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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㊿ - 붉은 수수밭

기사승인 2020.01.01  09: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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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㊿ - 붉은 수수밭
 
 
 -  제작 : 1987년, 중국
 -  감독 : 장이머우
 -  배우 : 궁리, 장 웬, 텡 루준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91분
 -  수상 :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
 
 
 
 중국 '5세대‘ 영화의 상징인 장이머우(張藝謀)와 ‘대륙의 별’ 궁리(鞏俐)의 출세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붉은 수수밭(紅高粱; Red Sorghum)'.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모옌(莫言)의 소설을 강렬한 영상으로 빚어낸 ‘붉은 수수밭’은 중국 예술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데 기폭제 역할을 한 작품이다.
 
중국 5세대 영화는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은표범상을 받은 첸가이거(陣凱歌)감독의 ‘황토지(1984)’를 시발로 서방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온 ‘붉은 수수밭’은 ‘황토지’의 촬영 담당이었던 장이머우의 감독 ‘입봉’작으로써, 그는 베를린 영화제 그랑프리인 황금곰상의 아시아 최초 수상자라는 쾌거를 달성한다.
 
촬영기사 출신답게 장이머우는 현란한 색감을 통한 환상적인 영상미와 독보적인 미장센으로 주목받았다. ‘붉은 수수밭’에서 장이머우는 인간의 원초적 생명력을 선명하게 분출시키는 강렬한 ‘레드’를 전편에 배치하여 놀랍도록 아름답고 환각적인 영상미를 선보였다. 여기에 중국의 전통음악과 노래를 매치함으로써 동양적인 이미지에 대한 서방세계의 호기심도 한층 고조시켰다.
 
중일전쟁이 벌어진 1930년대를 배경으로 기구한 삶을 살다 간 어느 여인의 비극적 운명과 항일투쟁, 봉건제도의 부조리에 저항하는 중국 민초의 강인한 생명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붉은 수수밭’. 영화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손자가 그의 할머니(궁리)의 삶을 회상을 하는 인상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나귀 한 마리에 팔려간 신부
 
가난한 집안의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난 18세의 추알(궁리)은 십팔 리 고개에서 양조장을 하는 리씨 집안에 팔려간다. 가난한 추알의 부모는 나귀 한 마리를 받는 대가로 문둥병 환자인 데다 나이 50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리씨에게 딸을 팔아먹은 것.
 
신랑의 얼굴도 모르고 졸지에 신부가 된 추알은 붉은 가마를 타고 정든 고향을 떠난다. 신부를 데려갈 가마꾼과 풍각쟁이 중에는 십팔 리 고개에서 가장 유명한 가마꾼인 위잔아오(장 웬)도 포함돼 있다. 신부를 태운 가마는 먼지 가득한 황톳길을 지나 신랑의 집으로 떠난다.
마을 풍습에 따르면 가마꾼은 신부를 놀려주도록 돼 있다. 가마꾼들은 딸을 팔아먹은 신부의 부모를 맘껏 욕하고, 문둥병 걸린 신랑의 흉측한 몰골을 떠버리는 등 짓궂은 행동으로 신부를 놀리고 겁준다. 게다가 노래를 부르며 가마를 마구 흔들어대 신부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추알은 그런 와중에도 가마 문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위잔아오의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구릿빛 등짝을 훔쳐보며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가마꾼들이 가마를 심하게 흔들어대는 통에 추알은 고통을 느끼고, 급기야 가마 안에서 소리 내 흐느낀다. 신부의 울음소리를 들은 위잔아오는 더 이상의 장난을 멈추게 하고 얌전히 가마를 들어 십팔 리 고개로 향한다.
 
십팔 리 고개를 가려면 중간에 청살구라는 곳을 지나야 한다. 그곳에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붉은 수수가 무성하게 자라있다. 씨를 뿌린 사람도, 거두는 사람도 없는 데 수수가 울창하게 자라 귀신이 산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곳이다. 가마가 막 그곳을 지나려는데 웬 고함소리가 들린다. “나는 신창삼포다!” 흉악한 도적 신창삼포가 출현했다는 말에 놀란 가마꾼과 풍각쟁이들은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꿇어앉는다.
 
