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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㉔ - 나의 아저씨

기사승인 2019.04.11  15: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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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㉔ - 나의 아저씨
 
 
  - 제작 : 1958년, 프랑스·이탈리아
  - 감독 : 자크 타티
  - 배우 : 자크 타티, 장 피에르 졸라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115분
  - 수상 :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아카데미 영화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프랑스 코미디영화의 대부 자크 타티(1907~1982). 마임연기자를 거쳐 배우,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등 팔방미인의 활약을 했던 그는 ‘토키시대의 채플린’이라 불릴 만큼 현대 코미디역사에 있어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타티의 영화는 소위 엎어지고 자빠지는 슬랩스틱 범주의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코미디와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그는 단순 몸 개그를 떠나 사운드와 세트, 도구 등 스크린 안에 존재하는 모든 영화적 요소들을 웃음의 원천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그의 코미디는 관객의 시각과 청각, 관측기술에 의존한다. 그에게 있어 대사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무성영화로 착각이 들 만큼 극도로 절제된다. 대신 소음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물의 소리로 관객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시도한다. 특히 우연처럼 일어나는 연쇄적 행동들을 정교한 프레임과 타이밍으로 엮어 웃음을 유발하는 감각은 가히 천재적이라 할 만하다. 오늘은 그의 대표작 ‘나의 아저씨(Mon Oncle)’를 감상한다.
 
현대사회를 향해 던지는 유쾌한 풍자
 
공사장 소음으로 시끄러운 프랑스의 어느 한 도시. 더러운 뒷골목에 개들이 활개를 치며 놀고 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장롱 밑의 먼지 같은 존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윌로(자크 타티)씨는 이 마을의 허름한 건물 3층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독신남이다.
 
무너져 내린 벽돌담과 도로를 사이에 둔 건너편 신시가지에는 윌로의 누이(아드리안느 세르반티)와 매형 아르펠(장 피에르 졸라), 조카 제라드(알랭 베 코르)가 살고 있다. 윌로 씨 누이 가족은 모든 것이 자동화된 초현대식 저택에 살며 전자동 시스템이 주는 문명의 이기를 만끽하고 있다.
 
자동으로 열리는 현관의 문, 버튼만 누르면 요상한 소리를 내며 파란색 물을 내뿜는 물고기 모양의 분수, 규격화된 스테이크를 자동으로 구워내는 조리 기구와 로봇청소기 등 각종 편의시설로 장식된 매형의 집은 그것들이 내는 소음으로 종일 시끄럽다.
 
반면 길 건너 윌로 씨의 동네는 이와는 다른 이유로 늘 시끌벅적하다. 마치 미로를 연상케 하는 만화 같은 윌로 씨의 집(위 사진) 앞은 카페, 푸줏간, 식당과 재래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종일 소란스럽지만 그래도 삶의 활기와 사람 사는 냄새가 넘치는 정겨운 곳이다.
 
윌로 씨는 학교를 마친 조카 제라드를 누이의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오늘도 담배 파이프를 물고 중절모와 트렌치코트, 칠푼바지 차림의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길을 나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라드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이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 제라드가 어른들에게 짓궂은 장난을 칠 때마다 삼촌과 조카는 마치 공범이라도 된 양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가슴을 졸인다.
 
제라드는 집에 돌아오면 손 닦아라, 신발 벗어라, 옷 걸어 놔라, 방 어지럽히지 마라 등등 잔소리 듣는 게 너무 싫다. 마치 진공 포장된 듯 티끌 하나 없는 새집(아래 사진)에서 엄마는 조금의 더럽힘도 용납 못한다.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더러운 꼴을 못 보는 윌로 씨의 누이는 남편 승용차가 출발하면 뒤를 쫓아가 범퍼를 닦을 정도로 청결에 집착한다.
 
정원의 분수는 철저히 과시용이다. 손님이 올 때만 켜고, 손님이 가면 바로 끈다. 정원에서는 함부로 걷지도 못한다. 정확히 디딤돌만 밟아야 한다. 부부는 지인들에게 집 구경을 시켜주며 오토매틱 제품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는 낙으로 산다. 문고리 하나라도 망가질까봐 숨죽여 살지만 아르펠 부부는 럭셔리한 자신들의 삶에 무한한 자부심과 행복을 느낀다.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윌로 씨는 비가 오지 않는 데도 버릇처럼 우산을 갖춰들고 고물 자전거와 함께 집을 나선다.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처남이 한심스러운 매형 아르펠은 잘 아는 기업체에 윌로 씨의 일자리를 부탁한다. 그러나 윌로 씨는 면접 날 구두 밑창에 도료용 석고가루가 잔뜩 묻은 줄도 모르고 면접관 책상에 구두를 벗어 놓아 하얀 발자국을 남기는 실수를 저지른다. 나중에 들어온 면접관은 윌로 씨가 자신의 책상을 밟고 올라선 것으로 여겨 실격시킨다.
 
