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박영신의 <광고 한 편, 사진 한 장으로 읽는 대중문화 이야기> (19) 화투

기사승인 2021.02.08  19:12:25

공유
default_news_ad2

- - 오가는 현찰 속에 우정은 싹트는가

‘꽃들의 전쟁’. 이 표현은 ‘화투(花鬪)’를 이르는 말이다. 1년 열두 달을 상징하는 48장의 화려한 그림-꽃과 나비, 구름과 달, 나무와 새 등 자연의 조화를 입혀놓은 화투장은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가히 현대판 삼국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지략과 술수, 함정과 반전, 복잡한 플롯이 차고 넘치는 화투판. 낙화가 흩어지듯, 담요 위를 활강하듯, 꽃들이 펼치는 승부의 세계는 마치 우리네 인생을 축소시켜 놓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짜릿하기 그지없다.
 
화투가 이 땅에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후기쯤으로 추정된다. 대마도 상인들이 장사를 위해 조선 땅을 빈번히 드나드는 길에 전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본은 19세기말 포르투갈에서 들여온 카드놀이를 변형해 화투를 고안했다. ‘슈퍼마리오’를 개발한 세계적인 게임업체 ‘닌텐도’는 일본에서 최초로 화투를 만들어 유통시킨 회사다.
 
항간에는 일제가 한국인의 문화를 말살하고 국민정신을 해이하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화투를 들여왔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있다. 의도적으로 화투를 보급해 조선 사람들을 이간질하고 반목, 파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 부작용이 만연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조선에는 숙종 임금시절부터 중국에서 전파된 투전판이 성행하며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투전에 빠진 조선사회는 군졸과 관리들이 공금을 횡령하여 문제를 일으켰고, 사기도박꾼과 노름판 꽁지(판돈 대주고 이자를 뽑아먹는 사람)까지 설쳤다. 노름빚으로 가산을 탕진해 자살하는 이도 있었다. ‘타짜’라는 말은 투전판의 고수를 일컫는 ‘타자(打者)’에서 온 말이며, ‘땡’ ‘가보’ ‘따라지’ ‘끗발’도 모두 투전판 용어일 만큼 투전은 조선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그런 판국에 일제가 조선인의 정신을 말살하려고 따로 화투를 들여올 필요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다음과 같은 신문기사도 진실을 이해하는데 난처함을 제공한다. <소안동 15통 5호 안원식, 소격동 52통 4호의 이희우, 죽산군 근산면 이낙기 등 3명이 4월 30일 오후 11시 30분에 소안동 15통 5호 안원식의 집에서 화투판을 설치하고 돈내기를 하다가 발각되어 수문동 경찰분서로 잡아들여 심문 후에 각기 볼기 열대씩을 때리고 내보냈다.- 1913년 5월 3일자 매일신보 3면>. 총독부가 화투를 조장하기는커녕 풍기문란을 문제 삼아 화투놀이 한 사람들을 잡아다 벌을 주었다는 기록이다. 헷갈린다.
 
화투 그림은 일본의 세시풍속과 기원의식을 테마로 삼고 있다. 일본문화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할 만큼 황실의 상징, 일본인이 좋아하는 꽃과 동물, 민속축제, 야담을 소재로 한 그림이 48장 화투 패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화투와 친해지면 알게 모르게 일본문화에 젖어들 수 있다는 지적과 우려가 나온다.
 
[▲화투놀이는 이제 한국인의 삶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고의 오락문화가 되었다.]
 