얼굴에 자루를 뒤집어쓰고 권총을 든 도적은 돈을 빼앗은 뒤 신부를 수수밭으로 끌고 들어간다. 바로 그때 추알과 위잔아오의 눈빛이 정면으로 마주치고, 위잔아오는 용감하게 도적을 덮친다. 그러자 다른 일꾼들이 합세해 도적을 때려죽인다. 순식간에 최후를 맞은 도적은 알고 보니 가짜 신창삼포. 총도 가짜다. 다시 가마에 오르는 신부를 진정시키듯 위잔아오는 슬며시 추알의 발을 만져 가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순간 추알과 위잔아오의 은밀하고도 위험한 눈빛이 다시 한번 충돌한다.
 
십팔 리 고개는 벽지인 데다 리씨가 문둥이여서 술을 사러 오는 사람 말고는 인적이 드문 곳이다. 붉은 황토먼지 날리는 황량한 그곳에 신부를 내려놓고 돌아가는 위잔아오의 발걸음은 왠지 무겁다. 혼례 3일 후. 풍습에 따라 추알은 친정 나들이를 간다. 마중을 나온 아버지는 딸을 보고는 사위가 죽으면 양조장 재산을 다 물려받을 테니 남편을 잘 섬기라는 잔소리만 늘어놓는다.
 
아버지를 멀찌감치 떼어버리고 나귀를 달려 수수밭을 지나던 추알은 두건을 쓴 도적을 만난다. 도적은 추알을 다짜고짜 수수밭 속으로 끌고 간다. 추알은 온 힘을 다해 도망치지만 어느새 뒤쫓아 온 도적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는다. 그런데 복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낸 도적은 다름 아닌 위잔아오. 추알은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한다. 그리고 두 남녀는 드넓은 수수밭 한가운데서 몸을 섞는다.
 
시댁으로 돌아가는 날. 추알의 아버지는 훌쩍거리고 있는 딸을 꾸짖으며 어서 남편에게 돌아가라고 성화를 부린다. 추알은 딸을 팔아먹는 사람은 부모도 아니라며 다시는 집에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십팔 리로 돌아간다.
 
그 사이, 양조장에서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추알의 남편인 리씨가 누군가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한 것인데, 증거가 나오질 않아 범인도 잡히지 않는다(영화의 내레이터인 손자는 할머니(추알)를 취하기 위해 할아버지(위잔아오)가 살인극을 벌인 거라고 생각한다).
 
일꾼들은 새색시가 온 뒤로 우환이 끊이질 않는다며 모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추알은 양조장 문을 닫을 수 없다며 일꾼들을 붙잡는다. 추알은 가장 연장자인 뤄한(텡 루준)에게 집사의 중책을 맡기고 일꾼들 임금도 후하게 쳐주기로 한다. 마님이라는 칭호도 필요 없고 그냥 이름을 불러달라는 추알의 진심 어린 말에 일꾼들은 닫았던 마음을 연다.
 
양조장의 분위기가 쇄신될 무렵, 위잔아오가 나타나 객기를 부린다. 술 취한 위잔아오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추알을 겁탈했다고 떠든다. 안방차지를 하겠다며 아예 이불 보따리까지 가져와서 소란을 피우는 위잔아오. 일꾼들에게 쫓겨난 위잔아오는 빈 술독에 거꾸로 처박힌 채 3일 밤낮을 곯아떨어진다. 그러는 사이 마을에는 진짜 신창삼포가 나타나 추알을 잡아간다. 신창삼포(지 춘화)는 죽은 리씨와 합방했다는 추알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래서 그녀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고 몸값만 받은 뒤 풀어준다.
 
비적의 소굴에서 풀려난 뒤 기력을 회복한 추알은 의욕적으로 고량주 빚는 일을 시작한다. 뤄한을 비롯해 모든 일꾼들도 한마음으로 술 빚는 일에 매진한다. 첫술이 나와 모두가 잔치 분위기인 그때, 또 위잔아오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 심술을 부린다. 위잔아오는 고량주가 가득 담긴 술독의 뚜껑을 열고 오줌을 갈겨댄다. 일꾼들이 어쩌질 못하고 주춤하는 사이, 위잔아오는 “이제부터 술은 내가 빚을 것.”이라며 팔을 걷어붙이고 일을 시작한다. 그날부터 위잔아오는 스스럼없이 양조장의 바깥주인이 된다.
 
