아 영화음악의 대부 카를로 루스티켈리 작품이다. 영화는 못 보았더라도 주제곡은 꼭 한 번 들어보길 권한다. 1947년 제르미가 감독한 ‘잃어버린 청춘’을 계기로 영화음악에 입문한 그는 제르미 감독이 타계할 때까지 그가 만든 모든 영화의 음악을 작업했다. 제르미가 감독·주연한 ‘형사(1959)’의 삽입곡 ‘Sinno Me Moro(죽도록 사랑해)’,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주연 ‘부베의 연인(1963)’ 주제곡도 그의 작품이다. 민중의 정서를 가장 잘 반영했다는 그에게 대중들은 ‘이탈리안 멜로디’라는 자랑스러운 닉네임을 붙여주었다.
 
지난날 우리의 자화상을 보다
 
 ‘철도원’의 영상 한 컷, 한 컷에는 마치 지난날 우리의 자화상을 보듯 마음속 깊이 와 닿는 그 무엇이 있다. 특히 선술집에서 삶의 고단함을 위로받는 가난한 가장 안드레아는 어려운 시절을 살다 간 우리들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한다. 망각을 일깨우는 영화의 힘에 또 한 번 감탄한다.
 
 저녁상에 오른 반주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라는데 과연 내 술잔의 절반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오늘따라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삼삼하다. 눈앞이 흐릿했다. 확실히 영화 탓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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