‘망국병’ 지탄 속에 화투 화형식까지
 
이승만 정권은 화투에 배인 왜색을 지우려 애썼다. 화투에 녹아있는 일본풍을 걷어내기 위해 그림 형태와 색상변경을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자유당 시절에는 일본 것과 똑같은 도안의 화투는 유통이 금지되었고 새로운 디자인의 화투가 시판됐다. 1956년 10월 29일자 경향신문에는 <왜색화투는 정부시책에 의하여 말소 폐지하고 그 대체로 미장특허 제323호 새 화투가 나왔다>는 광고가 실렸다. 오복실업이란 회사가 만든 새 화투에는 우리의 ‘설 명절’ ‘한식’ ‘초파일’ ‘단오’ ‘유두’ ‘칠석’ ‘추석’ ‘동지’ ‘납향’ 등 세시풍속을 주제로 삼은 그림이 인쇄돼 있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화투도 오리지널 일본 것과는 다른 점이 많다. 첫째, 우리나라 화투에는 글자가 쓰여 있다. ‘광(光)’ ‘청단’ ‘홍단’ 같은 글씨다. 반면 일본 화투에는 그런 글씨가 없다. 둘째, 우리 화투 뒷면은 붉은색이지만 일본 화투 뒷면은 검정이다. 셋째, 그림도 달라서 일본 화투 11월(똥 달)의 봉황 그림은 닭으로 바뀌었다. 12월(비 달) 화투 패에 있는 우산 쓴 남자의 일본식 복장도 거슬렸는지 바뀌었다. 그 바람에 한복 아닌 이상한 복식의 국적불명 남성이 등장했다. 넷째, 재질도 다르다. 일본에선 석회를 굳힌 뒤 종이를 바른 화투를 쓰지만 우리는 플라스틱으로 화투를 만든다. 과거, 화투가 낡아 찢어지거나 부러지면 하얀 석회가루가 묻어나왔던 것은 다 일본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으며 심한 기아와 빈곤에 시달린 대한민국 사회는 1970년대 들며 도박공화국이란 오명이 붙을 만큼 사행성 노름이 판쳤다. 암담한 현실,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헛된 야망에 사로잡힌 이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너도나도 노름판을 기웃거린 것이다.
 
도박이 만연한 거리에선 ‘돈 놓고 돈 먹는’ 박보장기와 윷놀이, 각종 야바위가 성행했다. 주막 봉놋방, 시골 사랑방, 여관방, 잔칫집, 초상집, 요릿집, 학교 숙직실, 열차 안, 공사장 밥집(함바), 군대 병영과 대학캠퍼스 어디에서도 노름판이 벌어졌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 세뱃돈을 자본금삼아 화투놀이를 즐겼다. 이는 조금씩 삶이 나아지며 여가문화에 눈을 돌리게 된 시대적 배경과 현대인의 스트레스 증가, 이를 해소할만한 마땅한 놀이의 부재, 내기를 선호하는 전통적 심리,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 화투놀이에 대한 친근한 정서 등등의 요인이 결합해 나타난 현상이었다.
 
1950년대에 소일삼아 간단한 담배내기, 막걸리내기로 성행했던 ‘민화투’놀이는 1960년대부터 ‘육백’ ‘삼봉’ ‘나이롱 뽕’ ‘도리 짓고 땡’ ‘섰다’ 등 좀 더 전투적인 방식의 게임으로 바뀌었다. 도박판은 돈 따먹는 재미에 맛 들린 사람, 잃은 본전 생각으로 잠 못 드는 사람 모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추수를 끝낸 농촌사람들은 긴 겨울밤을 도박으로 탕진했다. 노름판에는 ‘호구가 떴다’는 말이 있다. ‘호구’란 전문 도박꾼의 먹잇감이 되어 돈을 털리는 자를 일컫는다. 순박한 농촌사람들이 그랬다. 이 ‘호구’들은 타지에서 원정 온 타짜에 걸려 땅문서를 몽땅 날리기 일쑤였다. 세간에는 판돈이 떨어져 자기 마누라를 팔아넘겼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도시라고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회사 공금을 횡령해 도박판에 쏟아 붓다 쇠고랑을 찬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노름으로 인한 폐해가 심각해지자 마침내 박정희 정부가 칼을 뽑아들었다. 1970년 새마을운동을 주도하면서 국민의식 개혁과 퇴폐풍조 근절을 부르짖은 박 정권은 도박을 청산해야 할 사회악으로 적시해 추방운동에 나섰다. 즉각 화답이 왔다. 시골에서는 4H구락부를 중심으로 힘깨나 쓰는 장정들이 자경단을 조직해 동네노름판을 덮쳤다. 이들은 화투판의 판돈을 빼앗고 노름꾼을 매타작하기도 했다. 또는 인민재판 하듯 마을사람들 앞에 노름꾼을 세워놓고 망신을 주었다. 자경단의 초법적인 행동에도 노름꾼들은 지은 죄가 있는지라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했다.
 
