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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⑰ - 이브의 모든 것

기사승인 2019.02.01  11: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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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⑰ - 이브의 모든 것
 
 
  - 제작 : 1950년, 미국
  - 감독 : 조셉 L. 맨키위즈
  - 배우 : 베티 데이비스, 앤 백스터, 셀레스데 홀름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38분
  - 수상 : 아카데미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등 6관왕
             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여우주연상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수상했거나 노미네이트(후보 선정)된 영화가 반드시 뛰어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14개 부문 후보로 지명되었으며 그중 6개의 타이틀을 차지했다면 얘기는 좀 달라지지 않을까.
 
깨지지 않는 아카데미의 기록
 
조셉 L. 맨키위즈 감독의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은 제23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14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라는 대 기록을 세운 영화다. 저 유명한 윌리엄 와일러감독의 ‘벤허’는 아카데미에서 11개의 상을 휩쓸었지만 노미네이트 된 것은 12개 부문이었다. ‘타이타닉’과 ‘라라랜드’가 1998년과 2017년, 각각 14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타이를 이루었을 뿐, 아직까지 그 이상의 기록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브의 모든 것’은 배우, 감독, 극작가, 평론가, 제작자가 지배하는 브로드웨이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추악한 욕망과 음모의 그림자를 파헤치고 있다.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한 여인의 파렴치하고 소름끼치는 이야기가 관객으로 하여금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전성기를 보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베티 데이비스의 카리스마, 정상의 자리를 넘보고자 위선으로 덧씌운 천사의 가면을 쓰고 음모를 꾸미는 앤 백스터의 내밀한 연기, 막 신인의 티를 벗어내고 단역으로 출연하여 군계일학의 미모를 뽐내는 마릴린 먼로의 풋풋한 모습,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주옥같은 대사의 향연, 여운을 남기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 한 편의 영화가 주는 재미와 감동은 종합선물 세트 그 이상이다.
 
‘천사의 얼굴’로 덧씌운 ‘악마의 심장’
 
브로드웨이를 빛낸 최고의 스타에게 주어지는 ‘사라 시몬스 상’ 수상식장. 전설적인 배우 마고 체닝(베티 데이비스), 그녀의 연인이자 연출가인 빌 샘슨(게리 메릴), 극작가 로이드 리처드(휴 말로위)와 그의 아내 카렌(셀레스데 홀름), 평론가 에디슨 드윗(조지 샌더슨), 제작자 맥스 페비언(그레고리 라토프 ) 등 쟁쟁한 연극계 관계자와 원로 배우들이 모인 가운데 연극협회는 역대 최연소 수상자로 이브 해링턴(앤 백스터)을 지명한다. 그리고 영화는 스물네 살의 신인 이브가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회상하는 신으로 이어진다.
 
10월의 어느 날. 대 스타 마고의 분장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배우지망생 이브와 마주친 카렌은 그녀를 마고에게 소개시킨다. 네 살에 데뷔하여 이제는 브로드웨이 최고 스타의 지위에 오른 마고. 그녀는 평소 팬들의 수준을 낮잡아 보는 콧대 높고 자존심 강한 인물이지만 자신이 출연한 모든 작품을 섭렵했으며 자신을 인생의 롤 모델로 삼는다는 이 젊은 아가씨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브는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소상히 이야기한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 남편의 죽음 등 불운했던 과거사를 털어놓으며 마고와 같은 대배우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이야기한다. 극도로 겸손하고 단정하며 품위까지 있어 보이는 이브에게 마음이 끌린 마고는 그녀를 자신의 비서로 채용하여 곁에 두게 된다.
 
그날 이후, 마고와 이브는 행복한 나날을 공유한다. 이브는 마고의 연극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한편, 마고의 수족이 되어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의 모든 것을 챙긴다. 항상 한 박자 빠르게 반응하고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는 이브에게 주위 사람들은 큰 호감을 보인다. 단 한사람, 마고의 시중을 도맡아 온 집사 버디(셀마 리터)는 이브를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그럴수록 이브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동정과 공감은 더 커져만 간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시간이 흐를수록 거침이 없고, 시키지 않은 일에도 나서려 드는 이브의 당돌함에 마고는 조금씩 경계심을 갖게 된다.
 