다음날. 뤄한은 술독에서 배어나오는 독특한 향을 맡고 술맛을 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전날 위잔아오가 오줌을 갈긴 술독의 술이 전에 없이 달고 맛있게 변해있었다. 양조장에서 10년을 넘게 일한 뤄한도 이런 술맛은 처음이라며 감탄한다. 그는 추알에게 달려가 이 독특한 술의 이름을 지어 달라 청하고 그녀는 술의 이름을 ‘십팔 리 홍고량’이라 짓는다.
 
집안의 듬직한 일꾼이자 추알을 진심으로 존중해 온 뤄한은 그날 밤 양조장을 떠난다. 위잔아오가 주인행세를 하는 양조장에서 자신은 더이상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9년의 세월이 흐른다.
 
이제 ‘십팔 리 홍고량’은 근동에서 아주 유명한 술이 되었다. 모든 것이 편안하고 양조장은 나날이 번창한다. 위잔아오와 추알이 낳은 아들 두쿠안도 아홉 살이 되었다. 그러나 그해 7월이 되면서 양조장에는 불행한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한다. 전쟁에서 승기를 잡은 일본군이 군용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청살구까지 진군해 온 것이다. 일본군은 길을 닦는다며 수수밭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온 동네 주민은 수수를 밟아 쓰러뜨리는 일에 동원된다. 그리고 일본군은 비협조적인 중국인들을 공개적으로 처벌하는 본때를 보인다.
 
신창삼포도 잡혀와 매질을 당한다. 일본군은 신창삼포를 매달아 놓고 마을의 백정에게 그의 살갗을 벗겨내 죽이라고 명령한다. 백정은 단칼에 신창삼포의 숨을 끊어준 뒤 일본군을 향해 욕을 퍼붓고 죽는다. 그 다음에 뤄한이 잡혀온다. 양조장을 떠난 뒤 공산당원이 되어 항일투쟁에 나선 뤄한은 다른 백정에 의해 살갗이 벗겨지는 잔인한 고문을 받고 고통스럽게 죽는다. 위잔아오와 추알은 그 끔찍한 장면을 똑똑히 목격한다.
 
양조장에 돌아와 술을 따라 바치는 것으로 하늘과 죽은 이에게 예를 표한 추알은 남자들에게 일본군을 공격해 뤄한의 원수를 갚으라고 일갈한다. 그날 밤. 위잔아오와 일꾼들은 일본군이 지나갈 수수밭길 가운데에 구덩이를 파고 폭약과 고량주를 묻는다.
 
위잔아오와 일꾼들은 수수밭에 매복한 상태로 밤을 새운다. 해가 중천에 오르도록 일본군의 움직임이 없자 허기에 지친 일꾼들에게 먹일 음식을 장만한 추알은 수수밭으로 간다. 일본군을 태운 트럭도 때마침 수수밭에 들어선다. 그런데 수상한 기척을 느낀 일본군이 기관총을 난사하는 바람에 총을 맞은 추알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둔다.
 
추알의 죽음에 분개한 위잔아오와 일꾼들은 매설한 화약을 터뜨리고 불붙인 고량주 단지를 던지며 일본군 트럭을 향해 돌진한다. 일본군의 기관총 방어에 일꾼들은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지만 일본군 트럭 역시 화염에 휩싸인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붉은 수수가 꺾여나간 벌판은 죽은 이들의 시신이 널브러진 채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버린다.
 
싸움에서 살아남은 위잔아오와 두쿠안은 추알의 시신 앞에서 할 말을 잃은 채 먼 하늘만 바라본다. 순간 태양을 삼키는 일식현상이 일어나 천지는 암흑과 붉은빛이 뒤섞이는 혼란에 휩싸이고, 바람 부는 청살구 벌판에는 엄마의 왕생극락을 비는 어린 아들의 구슬픈 노랫가락만 처량하게 울려 퍼진다.
 