1971년 한 해 노름으로 적발된 사람이 8,102명이었다. 이 가운데 6,513명이 재판에 회부됐다. 사회 곳곳 깊숙이 파고든 노름의 적폐를 뿌리 뽑기 위해 청와대는 별도의 암행감찰반을 가동했다. 민간에서도 노름을 규탄하는 행사가 이어졌다. 1972년 6월 1일 한강변에서는 ‘화투화형식’이 열렸다. 서울 시내 숙박, 요식업자들이 모여 도박풍조를 규탄한다며 벌인 이벤트였다. 이들은 식당과 여관 등에서 손님에게 제공할 목적으로 비치해 둔 화투 1만7천 벌을 모아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지방 도시의 경찰서는 관내 식당, 주점, 다방, 여관, 당구장 등을 뒤져 찾아낸 수천 벌의 화투를 가마니에 담아 불로 태웠다.
 
세인의 따가운 눈총 속에 부정적 존재로 전락한 화투가 다시 전 국민의 오락거리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고스톱’ 열풍이 불면서다. 예측 불가능한 반전, 변칙적인 기술, 복합적인 변수와 함정, 정교한 룰로 무장한 고스톱은 1970년대 중반 혜성처럼 등장해 화투판을 천하통일하며 국민 제 1의 오락으로 우뚝 섰다. 두뇌싸움이 필요 없을 만큼 밋밋하고 평면적인 ‘민화투’나 ‘육백’보다 놀이의 확장성, 패턴의 다양성 면에서 고스톱은 기존의 화투게임을 한층 뛰어넘는 것이었다.
 
‘고스톱’ 화투판을 평정하다
 
고스톱은 화투 한 벌, 깔개 한 장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오락이다. 재미 또한 만만치 않다. 따따블, 쓰리고, 광박, 피박, 멍따, 뻑, 판쓸이, 독박, 폭탄, 따닥, 쪽, 퉁, 나가리, 쇼당 등 현란한 용어에서 보듯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한 변수와 경우의 수 때문에 한번 화투장을 잡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화투 화형식 행사. 노름은 사람이 하는데 화풀이는 애꿎은 화투에게 돌아갔다.]
 
고스톱은 남녀노소, 상하 구분 없이 누구나 즐기는 국민오락이 됐다. 일설에 의하면 대한민국 성인의 90%가 고스톱을 칠 줄 안다고 한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허물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 역시 고스톱이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보고 “아버님 얼른 죽으세요.”라거나 “똥 싸셨네요. 호호~”라고 해도 용서된다.
 
어떤 이는 고스톱 속에 인생의 지혜가 스며있다고 말한다. 게임에서 이겼을 때의 쾌감과 패했을 때의 상실감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고스톱은 마치 인생사의 기승전결을 옮겨 놓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사람은 살면서 무엇인가를 잃거나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나름의 우선순위를 정해두어야 하는데, ‘비풍초똥팔삼’은 그런 상황에 비유될 만한 말이다. 또 ‘낙장불입’은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얼마나 큰 화를 부르는지 일깨운다. ‘쇼당’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현명한 판단력을, ‘독박’은 무모한 모험과 섣부른 욕심이 자초한 화에 대한 경고를 보낸다. 반면 ‘못 먹어도 고’는 배짱과 도전정신을 강조한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사자성어는 타고난 재물, 실력이 없어도 ‘운빨’이 받쳐주면 누구나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암시한다. ‘묻고 더블’로 가면 얻는 것도 크겠지만 잃는 것도 많은 것이 인생이다. 고스톱의 세계는 순간의 선택과 욕심이 불러올 재앙을 경고하지만 지나치게 소심한 플레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군사독재와 민주화의 과정을 목도한 이 땅의 고스톱 ‘꾼’들은 한국 현대사를 응축시켜 놓은 변종 룰을 만들어 더 큰 재미를 선사했다. 특히 역대 대통령을 풍자한 ‘000고스톱’은 백미 중의 백미다. 몇 가지를 보자.
 