남자친구 빌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날. 빌과 이브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목격한 마고는 질투심에 빠진다. 커리어의 정점에 올랐으나 나이 마흔 줄에 들어선 마고는 자신보다 여덟 살 어린 빌과의 확신 없는 사랑 때문에 늘 불안감을 느껴온 터. 평소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에 과잉반응을 보여 온 마고는 자신의 연하남이 한참 젊은 이브와 노닥거리는 꼴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친구들은 마고가 괜한 신경질을 부리는 것으로 여기지만 마고의 직감은 이브의 행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반면 유능하고 붙임성 있는 이브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그러나 천사의 얼굴을 가진 이브가 사실은 흑심을 품고 마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이브는 항상 호의적인 카렌을 만나 자신이 마고의 대역배우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청한다한걸음 더 나아가 이브는 신인배우 캐스웰(마릴린 먼로)의 오디션 장소에 나가 마고가 하기로 했던 역할마저 가로챈다빌과 로이드제작자 맥스는 오디션에서 보여준 이브의 연기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지만 비위짱이 뒤틀린 마고는 불만을 폭발시킨다
  
마고의 히스테리에 염증을 느낀 카렌은 이브와 한통속이 되어 마고를 골탕 먹이기로 한다뉴욕에서 두 시간 떨어진 교외로 여행 왔다 돌아가는 날카렌은 고의로 자동차 기름을 뽑아버림으로써 마고가 제시간에 공연장에 도착할 수 없게 만든다이 틈에 이브는 마고 대역으로 무대에 올라 열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주위의 호평에 한껏 고무된 이브간이 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그녀는 급기야 빌을 유혹하기에 이른다그러나 마고를 깊이 사랑하는 빌은 이브의 유혹을 단칼에 거절한다이브는 분에 겨워 부들부들 떠는데우연히 이브의 호텔방을 찾은 평론가 드윗은 이 모든 광경을 엿보게 된다
  
이브의 검은 속을 알게 된 드윗은 그날부터 이브를 발판삼아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야심을 키운다드윗은 그녀와 한통속이 되어 동맹을 맺는다언론기고를 통해 이브 띄우기에 나선 드윗은 이브의 말을 인용하여 마고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퍼뜨린다.
  
그동안 이브에게 호감을 보여 왔던 주위 사람들은 발칙한 이브의 태도에 분노한다그 순간 빌은 마고에게 프러포즈를 하는 것으로 그녀를 위로한다카렌도 자신이 이브에게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알게 되고마고에게 몹쓸 짓을 했던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사람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자 이브는 본격적으로 악녀본색을 드러낸다카렌을 찾아간 이브는 로이드의 새 작품에 자신이 캐스팅되도록 돕지 않으면 기름사건을 발설하겠다며 협박까지 한다.
  
한편 빌의 청혼을 받은 마고는 너무 행복하다이제는 많은 것을 내려놓고 평범한 여자의 삶을 살아갈 희망에 부푼 마고그녀는 미련 없이 로이드의 새 작품 출연 제의를 고사한다대신 그 역할은 이브의 차지가 된다
 
새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날, 한껏 기세가 오른 이브는 드윗에게 극작가 로이드와 결혼할 것이라고 밝힌다. 빌에게 구애했다 거절당한 이브는 곧바로 카렌의 남편 로이드를 가로채기 위해 또 다른 음모를 꾸며왔던 것.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드윗은 이브의 뺨을 갈기며 소리친다. “나를 뭐로 보기에, 네깟 것이 날 데리고 놀아. 너는 오늘부터 내 소유야!”
 
드윗은 암암리에 이브의 모든 신상을 털어왔다. 그녀의 이름이 가명이라는 것, 결혼한 적 없는 처녀였으며 그동안의 모든 이야기가 거짓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드윗은 이 사실을 언론에 터뜨릴 수 있다며 협박한다. 이브는 굴복하고 만다.
 
다시 화면은 시상식장으로 돌아온다. 이브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또 한 번 가증스러운 얼굴로 일생일대의 연기를 한다. 겸손과 품위를 담아 자신 주변에 있던 모든 이에게 공을 돌린다는 수상소감을 전한다. 이를 지켜보는 마고와 빌, 카렌, 로이드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객석의 박수를 뒤로 하고 이브는 서둘러 식장을 빠져나온다.
 
호텔로 돌아온 이브는 자신의 방에 잠들어 있는 한 소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브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소녀의 이름은 피비(바바라 베이츠). 그녀는 자신이 ‘이브 해링턴 팬클럽’ 회장이며 이브의 모든 것을 보고서에 담기 위해 몰래 들어왔다고 밝힌다. 이 당돌한 소녀는 호텔방을 청소하겠다는 등 마치 이브가 마고를 처음 만났을 때 보인 것과 같은 행동을 한다.
 
