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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신의 <광고 한 편, 사진 한 장으로 읽는 대중문화 이야기> (22) CM송

기사승인 2021.03.22  15: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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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보다 더 많이 애창한 국민가요가 또 있을까

난센스 퀴즈다. 1959년도에 발표된 다음 노래 중 가장 히트한 곡은 무엇일까. ①이미자의 <열아홉 순정> ②명국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 ③황정자의 <처녀 뱃사공> ④안정애의 <대전 블루스>. 난센스 문제라 했으니 제시된 문항 중에 답이 있을 리 없다. 여기서 원하는 정답은 진로소주 광고에 쓰였던 ‘차차차 송(Song)’이다.
 
1959년 11월 공개된 차차차 송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든 창작 시엠(CM: Commercial Message)송이다. 광고길이, 내용, 제품규제 등의 까다로운 제약이 없던 시절에 50초의 긴 분량으로 제작된 이 광고는 부산MBC 라디오를 통해 첫 전파를 탔다. 경쾌한 차차차 리듬의 코러스가 돋보였던 차차차 송은 만화가 신동헌이 그린 극장·TV용 애니메이션 광고로도 만들어져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폭발적 인기’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싶다. 중독성 있는 가사, 쉽고 반복적인 리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까지. 당시 이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다고 하니 가히 국민가요라 칭해도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그 유명한 차차차 송 가사다.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
야야야 야야야야 차차차
너도 진로 나도 진로
야야야 야야야야 차차차
향기가 코끝에 풍기면 혀끝이 짜르르하네
술술 진로 소주 한 잔이 파라다이스
희망찬 우리들의 보너스
진로 한 잔이면 걱정도 없어
진로 한잔 하면 어~허 기분이 좋아요
진로 파라다이스
 
 
[▲신동헌 화백이 그린 진로소주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광고가 확산되면서 성인은 물론이고 술과는 인연이 없는 동네 꼬마들까지 놀이터에서 차차차 송을 부르며 놀았다. 심지어 학교 교실에서도 불렀다. 어린 것들이 "향기가 코끝에 풍기면 혀끝이 짜르르하네"라는 가사를 여과 없이 따라 부르는 바람에 교육적으로 적잖은 논란을 야기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차차차 송은 당시 동양방송 라디오 편성국장이었던 손권식(예명 손민)이 가사를 썼고 부산 MBC 악단장 허영철이 곡을 붙인 것이다. 이 노래의 대박 히트로 당시 진로소주 매출이 무려 30배 가까이 신장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1961년 샘표식품도 <샘표간장> CM송을 내놓아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매출상승 일등공신이 된 CM송
 
보고는 몰라요~ 들어서도 몰라요~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 간장~
빛깔을 보세요 향긋한 냄새
입맛을 돋구는 샘표 간장~
복동이 엄마도 샘~샘~ 샘이 나서 샘표간장
간장은 역시 샘표간장
 
양조간장의 대명사로 불렸던 샘표식품의 광고 삽입곡 역시 차차차 송에 버금갈 만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국민CM송 반열에 올랐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고려대 법대 2년생으로, 얼굴 없는 가수라 알려졌던 김상희였다. 영화배우 주증녀, 전양자 등 현모양처 이미지를 갖춘 모델에 ‘복동이 엄마···’ 같은 서민적인 가사가 어우러진 노래는 곧 대중의 반향을 불렀다. 멜로디는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 <진고개 신사>의 작곡자 김호길 솜씨다. 김상희는 지난 2006년 샘표식품 창립 60주년을 맞아 예전 CM송을 다시 녹음하는 감회를 맛보았다. 뉴트로 열풍을 타고 부활한 김상희의 음성이 무려 45년 만에 다시 라디오 광고로 제작된 것이다.
 
샘표식품이 국내 양조간장 업계의 선두주자로 발돋움할 무렵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신한제분주식회사가 판매하던 <닭표간장>이다. <샘표간장> CM송의 인기에 자극을 받은 까닭인지 닭표간장도 1963년 비장의 CM송을 내놓았다. 이 CM송도 크게 유행했다. 나이든 세대는 금세 기억해낼 닭표간장 CM송 가사다.
 