박정희 고스톱: 독재를 상징한다. ‘선(先)’이 자기 마음대로 규칙을 고칠 수 있으며, 세 번 연속해서 선을 잡은 사람은 끝날 때까지 계속 선이 된다(종신집권). 단풍(10월) 넉 장을 흔들면 ‘풍박’을 씌울 수 있다(10월 유신).
최규하 고스톱: 보통 싹쓸이를 하면 상대방의 피를 한 장씩 빼앗는데, 이 경우에는 오히려 상대에게 피를 한 장씩 줘야 한다. 전두환 군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최규하 전 대통령을 풍자한 것이다.
전두환 고스톱: 싹쓸이를 하면 상대방이 먹은 패 중에서 원하는 것 중 아무 것이나 가져올 수 있다.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른 국보위의 깡패 짓을 꼬집는 화투다.
노태우 고스톱: 6(열끗), 2(피), 9(피). 즉 6·29(선언)를 먼저 먹은 사람이 17점(6+2+9=17)으로 난다.
김영삼 고스톱: 선이 나머지 사람에게 자신의 패를 홀랑 까서 모두 보여준 뒤 치는 것. 대신 선이 이기면 2배의 점수를 얻는다. ‘마음을 비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김 대통령을 비유한 것이다.
이민우 고스톱: 점수가 났을 때 자기가 판단하지 못하고 나머지 두 사람에게 ‘고’할지 ‘스톱’할 지 묻는 거다. 80년대 신민당 총재였던 이 씨가 김영삼, 김대중 양인에게 휘둘리며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 상황을 빗댄 것이다.
김대중 고스톱: 1992년 대선에서 떨어진 뒤 불출마선언을 했다가 번복한 김 씨를 꼬집는 것. 3점이 나면 일단 ‘고’를 부르지만 곧 다음 사람 패를 들여다 본 뒤 아니다 싶으면 ‘스톱’을 할 수 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다. 애초 심심풀이 재미로 시작한 화투라도 과도하게 승부에 집착하다보면 불미스러운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놀자고’ 시작해서 ‘죽자고’ 치다 종국에는 담요를 뒤집고 멱살잡이하다 의절하거나 심하면 살인까지 부르는 비극이 종종 있었기에 하는 말이다. 몇 해 전 발생한 경북 상주군 마을회관의 농약사이다 살인사건도 고스톱 불화가 빚은 안타까운 범죄였다.
 
2015년 7월 14일. 경북 상주군 공성면 한 시골 마을회관 냉장고에 있던 사이다를 마신 할머니 6명이 쓰러져 이중 2명이 사망했다. 할머니들이 마신 사이다에서는 메소밀이란 농약성분이 검출됐다. 사건의 범인은 같은 마을에서 수십 년을 이웃으로 살아온 80대 박 모 노파. 범인으로 검거된 박 노파는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쟁점은 화투였다.
 
30여 년간 어울려온 할머니들은 평소 마을회관에서 10원짜리 내기화투로 소일했다. 사건 전날도 놀다가 싸웠다는 진술이 나왔다. 수사결과 박 노파가 화투놀이에서 종종 속임수를 써왔고, 이를 지적하는 이웃과 다투는 일이 잦았다는 것. 감정이 쌓이던 중, 사건 전날 화투를 치던 피해 할머니 한 사람이 패를 집어던지고 나와 버리는 사태가 일어났으며 자신을 향해 불만을 터뜨린 것에 앙심을 품은 박 할머니가 그만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것이다.
 
이처럼 화투놀이를 하다 사소한 시비로 감정이 격해져 끝내 살인을 저지른 유사사건이 많았다. 화투로 쌓인 노름빚을 갚으려 강도짓을 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있었다. 한편, 2000년 4월 12일 경기도 이천의 한 건강원에서는 50대 천 모씨가 지인을 칼로 찔러 숨지게 한 일이 있었다. 고스톱 개평 2,500원을 두고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오가는 현찰 속에 싹트는 우정’은 고사하고 ‘오가는 막말 속에 찢어진 우정’이 되기 십상인 게 노름판 생리다. 지나친 승부욕과 돈내기는 언제나 ‘대형사고’를 부를 수 있다는 교훈을 잊지 말자.
 
