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100년, 인생100년 ㉕ - 네 멋대로 해라
- 제작 : 1959년, 프랑스
- 감독 : 장 뤽 고다르
- 배우 : 장 폴 벨몽드, 진 세버그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90분
- 수상 :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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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필자도 보통수준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영화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브레드레스’가 1959년에 발표된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A Bout De Souffle)’를 리메이크한 영화라는 것을 몰랐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네 멋대로 해라’라는 영화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게 옳은 표현이다.
훗날 영화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면서 장 뤽 고다르를 알게 됐다. 현대영화는 그로부터 출발한다는 수식과 ‘영화의 역사는 고다르 이전과 고다르 이후로 나뉜다.’는 명제, ‘고다르 이전에 고다르 없고, 고다르 이후에 고다르 없다(미셀 푸코)’는 찬사도 알게 됐다. 그리고 그의 영화를 보았다. 놀라움이 절반, 당황스러움이 절반이었다.
호불호가 뚜렷한 ‘누벨바그의 분신’
프랑수아 트뤼포와 더불어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장 뤽 고다르(1930~ )는 기존의 영화문법을 거부한 이단아였다. 1950년대 말. 미국의 영화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이 완성되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반면 유럽영화의 흐름을 선도했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사조는 노쇠해지고 있었다. 프랑스 영화계는 매너리즘에 빠진 나머지 문학작품을 각색한 작품들이 판쳤다.
영화는 삶의 반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고다르는 완벽하게 세팅된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필름을 싫어했다. 그렇게 만든 영화는 삶의 연장선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핸드 헬드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누볐고 트래킹쇼트(이동촬영)를 위해 촬영기사를 휠체어에 태운 뒤 본인이 뒤에서 밀고 뛰기도 했다. 촬영한 분량이 길어지자 상영시간 단축을 위해 일부 장면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잘라 붙였다. -엉뚱하다싶을 정도로 급격한 장면전환을 불러오는, 이른바 ‘점프 컷(Jump Cut)'이 탄생한 배경이다- 현장 음향녹음은 당연했고 즉흥적인 플롯과 대사를 만들어 넣는 것도 그에게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부분을 조명 없는 야외촬영으로 채웠다. 실제로 영화 속에는 시민들이 촬영 카메라를 쳐다보느라 가던 길을 멈추고 기웃거리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서 여과 없이 보인다. 그런가하면 배우가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며 관객에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걸기도 한다. 고다르는 기존의 영화언어들을 거부하며 정말이지 ‘제 멋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의 영화문법들은 당시로선 모두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고다르주의(Godarism)’라는 말이 생겨났고 평론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고다르 영화에 환호한 것은 아니다. 일부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형편없는 쓰레기라 혹평한 것이 엄연한 사실이다. 고다르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그리 친절한 편이 못된다. 고다르는 ‘이야기’보다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더 중요하게 여긴 인물이다. 그래서 고다르는 등장인물의 행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인색하다. 그러다보니 대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잡담들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시공간의 연속성이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플롯의 비약적인 전개와 상황의 희박한 개연성은 관객을 당황케 한다. 그의 영화를 다 보고나면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고 반문하게 되는 이유다.
재회, 배신, 죽음의 3중주
양복에 넥타이,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멋쟁이 미셀(장 폴 벨몽드)은 자유를 추구하는 도시의 무법자다. 갱스터무비의 주인공 험프리 보가트를 우상으로 떠받드는 이 청춘은 겉모습과 달리 남의 차를 훔친 뒤 암시장에 내다팔아 연명하는 날건달 같은 인간이다. 심지어 그는 여자 친구 쌈짓돈도 훔치고, 치사하게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사람의 뒷목을 때려 지갑을 털고, 택시요금도 떼먹는 등 온갖 추잡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던 미셀은 차량 사물함에 권총이 한 자루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한껏 흥이 오른 그는 권총으로 작열하는 태양을 겨누며 격발하는 시늉을 낸다. 마음껏 속도를 즐기던 미셀은 앞차가 빌빌대자 난폭하게 차선을 위반하며 앞질러간다. 그때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경찰 오토바이가 미셀의 뒤를 쫓는다.