다음날, 약간 4차원의 정신세계를 지닌 것으로 보이는 옆집 여자가 아르펠 씨 집을 방문한다. 여자는 자신이 독신녀임을 밝힌다. 윌로 씨의 누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수를 켰다
끄는 등 부산을 떤다. 한편 매형은 면접에서 떨어진 처남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 윌로 씨는 주방에 들어가 이것저것 건드리다 그릇을 깨뜨려 또 말썽을 일으킨다.
 
윌로 씨는 오늘도 제라드를 자전거에 태우고 밖으로 나간다. 삼촌과 함께라면 언제나 즐거운 제라드는 친구들과 불량식품을 사 먹으며 재밌게 논다. 제라드와 친구들은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휘파람을 불고 영문을 모르는 행인이 소리 난 곳을 쳐다보다가 가로등에 이마를 부딪치게 만드는 장난을 친다. 개구쟁이 놀음으로 흙투성이가 된 제라드를 데리고 온 윌로 씨를 본 매형은 처남이 아들을 버려놓는다며 못마땅해하고, 가정도 없이 사람 구실 못하는 동생이 안타까운 누이는 윌로 씨에게 옆집 여자를 소개해 줄 마음을 먹는다.
 
아르펠 씨 정원에서 가든파티가 열리는 일요일. 두 부부는 윌로 씨, 옆집 여자, 아르펠 씨 의 공장 관계자 부부 등을 초대한다. 맞선 자리가 될 수도 있는 파티 장소에 윌로 씨는 고물 자전거를 끌고 꼬질꼬질한 옷차림으로 나타난다. 윌로 씨의 실수는 이날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분수 배관에 구멍을 내 마당을 온통 물바다로 만드는 소동을 피워 파티를 엉망으로 만든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려던 윌로 씨는 현관문이 열리지 않자 아예 문짝을 떼어버리는 실수마저 저지른다.
 
매형 아르펠은 하는 수 없이 윌로 씨를 자신이 운영하는 플라스틱 호스 공장에 취직시킨다. 사장인 매형의 주차구역에 떡하니 고물 자전거를 세워놓은 윌로 씨. 그의 실수는 출근 첫날부터 멈추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윌로 씨는 기술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기계오작동을 일으켜 사고를 친다. 곧게 뻗어 나와야 할 물 호스를 마치 소시지 타래 모양으로 올록볼록하게 만들어 버린 것. 공교롭게도 바이어가 공장을 견학 온 날 사고를 친 윌로 씨는 그 길로 매형 회사에서도 쫓겨난다.
 
매형은 마지막 수단으로 윌로 씨를 세일즈맨으로 추천해 지방으로 내려보낸다. 아르펠 씨와 제라드는 윌로 씨를 차에 태워 공항까지 바래다준다. 그렇게 윌로 씨는 정들었던 동네를 떠나게 된다. 그때, 대합실로 들어가는 윌로 씨를 향해 아르펠이 휘파람을 불자 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두리번거리다 가로등에 머리를 부딪치는 상황이 벌어진다. 두 부자는 그 광경을 지켜보다 급히 차 뒤로 몸을 숨긴다. 서로 손을 움켜잡은 부자는 모처럼 동질감을 느낀다. 마주보는 둘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공항까지 쫓아 온 개들은 윌로 씨가 떠나자 다시 마을을 향해 달린다. 윌로 씨가 떠나버린 마을은 허전해 보인다. 하얗고 얇은 커튼이 휘날리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마을의 공터는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거리는 이내 개들의 놀이터로 변해버리고 나른한 오후도 천천히 흘러간다.
 
시각과 청각을 교란하는 마술 같은 코미디
 
현대사회의 기계화 문명이 가져올 희극적 상황을 터치한 ‘나의 아저씨’는 무너져 내린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분화된 파리의 공동체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도 다리 하나를 건너면 별천지 같은 강남이 존재하듯, 윌로 씨와 그의 매형 가족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판이하게 다른 생활양식을 보여준다.
 
구식 건물과 혼잡한 장터를 연상시키는 윌로 씨의 동네와 기능성과 디자인이 강조된 누이의 주택이 있는 동네는 전혀 동질감을 느낄 수 없는 공간이다. 윌로의 마을은 지저분한 쓰레기와 마음껏 활보하는 개들로 어지럽지만 상식선의 인간적 소통이 가능한 곳으로 그려진다. 반면 현대화된 공간인 누이의 동네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고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졸부 같은 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왠지 씁쓸한 맛을 주며 비웃음을 사게 만든다.
 
타티 감독은 두 공간의 상이한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문명의 편리함을 비판하지만 인간성 상실과 물질만능 같은 거창한 이슈를 전면에 드러내 보이진 않는다. 어느 한쪽에 경도되지 않은 채 그저 경쾌한 유머 코드로 관객을 웃게 만들면서 아름다운 공동체의 가치를 느끼도록 유도한다. 많은 대사도 생략하고 주인공인 타티 자신도 화면을 장악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영화를 꽉 채우는 것은 기발한 시각적 효과와 잡다한 사운드다.
 