명절 때면 고스톱 신드롬의 폐해를 지적하는 신문기사, 캠페인이 넘쳐난다. 여자들은 음식장만, 설거지로 허리 펼 틈 없는데 남자들은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있는 것이 문제다. 노름 때문에 가족 간 대화가 단절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며느리 설거지시키고 시어머니마저 화투 패 돌리느라 바쁘시다. 왜색이니, 망국병이니, 대화단절이니 제 아무리 외쳐 봐도 안 된다. 고스톱은 이미 대세다.
 
대화 실종 운운하지만 그런다고 윷놀이를 하면 대화가 술술 풀릴까. 단언컨대 그럴 리 없다. 각자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그나마 온 가족을 둥글게 모여 앉도록 하는 데 고스톱만한 게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원천적으로 화투놀이를 봉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이제는 타협점을 찾도록 노력해보는 것이 더 슬기롭겠다.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도록 계도하고, 정부는 고스톱의 재미를 뛰어넘을 만한 새로운 놀 거리를 개발해 국민에게 보급하면 된다. 더불어 딴 돈은 설거지하느라 애쓴 며느리에게 모두 몰아주는 규칙도 만들면 좋겠다.
 
한 가지 첨부하며 맺는다. 언제부턴가 고스톱이 치매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 널리 떠돌았다. 그런데 의사들 조언에 따르면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말이란다. 고스톱놀이가 일시적으로 뇌의 활용도를 높여주긴 하지만 독서 같은 것은 멀리하고 지나치게 고스톱만 즐기면 ‘화투만 잘 치는 치매환자’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에필로그: 화투하면 왜색문화에 빠진다? ------------------------
 
화투를 둘러싼 왜색시비는 끊이질 않는다. 국민적 놀이 고스톱도 일본의 화투게임 ‘코이코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화투가 일본에서 전파된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화투는 10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완전히 현지화에 성공한 오락이다. 특히 일본인마저 감탄할 만큼 독창적인 룰로 완성한 고스톱은 우리의 문화이지 일본의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우리가 만든 온라인 고스톱게임이 역수출되어 일본사람을 열광시키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화투를 둘러싼 왜색시비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다.
 
일본사람들은 우리만큼 화투를 즐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중국에서 들여온 마작을 더 좋아한다. 일본사람들이 마작을 즐기면서 스스로 중국문화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할 지는 미지수다. 한국인 역시 화투를 가지고 놀지만 일본 정서에 동화될 만큼 얼간이들은 아니다.
 
화투가 일본문화라 해서 배격해야 한다면 스시나 돈가스는 먹지 말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삼성전자가 일본의 핵심부품을 사용했다면 갤럭시 스마트폰은 일본의 혼이 담긴 첨단기기일까. 노래방의 기원이 ‘가라오케(カラオケ)’라면 대한민국의 모든 노래방은 폐쇄해야 하는 걸까. 짜장면이 중국음식이 아니듯 오늘날의 화투놀이(고스톱)는 한국적 문화세례를 듬뿍 받은 우리의 놀이문화로 봐야 한다.
 
그동안 민간에서는 한국의 특색을 가미한 화투를 보급하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독도화투’ ‘개벽화투’ ‘한투’ 등 한국의 정서를 담아낸 화투가 보급됐지만 일반화에는 모두 실패했다. 기모노에 태극문양 그려 넣는다고 한복이 되는 게 아니라면 본질은 외면한 채 그림 정도 바꾸는 식의 개혁운동은 이제 그만 두는 게 좋을 듯하다.
 
사족(蛇足) 하나. 화투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는 분은 이런 글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 밝혀두지만 글쓴이는 절대 고스톱 마니아가 아니다. 일본문화를 옹호하는 인간도 아니다. 기회가 되어 지인들과 어울려 화투를 칠 때면 주로 돈을 잃는 ‘호구’일 뿐이니 화투 예찬론자로 오해는 말아주시길.
 
 

silverinews 박영신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