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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⑲ - 워터프론트

기사승인 2019.02.21  09:3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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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⑲ - 워터프론트
 
 
  - 제작 : 1954년, 미국
  - 감독 : 엘리아 카잔
  - 배우 : 말론 브란도, 에바 마리 세인트, 칼 말든, 리 J. 콥스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08분
  - 수상 : 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본, 남우주연, 여우조연, 촬영,
          미술, 편집상 / 베니스영화제 은사자상 / 뉴욕평론가협회 
          작품, 감독, 남우주연상
 
 
 
 2004년 7월 1일, 할리우드의 큰 별 말론 브란도(1924~2004)가 사망하자 프랑스 르몽드지는 이례적으로 1면에 사진과 함께 그를 애도하는 글을 싣고 3개 면에 걸쳐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영화의 연기는 말론 브란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In film acting, there is before Brando. and there is after Brando.)’는 최고의 비평을 담아 부고 기사를 내보냈다.
 
말론 브란도(1924~2004).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로 꼽히는 그에게는 ‘연기 교과서’ ‘연기 본좌’ ‘메서드 연기의 달인’ ‘반항아 연기의 원조’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1944년 데뷔한 이래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서 있었고 역대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범접 불가의 대배우였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에서 야수 본능을 지닌 천하의 망나니 같은 인간 스탠리 , ‘대부(1972)’에서 시실리 이민자 출신 마피아로 피비린내 나는 암흑가를 이끄는 보스 돈 꼴레오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3)’에서 섹스중독에 빠진 변태 남성 폴, ‘지옥의 묵시록(1979)’에서 전쟁의 광기에 빠진 퇴역장교 커츠 대령 역을 맡는 등 말론 브란도는 독특한 자아와 일그러진 내면을 지닌 인물들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성격파 배우였다.
 
체제 반항적 이미지의 원조
 
1954년 발표된 ‘워터프론트(On The Waterfront)’는 스물아홉 살 청년 말론 브란도에게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이다(앞서 ‘혁명아 자파타(1952)’로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대부’로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는다). 말론 브란도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반항적이며 우수에 찬 캐릭터, 집단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고독한 영웅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전율적이다. 명배우 폴 뉴먼은 “그는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룬 것을 불과 스물아홉 살에 모두 이뤄냈다”라며 동경과 질투 어린 감정을 드러낸 바 있다. ‘고독한 반항아’의 상징이었던 제임스 딘의 연기도 말론 브란도의 것을 따라 한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에 이르면 더 이상 할 말을 잃게 된다. 그만큼 말론 브란도는 완벽한 배우였다.
 
‘워터프론트’는 조직의 공동이해를 위해 잘못된 신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양심의 부름에 응답하여 부조리와 싸우는 길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자’의 고뇌와 결단을 그린 작품이다. 현실감 넘치는 표현기법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명장 엘리아 카잔의 감각적인 연출과 말론 브란도는 물론 칼 말든, 리 J. 콥스, 로드 스타이거 등 당대 명배우들의 환상조합이 빛나는 ‘워터프론트’는 상처 입은 미국 사회 이면의 속살을 드러낸 사회성 짙은 드라마다. 1948년 뉴욕부두에서 발생한 실제 살인사건이 영화의 모티브가 됐다.
 
노조집단의 횡포를 고발하다
 
부두의 비릿함이 배어나는 뉴욕. 전직 복서 출신 테리 말로이(말론 브란도)는 이곳 부두노조 우두머리 자니 프렌들리(리 J. 콥스)의 하수인이 되어 건달처럼 살아간다. 어느 날, 테리는 부두 노동자인 친구 조이를 아파트 옥상으로 불러들인다. 그런데 잠시 뒤 조이는 누군가에게 떠밀려 추락사한다.
 
부두의 노동자들은 선박화물을 옮기는 작업으로 힘겨운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들 노동자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자니와 그 일당들에 짓눌려 늘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뇌물과 탈세, 폭력을 일삼는 자니 패거리는 노조의 권한을 이용해 막대한 부당이익을 취득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일자리 배당을 좌지우지하며 마피아 못지않은 횡포를 부린다.
 