질긴 민중의 삶을 노래하다
 
전체주의 정권의 야만성을 우회적으로 묘사하되 현실참여보다는 예술적이고 영상미학적인 면에 중점을 두며 시대를 조명해 온 장이머우(1950~ )는 ‘붉은 수수밭’으로 국제무대에 신고식을 마친 이후 그의 인생작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국두(1990,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 ‘홍등(1991, 베니스 은사자상)’ ‘귀주이야기(1992, 베니스 황금사자상)’ ‘인생(1994, 칸 심사위원 대상)’ ‘책상 서랍 속의 동화(1999, 베를린 은곰상)’ ‘집으로 가는 길(1999, 장 쯔이 데뷔작, 베를린 은곰상)’ ‘영웅(2002, 베를린 은곰상)’ 등에서 보듯 그는 당대 아시아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감독이었다. 2000년대 이후로는 제도권과 협조하며 상업성과 오락적 흥미에 치우치는 영화를 만들어 변절했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지만 장이머우가 중국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도약시켜 놓은 공은 부정할 수 없다.
 
궁리(1965~ ). 흔히 우리에게는 ‘공리’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그녀는 중화권을 상징하는 배우였지만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할리우드에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세계적인 스타다. 시골구석의 촌부(村婦)에서부터 화려한 왕조의 황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하다. 순수하며 맑고 지순한 눈빛, 해맑은 미소를 지녔으나 요염하고 치명적인 섹시미도 함께 갖춘 배우다.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귀주이야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패왕별희) 이후 칸과 베니스, 베를린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심사위원과 심사위원장을 맡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때 유부남인 장이머우와 불륜에 빠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20세기 초반 중국의 비극적 역사를 축소시켜 놓은 ‘붉은 수수밭’은 민중의 원시적인 생명력, 격정적인 사랑과 욕망, 위대한 투쟁과 죽음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붉은 수수’는 민중의 식량이자 그들의 피와 살인 동시에 생명과 영혼을 상징한다. 수수는 외세의 군홧발 아래 무수히 짓밟히지만 역경을 이긴 뒤 다시금 바람에 일렁이는 강인한 민중에도 비유된다.
 
지나치게 형식미를 추구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풍부하고 강렬한 색상을 화면 전체에 뿌려대며 환상적인 현실주의를 구현하는 장이머우의 카메라는 역시 역동적이다. 붉은 가마, 붉은 수수, 붉은 황토, 붉은 석양에 붉은 고량주까지,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이미지를 통해 감독은 인간의 희로애락과 원초적 감정을 멋지게 표출했다. 여기에 더해 ‘둥-둥’거리는 타악기와 ‘앵-앵’거리는 관악기, 웃통을 벗어젖힌 장정들의 노래와 춤 등 토속적이고 민속적인 요소가 시각과 청각을 한껏 희롱하며 영화의 감흥을 고조시킨다. 영화 출연 당시 22세 푸릇한 청춘 궁리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 덧붙이는 글 ………………………………………………………………………………
 
* 중국 5세대 영화 : 마오쩌뚱의 문화혁명으로 폐교된 베이징 영화학교가 1978년 다시 문을 열고 입학생을 받는다. 당시 입학생들은 1982년에 졸업하는데 첸가이거, 장이머우, 티엔 주앙주앙, 황지엔신, 장쥔자오 등 1980년대 중국영화 부흥을 이끈 인물들이 여기에 대거 포함돼 있다. 이들을 ‘5세대 감독’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문화혁명 기간 중 청소년기를 보낸 인물들로서 대개 억압된 환경에서 핍박받고 살아왔다. 그들은 감독으로 데뷔하면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민중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새로운 영상언어와 미학을 추구하며 영화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는 것을 반대했다. 이들의 활약은 중국의 예술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끄는 계기가 된다. ‘세대’라는 표현은 5세대를 중심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으로써, 지금은 1989년 이후 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 투입된 ‘6세대’ 영화인들이 현대 중국영화의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영화로 변질하기 시작한 선배들의 영화철학을 비판하는 ‘6세대’ 영화인들은 ‘5세대’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천안문사태를 경험한 작가들이다. ‘5세대’ 감독들이 과거의 유산을 토대로 영화의 주제를 이끌어 갔다면 ‘6세대’는 더욱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으며, 당국의 사회 통제 거부 등 현재 중국사회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비판하는 데 더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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