미셀은 추격에서 벗어나 보려고 잠시 옆길로 새지만 경찰은 이내 그를 찾아낸다. 체포될 위기에 놓인 미셀은 차 안에 있던 권총을 발사해 그만 경관을 살해하고 만다. 미셀은 범행 직후 훔친 차를 내버리고 벌판을 가로질러 도주한다.
파리로 잠입한 미셀은 거리에서 신문팔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페트리샤를 찾아온다. 니스에서 페트리샤를 만나 며칠 동안 함께 보냈던 미셀은 그녀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가 애초 파리를 찾으려 한 것도 그녀가 자신에 대해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인을 저지른 미셀은 그녀에게 함께 로마로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언론학 관련 공부를 하는 유학생 페트리샤는 비록 신문팔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아가씨. 금발의 쇼트커트가 매력적인 그녀는 소르본 대학에 가야 집에서 돈을 대준다며 미셀의 제의를 완곡히 거절한다. 무일푼 신세인 미셀은 “돈이라면 내가 줄 수도 있다”며 허세를 부린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가 세상에 알려졌는지 궁금한 미셀은 가판대의 신문을 사서 읽으며 촉각을 곤두세운다. 오후에 페트리샤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한 미셀은 받을 빚이 있는 이탈리아인 안토니오를 찾기 위해 여행사에 근무하는 친구 톨마초프를 찾아간다. 미셀이 돌아간 직후 형사들이 여행사에 들이닥치지만 미셀은 간발의 차로 경찰의 추격에서 벗어난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동전 두 닢 밖에 없는 미셀은 그래도 페트리샤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큰소리친다. 그러고선 화장실에서 소변보는 사람을 퍽치기하여 지갑을 훔친다.
다음 날, 호텔로 돌아온 페트리샤는 자신의 방에 들어와 웃통을 벗은 채 떡하니 침대에 누워있는 미셀을 보게 된다. 페트리샤는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지만 미셀은 요지부동. 계속 그녀에게 “너 없인 못산다. 같이 자고 싶다”며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페트리샤는 미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확신이 서지 않아 머뭇거린다. 그녀는 속삭이듯 말한다. “내가 널 사랑하는지 아직 모르겠어. 내가 너의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야.”
두 사람은 호텔방에 머무는 동안 음악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별 의미 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보낸다. 페트리샤는 자신이 미셀의 아이를 가졌다는 거짓말로 미셀의 반응을 떠보는데, “그러기에 조심 좀 하지!”라며 화를 내는 미셀을 본 페트리샤의 표정은 이내 굳어진다.
한편 경찰의 집요한 추적은 계속된다. 형사들은 페트리샤를 찾아와 미셀의 행방을 추궁하지만 페트리샤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오히려 형사의 미행사실을 미셀에게 알려줘 그가 도피하도록 돕는다. 어쩔 수 없이 미셀과 한 배를 타게 된 페트리샤는 어느덧 미셀의 차량절도 현장에도 같이 있게 된다. 그러는 사이 미셀의 체포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기사는 온 도시로 퍼져나간다.
안토니오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친구 애인의 집에서 하루를 보낸 미셀과 페트리샤. 아침이 되어 페트리샤는 우유와 신문을 사러 나간다. 그리고 상점에 들어선 페트리샤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미셀이 숨어있는 곳을 밀고한다.
페트리샤가 돌아오자 미셀은 돈을 받는 즉시 이탈리아로 떠나자고 말한다. 지체할 수 없어진 페트리샤는 경찰에 신고한 사실을 말한다. 미쳤냐고 소리치는 미셀을 향해 페트리샤는 “널 사랑하는지 확인하려고 같이 지냈지만 사랑하는 게 아니었어. 널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전화한 거야”라고 말한다. 실망한 미셀은 세상에 불행한 사랑은 없다는 말을 내뱉은 뒤 돈을 받기위해 거리로 나선다.