닭이 운다 꼬끼요
집집마다 꼬끼요
맛을 낼 땐 닭표간장
꼭 낀다고 꼬끼요
 
간결한 가사와 단순한 리듬이 주는 중독성 때문에 CM송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따라 부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초창기 대부분의 CM송은 제품명을 단순 반복하거나 동요나 사가(社歌)를 연상시키는 유치한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얼굴의 주름도, 마음의 주름도
모두모두 없어져요, 젊어져요
희고, 곱고, 아름다워진답니다
미미 마담크림, 미미 토플로숀
(고려화학공업사, 미미화장품)
 
ABC, ABC, ABC
ABC화장품은 (와! 와!)
현대인의 문화, 모두가 사랑하네
너도나도 발라보고 다시 찾는 ABC
ABC가 최고야
(ABC화장품, 현 아모레퍼시픽)
 
이렇듯 초기 CM송은 자사제품의 미화에 몰두한 나머지 낯간지러울 정도로 과장된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무리한 도약과 극단적인 단조로움에 치우침으로써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1960년대 들어 방송의 상업광고 참여가 활성화 되자 일부 기업들은 CM송 현상공모전을 펴는 등 보다 공격적인 광고마케팅에 나섰다. 1961년 국내 최초의 합성세제 <하이타이> 제조사로 명성이 높았던 생활용품전문기업 락희화학(현 LG화학)은 1969년 자사의 치약제품을 홍보할 CM송 가사를 공모해 <웃어보자 활짝/ 하얀 이가 반짝/ 럭키치약>이란 작품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자양강장제 <박카스>를 생산하는 동아제약도 1972년 3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CM송 가사를 공모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뒷이야기 한 토막. 1955년 8월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 <시발택시>가 생산됐다. 을지로의 천막공장에서 기자 출신 최무성, 악극인 출신 혜성, 정비사 출신 순성 3형제가 모여 일궈낸 집념의 산물 시발택시는 광복 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에서 이승만 대통령상(대상)을 수상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8만환의 가격에도 안 팔리던 시발택시는 35만환까지 값이 치솟았고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할 만큼 인기가 치솟았다. 1956년에는 부유층 자녀들을 중심으로 자동차 구매를 위한 ‘시발계’가 성행하기도 했다. 시발택시는 1963년까지 생산됐다. 그 무렵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졌다는 시발택시 CM송이다.
 
시-발, 시-발
우리의 시-발
시-발 자동차를 타고 삼천리를 달리자
 
유감스럽게 이 CM송의 악보나 음원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위 가사도 한국자동차 역사의 산 증인이자 자료 수집광으로 알려진 전영선(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 소장의 증언을 채록한 것이다. ‘시발(始發)’이란 말은 ‘첫 출발’의 의미이지만 썩 듣기 좋은 어휘는 아니었다. ‘시-발, 시-발’하면 마치 비속어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 노래를 따라 부르면 어른들이 자주 꾸짖었다고 한다.
 
1970~80년대는 CM송 황금기
 
1960년대가 CM송의 태동기였다면 1970~80년대는 영상광고와 CM송이 만개한 시기다. TV 보급,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변되는 청년문화 확산에 힘입어 이 시기 CM송은 하나의 트렌드로 정착되었다. 특히 대마초 파동으로 설 땅을 잃은 가요계의 재주꾼들이 대거 광고음악 시장으로 몰려든 것이 유행의 단초가 됐다.
 
이장희, 김도향, 김세환, 윤형주, 강근식, 송창식 등 전설적 포크멤버들이 광고음악 창작에 가세하면서 현대적인 감각, 개성 있고 신선한 창법, 압축적인 가사, 도시적이고 세련된 멜로디를 장착한 CM송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특히 김도향과 윤형주는 ‘미다스의 손’ ‘히트제조기’ ‘황금 알을 낳는 거위’란 평을 들으며 지금까지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국민적 CM송들을 양산해냈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월드콘> <스크류바> <맛동산> <삼립 호빵> <양반김> <오란씨> <롯데껌> <새우깡> <농심라면> CM송이 모두 두 사람 작품이다.
 
 
[▲‘오란씨’ CM송은 한때 여론조사에서우리 국민이 제일 사랑하는 광고노래로뽑힌 바 있다. 사진 속 인물은 1972년 오란씨 1기 모델인 영화배우 윤여정.]
 
