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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 |
김수동의 공공체 주거 이야기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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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어렵게 내 안의 내적갈등을 극복하고 가족의 동의를 얻어 공동체주택 추진모임에 참여를 결정했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이제 아무 걱정 없이 다 잘 되겠지?”하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큰 오산이다.
여러 번 이야기 하였듯이 공동체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주거를 결정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보통의 경우 자신의 경제 형편을 고려하여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집을 골라 매입을 하거나 세를 얻으면 된다. 만약 직접 집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저 내가 알아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매우 익숙하고 단순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동체주택을 짓는 일은 낯설고 복잡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하나하나 모두가 공유하고 협의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당연히 더디다. 가끔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황금 같은 주말에 매주 모이자고 한다. 모임에 나가면 매번 늦는 사람들 때문에 30분은 기본이고 가끔은 1시간 이상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모임을 운영하려면 공통비용 관리도 하고 회의록도 정리해야 하고 여기저기 관계기관 및 관계자들과 연락도 하고 협의도 해야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이 많은데, 일 하는 사람만 바쁘고 몇몇 사람은 별로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이걸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된다. 과연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이 사람들과 잘 살 수 있을까? 이건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한번 복잡해진 생각은 끊임없는 염려로 이어진다.
걱정이 되는 것 당연하다. 이제야 우리는 공동체주거의 리얼 월드에 들어선 것이다. 처음 생각했던 공동체주택에 대한 기대와 꿈은 잠시 내려놓자. 그 꿈은 리얼 월드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갈등 너머에 있다. 그럼 공동체주택 설립 과정에서 예상되는 갈등의 지점은 어디인가? 공동체주택에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4대 갈등요소가 있다.
1. 참여자의 선정
2. 대표자의 선정
3. 동호수의 결정
4. 무임승차자, 형평성의 문제
1. 참여자의 선정 --------------------------------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이 문제에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공동체가 지향하는 공유가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력, 학력, 심지어 종교까지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생활공동체로서 주거공동체에 적합한 사람들의 보편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 경제력 : 보통의 서민 중산층
- 건강 : 독립적 생활이 가능
- 돈 보다는 가치 지향적
- 탈권위적이며 수평적사고가 가능한 사람
- 절제된 소비생활
- 공동체를 고려한 배려심과 책임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외에는 오히려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이도 젊은 사람부터 어르신까지, 1인가구와 다인가구, 다양한 직업과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재미있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구성된 공동체가 아니라면 공동체 구성원의 모집과 선정에 대해서는 전문코디네이터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함께 살 사람들인데 먼저 들어 온 사람들이 나중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관계가 설정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2. 대표자의 선정 --------------------------------
공동체 참여자가 구성되었다면 그 다음으로 대표자를 정하고 역할을 분담하여야 한다. 물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은 수평적 관계이다. 하지만 집을 짓기 위해 코디네이터, 건축가, 시공사, 관공서 등 많은 이해관계자를 상대해야 하는데 제 각각 자기 이야기를 해서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공동체 내부의 소통에 있어서도 대표자의 역할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첫 입주자대표를 잘 뽑는 것이 공동체주거 성공의 첫 걸음이다. 대표자는 무엇보다 구성원들의 신망을 받는 분이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사회경험과 전문성을 갖추신 분이면 더욱 좋고 무엇보다 봉사와 헌신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 신중히 생각해서 믿을 만하고 일을 잘 하실 분을 선정하여야 하며, 선정한 후에는 모든 구성원들이 일을 잘 하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하여야 한다. 대표자 선정의 최악의 시나리오는 모두가 생기는 것 없이 일만 많고 말도 많은 입주자대표를 안하려고 해서 누군가를 억지로 세워 놓고, 대표가 하는 일 맘에 안 든다고 탓하고 협조 안하는 것이다. 이런 공동체는 잘 될 수가 없다.
서번트 리더와 열정과 적극성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팔로워, 이것만 잘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3. 동 호수의 결정 : 공동체의 가치와 주택가치의 조화 -----------
아름다운 주거공동체를 향해 가는 길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악마의 유혹 같은 것이다. 아파트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다세대주택 형태의 코하우징 공동체주택의 경우도 동호수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다. 특히 아름다운 조망을 가진 위치에 집을 짓는 경우에는 더욱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아파트라면 이런 경우 추첨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공평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공동체주택도 추첨을 하는 것이 최선일까? 아니다. 만약 추첨을 해서 결정을 할 경우, 원하는 곳으로 결정된 사람이야 좋아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뭔가 손해 본 것 같은 마음이 오래 남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앙금은 나중에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묘수가 없다. 서로 합의에 이를 때까지 토론하는 것이다.
일단 세대별로 선호하는 동호수를 1차로 조사한다.
중복이 되지 않는 곳은 신청자로 결정한다.
경쟁이 발생한 곳은 각 세대가 그 곳을 원하는 이유, 그 집에 살아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설명한다.
이 때, 일방이 상대의 뜻을 받아들여 양보를 한다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양보의사가 없다면 공동체에 오랜 기간 적극적으로 기여한 사람, 사회적 약자(장애인, 여성, 고령자...)를 우선 고려하여 배정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식으로 결정을 하게 되면, 원하는 곳에 들어가게 된 사람은 타인의 배려를 받았기에 공동체에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양보한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결정이기에 앙금이 남지 않는다. 그리고 경험자로서 자신 있게 이야기 하건대 그 때부터 내 집이 좋은 이유가 마구마구 생긴다.
이러한 배정방법과 원칙이 사전에 공지되었고, 지나온 시간 잘 배려하고 협력해 온 공동체라면 이 악마의 유혹을 잘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고 싶은 말은 공동체주택은 공동체의 가치와 주택의 가치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모두가 주택의 가치만을 추구하다가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바란다.
4. 무임승차자, 형평성의 문제 -------------------------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 문제이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한다. 만약 무임승차자 문제를 방치하면 공동체의 지속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번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
공동체주거에 참여하게 되면 모임도 많고 회의도 많고 참여자들이 분담해야 할 일도 많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모두가 똑 같이 참여하고 1/n로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모든 가구의 형편과 사정은 다 다르다. 그 사정과 형편을 헤아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주거공동체는 한두 번 보고 말 사이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함께 갈 관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함부로 이기심을 내 보이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불참과 회피가 아니라면 배려하고 기다려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가 기꺼이 솔선수범하면 된다. 몇 사람이 앞서 모범을 보이면 다른 사람도 다 따라 온다.
너무 빡빡한 원칙과 기준은 공동체를 숨 막히게 한다. 공동체의 싹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여유와 틈 사이에서 자란다.
지금까지 공동체주택 추진의 4대 갈등요소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겠지만 자신컨대 이 4대 갈등요소만 잘 극복한다면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더 이상 극복하지 못할 갈등이 없고, 어떤 상황이 와도 감당할 만큼 공동체가 자치력을 키웠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갈등 요소를 극복하지 못해 불신이 쌓이고 불통이 지속된다면 그 집은 그냥 빌라, 다세대주택과 다름이 없다. 공동체의 가치가 살아있지 않은 공동체주택, 참 불편한 집이다.
silverinews 김수동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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