노조에 비협조적이었던 조이는 두목 자니의 지시로 비참한 죽임을 당한 것이다. 조이가 살해당할 것이라고 전혀 생각 못 했던 테리는 자신이 친구를 옥상으로 불러냈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하지만 테리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좋은 일자리를 배정받는다.
 
노조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교구신부 베리(칼 말든)는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조이의 여동생이며 수녀지망생인 이디(에바 마리 세인트) 역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부두에 남아 오빠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베리 신부와 이디는 노조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을 모아 교회에서 회합을 갖는다. 테리는 두목 자니의 지시에 따라 회합을 염탐하기 위해 교회로 향한다. 베리 신부는 노동자들을 향해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말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자니의 보복이 두려운 노동자들은 침묵한다.
 
부두 노동자들에게는 지켜야 할 두 가지 수칙이 있다. 그것은 부두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 노동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귀를 막고, 입을 닫아야 한다’는 것. 이 수칙을 어긴 노동자는 예외 없이 배신자로 낙인찍혀 왕따 당하고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도 입을 떼지 못한다. “싫지만 밀고는 할 수 없다”는 노동자 듀간(펫 헤닝)에게 베리 신부는 “진실을 밝히는 것은 밀고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시각, 자니 일당은 집회가 열리는 교회를 습격하여 테러를 가한다. 자니의 수하들은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채 노동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한다. 그 자리에 있던 테리는 이디를 도와 폭력현장을 벗어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이디는 테리에게 진실을 밝혀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하지만 테리는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선을 긋는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깊어갈수록 테리는 더 많은 괴로움과 가책으로 고통받는다.
 
교회에서 테러를 당한 노동자 듀간은 베리 신부에게 진실을 밝히기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약속한다. 한편 테리는 워터프론트(부두) 치안위원회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받는다. 그러자 자니는 이디와 사랑에 빠져있는 테리에게 똑바로 처신하라고 경고한다.
 
위원회에 나가 양심선언을 한 듀간도 조이처럼 죽임을 당한다. 자니 일당이 사고사를 가장하여 듀간 머리 위로 화물더미를 떨어뜨려 깔려 죽게 만든 것이다. 갈수록 악랄해지는 자니의 만행을 본 테리의 마음은 크게 요동친다. 결국 테리는 베리 신부를 만나 마음에 쌓여있는 것들을 토해낸다. “모든 것을 불어버리면 내 인생은 끝난다”는 테리의 말에 신부는 “침묵하면 당신의 영혼은 썩어버린다”고 되받는다. 신부는 양심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것을 주문한다. 용기를 낸 테리는 이디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게 되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이디는 자리를 뛰쳐나간다.
 
테리의 심리상태가 수상스러운 자니는 테리의 입을 틀어막을 궁리를 한다. 자니는 자신의 오른팔이자 테리의 친형인 찰리(로드 스타이거)를 불러 뒤탈 없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한다.
 
찰리는 테리에게 좋은 일자리로 옮겨 주겠다며 달래고 권총을 꺼내 협박도 해보지만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테리는 복서시절 형이 개입된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형을 원망한다. 죄책감을 느낀 찰리는 테리의 손에 자신의 권총을 쥐여주며 돌려보낸다.
 
이디는 테리의 방문을 거절한다. 그의 고백으로 상처를 받은 이디는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테리를 만나려 하지 않는다. 이디는 문을 부수고 들어온 테리와 몸싸움을 벌이지만 이내 그의 격한 키스에 그대로 허물어지고 만다. 바로 그때 창밖에서 들려온 소리를 듣고 뛰쳐나간 두 사람은 비참하게 살해된 찰리의 시신을 목격한다.
 
마침내 청문회가 열린다. 자니 일당은 온갖 변명을 늘어놓으며 위기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청문회에 출두한 테리는 부두의 불문율을 깬 배신자가 되어 노동자들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테리는 부두 어디에도 자신이 설 땅이 없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다음날, 테리는 하역 작업을 하기 위해 부두로 향한다. 그러나 자니 일당은 오직 테리에게만 일을 배정하지 않으며 조롱한다. 테리 주변을 둘러싼 노동자들 역시 여전히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뿐 누구도 같은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테리는 홀로 노조사무실을 찾아가 자니를 불러낸다. 둘 사이에 치고받는 격투가 벌어지고 자니 패거리가 가세해 테리에게 몰매를 가한다. 무자비한 매질 끝에 피투성이가 된 테리의 모습을 본 노동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격분한 노동자들은 힘을 합쳐 자니와 그의 일당을 제압한다. 베리 신부와 이디는 테리를 부축하면서 쓰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한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하역 창고를 향해 나아가는 테리. 가물거리는 눈으로 휘청거리며 걷는 테리의 뒤로 그를 따르는 노동자가 하나둘씩 늘어난다. “모두 돌아오라”고 외치는 자니의 고함은 불어난 노동자들의 발자국 소리에 묻혀버린다. 자니 일당은 부두광장에 버려지듯 남겨지고 노동자들이 모두 들어간 일터의 철문은 굳게 닫힌다.
 