포문은 김도향이 먼저 열었다. 1973년 나온 오리온 <줄줄이 사탕>이 그것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따라 부를 만큼 빅 히트한 줄줄이 사탕 노래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배영근 어린이가 불렀다.
 
아빠 오실 때 줄줄이
엄마 오실 때 줄줄이
우리들은 오리온 줄줄이 사탕
(나는 먹고 싶은 거야: 대사)
 
노래가 알려지자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벽에 걸어놓고 한 봉씩 떼어 먹는 줄줄이 사탕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청소년들은 원곡을 개사한 노래도 만들어 유행시켰다. 기억하시는가. 원곡만큼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
 
아빠 오실 때 텔레비전
엄마 오실 때 세탁기
우리 집은 줄줄이 도둑놈 가족
(나는 훔치고 싶은 거야: 대사)
 
이후, 제과 음료 등 젊은 층이 선호하는 제품을 중심으로 CM송을 얹은 광고가 속속 등장했다.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 빙그레 싸만코(이장희)>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강근식)> <엄마 아빠도 함께 투게더 투게더(송창식)> <좋은 사람 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롯데껌(윤형주)>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 그리 예쁜가요 아아아~ 아카시아껌(김도향)>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가요(윤형주)> 등이다. 당시로선 매우 세련되고 참신한 감각의 창작곡이 주를 이루면서 10초 내외의 짧은 CM송은 수십억 원 이상의 이윤을 보장하는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동아오츠카의 <오란씨>광고였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날들이여
오~오오오 오란씨
 
1977년 나온 오란씨 광고는 과거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CM송으로 꼽힐 만큼 사랑받은 애창곡이다. 서정적인 가사, 감미로운 멜로디, 무명에 가까웠던 연극배우 윤석화의 신선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오란씨 광고는 말 그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렀다. 이 한 편의 CM송으로 오란씨는 청량음료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던 <칠성사이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윤형주가 제작한 오란씨 CM송은 오리지널 외국 곡을 편곡한 것이었다. 아일랜드 구전민요로 전해지던 이 노래를 일찍이 미국가수 브라이언 콜이 <Pretty Little Girl From Omagh>란 제목으로 발표한바 있다. 1967년에는 폴 뉴먼이 영화 <폭력탈옥>에 출연하여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가수 오준영이 <고엽>이란 타이틀로 리메이크했다. <고엽>의 가사는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너 가는 길을 밝혀라/ 비가와도 눈이 와도/ 젖지 않는 너의 모습/ 오 그대 내 사랑이여>이다. 비슷한 가사를 지닌 오준영의 <고엽>과 윤형주의 CM송은 모두 같은 해에 나왔다. 다만 둘 중 어느 가사가 먼저 쓰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칠성사이다> 이야기도 곁들이자. 순백의 국민음료 칠성 사이다는 6.25전쟁 바로 직전인 1950년 5월에 탄생했다. 공동 창업주(주동익, 최금덕, 박운석, 방계량, 정선명, 김명근, 우상대) 7명의 성(姓)이 모두 달라서 상호를 ‘칠성(七姓)’으로 지으려 했으나 영원무궁한 북두칠성의 의미를 담자고 하여 ‘칠성(七星)’이라 명명했다고 한다. 소풍가거나 기차여행 할 때 김밥, 삶은 계란과 딱 맞는 궁합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은 제품이 칠성 사이다였다. 그랬던 칠성 사이다도 1969년 미국의 <코카콜라>가 이 땅에 상륙하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칠성 사이다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마케팅전략과 함께 비장의 CM송을 앞세워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특히 1978년 혜은이가 부른 CM송이 먹혀들었다. 현대적인 감각과 넘치는 발랄함을 앞세운 이 광고는 신선한 청량음료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극대화시켰다는 평가다.
 
일곱 개의 별마다 행운이 가득
칠성사이다 슈비슈바
반짝이는 방울마다 젊음이 가득
칠성사이다 슈비슈바
언제나 칠성, 칠성사이다.
 
<코카콜라>도 <여고졸업반>이란 노래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김인순(1953~1988)을 모델로 섭외하여 CM송까지 부르게 했다. 그녀가 부른 <코카콜라> CM송은 1971년 미국서 만든 <Hill Top>이 오리지널 곡이다. 국내 편곡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이봉조의 몫이었다.
 
