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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89

기사승인 2019.07.09  09: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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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찾아서_#45. 끌림의 원인
 
 사람의 마음에 끌림이 있다면, 그것에 마음이 간다. 마음에 든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나 자신이 그것과 풀어야 할 업연(業緣)의 흔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단순하게 그 마음 끌림대로 행동을 하지만, 현명한 자는 그것에 마음이 끌린다 해도 그 원인을 찾고 그것을 취할 것인가, 버릴 것인가를 분별하고 이치에 맞는 행(行)을 하므로 그 업연의 흔적은 지워지게 되고 인과에 따른 업연의 고리는 끊어지게 된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그 싹을 미리 지우는 것이고 업, 업장을 소멸하는 방법이며 마음에 흔적을 지우는 것이 되며 결국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주관적인 의식이 뚜렷하지 못하면,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말에 취해 한세상 허무하게 살 것이고, 의식 없는 사람은 이 같은 달콤한 말에 취해 자신의 의식이 흐려지므로 이때 무의식(빙의, 업장)의 다른 기운이 나의 몸을 빌려 살아가며 이것을 빙의 현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여인숙(旅人宿)과 같은 것으로 껍데기(몸, 집)는 있지만 아무나 그 집을 사용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이치에 맞지 않는 감성적인 말에 쉽게 흐려지고, 그 몸은 술(酒)이라는 제삼자의 물질에 취하고, 욕정에 취해 한세상을 살아간다. 이런 삶을 탐진치의 삶이라 하며, 중생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순간의 내 인생은 나 자신이 어제까지(전생) 두어온 한판의 바둑, 장기와 같은 것이다. 스스로가 왜 사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품지 않으면. 도중에 어떠한 수를 가르쳐 준다고 해도 그것으로 자기 인생의 이치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생의 삶에 묘수는 진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처음부터 바둑, 장기를 놓는 수를 자신 스스로가 배우지 않으면 설사 묘수를 가르쳐 준다고 해도 자신이 그 수를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 마음공부라는 것도 자신이 인생의 수를 깨닫지 못하면 결국 묘수만 찾다가 한세상 허무하게 살다 인생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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