잠시 후, 드윗은 이브가 놓고 간 트로피를 전해주기 위해 호텔로 온다. 욕실에 들어간 이브 대신 피비가 드윗을 영접한다. 드윗은 소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듯, 피비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돌아간다. “피비. 당신도 언젠가는 이런 상을 받고 싶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상을 받았는지 이브에게 물어봐요. 그녀는 다 알고 있으니까.” 밖에 누가 왔냐는 이브의 물음에 피비는 택시기사가 왔었다고 적당히 둘러댄다.
 
텅 빈 호텔방. 피비는 스스럼없이 이브가 벗어 놓은 화려한 드레스를 자신의 몸에 걸친다. 그리고 트로피를 두 손에 받쳐 들고 거울을 향해 돌아선다. 마치 시상식의 주인공이 된 듯 행복감에 빠져 거울을 바라보는 피비. 순간 그녀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번져간다.
 
영화는 그렇게 또 다른 ‘이브’의 출연을 암시하면서 페이드아웃(Fade-Out) 된다.
 
베티 데이비스, 클래스가 다르다
 
‘이브의 모든 것’은 ‘베티 데이비스의, 베티 데이비스에 의한, 베티 데이비스를 위한’ 영화다.
 
1930~40년대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베티 데이비스(1908~1989)는 모름지기 스타의 포스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보여준 사람이다.
 
‘데인저러스(1936)’ ‘제저벨(1938)’로 두 번의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따냈고, 이후 1943년까지 5회 연속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생애 통산 모두 열 차례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막강 연기력을 보여준 베티 데이비스. ‘왕눈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유난히 큰 눈망울로 일세를 풍미한 그녀는 클래스가 다른 배우였다.
 
‘이브의 모든 것’은 베티 데이비스가 마흔을 갓 넘긴 나이에 출연한 작품이다. 전성기를 조금 비켜간 시점이었지만 ‘이브의 모든 것’은 그녀 필모그래피의 정점에 놓여 있는 영화다. 한마디로 명불허전, 미친 존재감이 따로 없을 그녀의 연기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허스키한 목소리, 반쯤 감긴 듯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 깊게 뿜어내는 담배연기, 술 취한 듯 흐느적거리는 육체, 퇴폐적이고 도도한 카리스마가 넘쳐나는 그녀의 연기는 ‘관록’과 ‘프로페셔널’이란 단어의 의미를 실감케 한다.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할리우드 고전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여배우’ 리스트에서 캐서린 헵번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평생 네 번 결혼했으며 이 영화에 같이 출연한 게리 메릴(빌 샘슨 역)은 그녀의 네 번째 남편이다. 영화에서 보여준 거침없는 연기력처럼 그녀는 은퇴 후에도 영화계의 성차별과 불합리한 관행은 물론 인종 차별 문제 등에 끊임없이 저항한 여전사였다.
 
교활하고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이브’를 연기한 앤 백스터(1923~1985)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선한 외모의 소유자다. 뉴욕 상류층 가문 출생으로 순종, 단정함, 우아함, 겸손과 헌신의 이미지를 지녔다. 그런 평소의 이미지는 그녀가 ‘이브의 모든 것’에서 보여준 악녀 캐릭터와 대비돼 더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1946년 영화 ‘면도날’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나는 고백한다(1953)’ ‘십계(1956)’ 등에 출연했다. 61세 되던 해 뉴욕거리를 걷던 중 뇌일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이브의 원죄(原罪)
 
1950년, 할리우드는 연예계의 명과 암을 다룬 화제작 두 편을 두 달 사이에 잇달아 공개했다. 그중 하나가 한물간 여배우의 광기어린 집착과 몰락을 그린 ‘선셋대로’였으며 또 다른 작품이 오늘 소개한 ‘이브의 모든 것’이다.
 
‘선셋대로’는 시대 흐름에 순응하지 못하고 화려했던 과거의 삶에 매몰돼 비극적인 길을 걷는 늙은 여배우 노마 데스몬드(글로리아 스완슨)의 씁쓸한 초상을 그린 영화다. ‘이브의 모든 것’에는 두 스타일의 주인공이 나온다. 연예계의 정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인생의 평화를 얻게 되는 마고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지만 결코 행복할 수 없는 이브가 그들이다.
 
노마 데스몬드가 인생의 황혼에서 시대의 변화를 인정 못하고 파멸했다면 이브는 이제 막 탄탄대로에 진입한 청춘이다. 하지만 이브 역시 자신을 꼭 빼닮은 악의 화신과 대면함으로써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이브’는 인간의 원죄(原罪)를 상징한다. 원죄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낙인(烙印)처럼 소멸하지 않고 반복된다. 또 다른 이브의 출현을 예고하는 영화의 라스트신이 유독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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