야호~
사랑하는 우리 세계
다정한 이웃
코카콜라
노래하자 우리 세계
코카콜라
산뜻한 그 맛
오직 그것 뿐
코카콜라
 
1990년대 들어 광고음악계는 큰 변화를 맞는다. 유로, 레게, 힙합, 테크노, 하우스 등 다양한 장르의 댄스음악이 소개되는 한편 컴퓨터에 의한 곡 작업이 일반화 되며 창작환경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 시기에는 CM송을 직접 작곡하기보다는 대중의 귀에 익숙한 팝송 멜로디를 BGM(Back Ground Music)으로 차용하는 것이 새로운 흐름이었다. 나아가 멜로디에 의존하기 보다는 영상위주 광고제작에 더 집중했다.
 
시대의 조류, 시장의 동향, 소비자 욕구가 변함에 따라 CM송은 우리 곁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유행이란 돌고 도는 것 아니던가. 2000년대 들어 다시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레트로’와 ‘뉴트로’를 표방한 복고바람이 불면서 왕년의 CM송 가수가 재소환 되기 시작한 것이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유명 아이돌 가수를 등장시켜 예전에 히트한 CM송을 리메이크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이러한 문화 교감의 욕구는 CM송의 재림을 기대하게 만든다. 과연 제2의 CM송 시대는 부활할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에필로그: 달고나 커피 --------------
 
어쩌면 이렇게 시원할까 쮸쮸바
쮸쮸루 쮸쮸쮸 쮸쮸루 쮸쮸바
삼강 쮸쮸바
 
1976년 시판된 빙과 <쮸쮸바> CM송이다. 당시 <쮸쮸바>를 만든 삼강산업(롯데푸드 전신)은 국내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대량 생산했던 기업이다. 1962년 내놓은 전설적인 얼음과자 <삼강하드>와 <아맛나>는 삼강의 상징과도 같은 제품이다.
 
한때 삼강산업은 마가린 생산업체로도 유명했다. 마가린과 버터를 잘 구별할 수 없던 때라 그냥 뭉뚱그려 ‘빠다’라고 불렀던 삼강 마가린은 ‘빠다간장밥’이라는 기발한 레시피로 궁핍했던 시절 서민의 헛헛한 뱃속을 달래준 고마운 존재였다.
 
갓 지어낸 뜨거운 쌀밥을 대접에 담고, 가운뎃부분을 동그랗게 파낸 뒤 빠다를 크게 한 숟갈 떼어 내 그 자리에 얹는다. 밥알의 온기로 빠다가 스르르 녹기 시작하면 진간장 몇 숟갈을 넣어 잘 비비고 그 위에 깨소금을 솔솔 뿌려준다··· 그러면 세상에 둘도 없는 맛있는 ‘빠다간장밥’이 탄생했다. 올드 세대 구성원이라면 황홀했던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내게는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아들이 있다. 녀석이 대여섯 살 쯤 되었을 때다. 맛있는 것 해주마라며 달고나를 만들어준 적이 있다. 설탕 녹인 국자에 식용소다를 첨가하자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이 신기했는지 녀석은 냉큼 달고나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다 이내 맛없다 투덜거리고는 기어코 얼굴까지 째그렸다.
 
십년 넘게 외국 가 살며 결혼까지 한 그 아들이 얼마 전 달고나 커피를 만들었다며 인증 샷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흐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녀석도 이다음에 제 자식을 낳으면 맛있는 것 해주겠다며 혹시 달고나 커피를 만들지는 않을까.’ ‘달고나 커피를 맛본 손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지 애비가 그랬던 것처럼 얼굴 찡그리며 성내지는 않을까.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CM송을 화제로 삼다가 나 홀로 추억에 빠져 쓸데없이 이야기를 키웠다. 빠다간장밥, 분홍색 소시지, 황도통조림, 누런 봉투에 싼 전기구이 통닭 등 누군가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음식이야기까지 하자고 들면 끝이 없겠다. 그러니 오늘은 ‘이만 총총’ 줄이는 것으로.
 
 

silverinews 박영신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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