타티의 화면은 1990년대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틴 핸드포드의 그림책 ‘윌리를 찾아라’에게 영감을 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만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독특한 미장센을 보여준다. 윌로 씨 집 앞의 장터풍경을 보면 그런 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수많은 군중이 별 의미 없이 엉켜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에 담긴 인물들의 움직임은 정교한 그물망처럼 직조된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일례로 빗자루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세상사 참견하느라 영화 내내 비질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청소부의 모습이 딱 그렇다. 물건 고르는 할머니가 나오는 장면도 재밌다. 멀찌감치 앉아있는 야채장수와 한 마디 대사도 없이 물건을 들었다 놓는 시늉 몇 번으로 흥정이 이뤄지고, 무언의 교감을 통해 여유 있게 덤까지 챙기는 할머니의 모습은 진짜 정겹다.
 
윌로 씨가 거주하는 집의 구조도 흥미롭다. 가운데 출입구를 지나 우측 건물의 복도를 하나씩 통과하고, 다시 중앙 통로를 지나 좌측 건물로 옮겨가고,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아 자신의 옥탑 방에 도착하는 구조는 마술 상자를 들여다보는 듯 상상력을 자극한다. 타티는 이 장면을 롱 테이크 쇼트로 자세히 보여준다. 좁은 복도에서 속옷차림으로 나온 이웃여자와 마주쳤을 때 시선을 피해주는 작은 컷 하나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공사장의 해머드릴 소리와 경쾌한 연주곡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이내 자동화 기기들이 뿜어내는 각종 소음으로 장식되는데, 그런 소음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관객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타티 영화의 특징 중 하나다.
 
반복되는 여성들의 하이힐 소리, 직직거리며 물을 뿜어대는 분수, 작동할 때마다 듣는 이의 신경을 긁어대는 철대문의 부저(Buzz), 윙윙거리는 청소기, 탁탁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잔디 깎는 기계, 아르펠 씨 공장의 각종 기계와 사무실의 타자기가 내는 소리, 또 그런 것들이 오작동 될 때 발생하는 온갖 불협화음은 사람들을 짜증나게 한다.
 
장터에서 윌로 씨의 장바구니 밖으로 삐져나온 생선 대가리를 보고 자신의 적으로 여겨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 개의 모습을 보라. 얼마나 기발한 장면인가. 이 자연스런 장면에 담긴 소음에는 비웃음이나 조롱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반면 신시가지 사람들의 우스꽝스런 행동과 그들을 감싸고 있는 소음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이내 조롱거리가 된다.
 
미워할 수 없는 ‘윌로’ 캐릭터
 
타티의 분신 윌로 씨는 독특한 외모로 웃음과 친근감을 주는 인물이다. 갈색 패도라, 구겨진 트렌치코트, 나비넥타이, 몽당바지, 줄무늬양말, 파이프담배, 맑은 날에도 늘 챙겨 다니는 우산, 양다리를 바싹 붙인 차렷 자세, 구부정하니 앞으로 쓰러질 것 같은 걸음걸이, 뭔가 심사가 뒤틀렸을 때 허리춤에 양팔을 찌르고 버티는 자세는 윌로 씨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런 윌로 씨는 매사에 좌충우돌하며 실수를 연발하는, 이른바 ‘허당’기 철철 넘치는 캐릭터다.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일이 없어 나이값을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받지만 그렇다고 결코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다. 오히려 관객들은 약간 부족한 그의 행동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지방으로 떠나는 순간에도 그동안 얼어붙어 있던 아르펠 부자의 사이를 녹아내리게 하는 촉매제가 되지 않았던가. 이것이 윌로 씨가 가진 인간적 매력이다. 이 독특한 캐릭터는 영국 코미디영화의 대표 격인 ‘미스터 빈’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윌로 씨의 어수룩한 모습을 통해 전후 프랑스인들의 삶을 경쾌하게 풍자했던 자크 타티. 누벨바그의 분신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은 일찍이 그의 논문에서 자크 타티를 확고한 자기스타일을 지닌, 그러니까 창조적인 개성을 작품에 온전히 반영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감독 중의 한 명으로 꼽은 바 있다.
 
타티는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와 스타일을 만들어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 영화를 만든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였다. 그는 윌로 씨가 등장하는 4편의 시리즈 영화를 제작했으며, 늘 현실을 풍자하되 지나치게 주관적인 의도를 드러내려 애쓰지 않았다.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대기 보다는 그저 보고 느끼도록 만들고 그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 내는데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과연 시골로 내려간 윌로 씨는 세일즈 맨 일을 잘해내긴 했을까. 또 사고를 치지는 않았을까. 어째 그 남자 소식이 궁금하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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