감독 스스로 내린 면죄부
 
엘리아 카잔은 ‘신사협정(1947)’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 ‘혁명아 자파타(1952)’ ‘에덴의 동쪽(1955)’ ‘초원의 빛(1961)’ 등 올드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주옥같은 작품들을 빚어낸 최고의 감독이다. 그는 네오리얼리즘 기법의 사실적 영상과 배역의 내면심리를 최대로 승화시키는 뛰어난 능력으로 할리우드영화의 폭과 깊이를 확장시킨 인물이다. 자신이 만든 연기스쿨이자 메서드 연기의 산실인 ‘액터즈 스튜디오’를 통해 말론 브란도, 제임스 딘, 몽고메리 클리프트, 폴 뉴먼, 워렌 비티, 로드 스타이거, 나탈리 우드, 캐럴 베이커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키워내는 공로도 세웠다.
 
‘워터프론트’는 ‘배신’과 ‘정의’에 관한 영화이자 감독 엘리아 카잔(1909~2003)의 ‘자기변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엘리아 카잔은 공산주의자를 색출하는 매카시(McCarthy)광풍이 미국을 강타하던 1952년, 하원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출두해 자신의 과거 공산당 활동 이력을 자백하는 한편 동료 여덟 명의 이름을 밀고하는 대가로 살아남은 인물이다.
 
하루아침에 밀고자로 전락한 엘리아 카잔은 이후 평생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1999년 아카데미 조직위원회는 논란 끝에 엘리아 카잔이 영화계에 끼친 공적을 인정하여 명예상을 수여했지만 시상식에서 일부 후배 영화인이 박수와 기립을 거부하거나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사실은 엘리아 카잔의 행적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반영한다.
 
‘워터프론트’는 엘리아 카잔이 밀고행위 후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재기를 위해 내놓은 작품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흥행과 비평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8개의 오스카를 휩쓸었다. 그러나 영화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엘리아 카잔의 비겁한 이력은 항상 그를 괴롭히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감독으로서 그가 가진 재능에 대해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지만 과거 행적 때문에 그의 영화를 평가절하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 부담이 많았을 엘리아 카잔은 절치부심하며 끊임없이 명예회복을 노려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노력의 일환으로 ‘워터프론트’의 영화화에 집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엘리아 카잔이 1988년 출간한 자서전을 보면 ‘워터프론트’를 만든 동기의 순수성에 대해 의심치 않을 수 없다. 그는 ‘워터프론트’로 아카데미상을 받은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나는 그날 밤 복수의 달콤한 맛을 봤고, 그 맛을 즐겼다. ‘워터프론트’는 바로 내 이야기다. 나는 세상을 향해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나를 비판하는 놈들이 처박혀서 엿을 먹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큰소리로 외쳐대는 기분이었다.”
 
부두의 불문율을 깨고 스스로 밀고자가 된 영화 속 말론 브란도는 엘리아 카잔의 또 다른 분신인 셈이었으며 ‘워터프론트’는 자신의 밀고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영화적 변명이자 면죄부였던 것이다. 노골적으로 스스로의 죄를 사면한 엘리아 카잔의 그 뻔뻔함이란.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독일, 1827~2015)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나치 무장친위대원으로 복무했던 과거의 전력을 이실직고하여 충격을 준 바 있다. 사람들은 그의 용기 있는 참회를 받아들였다. 용서란 그렇게 받는 것이다. ‘물은 셀프’가 있지만 ‘용서는 셀프’로 하는 것이 아니다. 엘리아 카잔은 이 단순한 진리를 몰랐거나 아니면 외면했다. 딱한 일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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