안토니오를 만난 미셀은 돈 가방을 전달받는다. 미셀이 애인의 배신으로 고발당한 사실을 말하자 안토니오는 어서 차에 오르라고 권한다. 그러나 미셀은 거절한다. 안토니오가 건네는 권총도 뿌리친다. 그때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해 총을 겨눈다.
총을 맞은 미셀은 비틀거리며 거리를 질주한다. 페트리샤는 미셀의 뒤를 쫓아간다. 쓰러졌다 일어나고, 다시 휘청거리며 힘들게 걸음을 내딛는 미셀. 큰 길에 다다른 미셀은 더 이상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진다.
큰 대자로 널브러져 괴로워하는 미셀.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를 내려다보는 페트리샤. 가쁜 숨을 몰아가던 미셀은 그녀에게 “진짜 역겨워!”라는 말을 내뱉고 스스로 눈을 감는다. 불어가 서투른 페트리샤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 지금 그가 뭐라 말했냐고 묻는다. 그러자 “아가씨가 정말 역겹답니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페트리샤는 “역겹다는 게 무슨 뜻이죠?”라며 되묻고는 그 자리를 벗어난다.
죽는 것도 ‘제 멋대로’
미셀이 죽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보며 ‘역겹다’는 말을 내뱉은 뒤 자기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감겨 버리면서 숨을 거둔다. 마치 이 꼴 저 꼴 다 보기 싫으니 이쯤에서 나 죽어버리겠다는 식이다. 자기가 죽음의 시점을 선택해서 죽는다는 이 설정, 꽤나 파격적이다. 그는 자신을 배신한 여자가 역겨웠을까, 아니면 제 맘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 역겨웠던 걸까.
이런 식이다. 영화는 여자가 애인을 신고하는 순간에도 심리적으로 고뇌하거나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거친 비약과 생략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관습적으로 보면 당연히 있어야 할 절차를 무시하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은유와 풍자, 변형을 보탠다. 게다가 화면은 툭툭 튀거나 끊기는 느낌마저 준다. 기존 영화세계를 향한 그의 도발과 반란은 결국 고다르만의 독특한 미학으로 인정받는다.
고다르는 일관된 주제와 의미를 중요시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의 영화에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자유와 반항을 추구하면서 기존 영화판의 매너리즘에 일격을 가하며 보여준 혁명가적 기질일 것이다. 어떤 이는 그런 고다르를 일컬어 ‘영화판의 밥 딜런’이라고 칭송했다. 또 어떤 사람은 ‘천재 아니면 또라이’라 불리는 쿠엔틴 타란티노(영화 ‘킬빌’ 감독)를 고다르에게 빗대기도 한다.
젊은 시절 그와 함께 영화를 이야기하고 희로애락을 나눴던 동지들은 누벨바그의 추억이 되어 하늘의 별이 된지 오래다. 그러나 ‘청년 고다르’는 우리 곁에 남아 아직도 식지 않는 열정과 끝없는 실험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도 과거에 머물려 하지 않는 고다르. 그가 생존해 있는 한 누벨바그의 불꽃도 꺼지지 않는다.
▶ 덧붙이기 ----------------------------------------------------------------
영화 원제목 'A Bout De Souffle'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숨이 가쁜’ ‘숨이 막히는’ ‘숨이 멎을 듯’
정도가 된다. 불어 ‘Bout'가 '끝' 또는 '말단' '종말' 등을 의미하며 'Souffle'은 ‘입김’ ‘숨’ ‘호흡’의
뜻을 지닌다. 영어의 ‘Breathless'와 딱 맞아 떨어진다. 1960년에 일본에서 이 영화를 개봉할 때
번역제목을 ‘勝手にしやがれ(멋대로 해라)’라고 붙였었다. 2년 뒤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때
이 제목을 인용하여 ‘네 멋대로 해라’로 결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목을 멋대로 만들어 버린
꼴이 되었지만 고다르가 영화의 형식을 뒤흔들며 자기 입맛대로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일면도 있다. 풍기는 뉘앙스도 나름 괜찮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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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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