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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동의 공동체 주거 이야기 (2)

기사승인 2018.04.26  09: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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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남이가

▲ 김수동 (더함플러스협동조합 이사장)

 

김수동의 공동체 주거 이야기 (2)

 
- 우리가 남이가
 
 
 공동체기반이 붕괴된 ‘도시에서 나이 든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그것은 협소주택(또는 자식들 떠난 빈 둥지)에 홀로 남아,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며, 서서히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민이 평균적으로 3~4년 만에 이사를 다니는 것에 비해 고령층(65세 이상)의 경우는 평균 11년 이상 같은 집에 거주한다고 한다. 게다가 1인 가구는 4인 가구와 비교 시 거의 3배 가까이 비싼 주거비를 부담하고 있다. 고령자를 고려하지 않은 대부분의 도시주택은 시간이 갈수록 어르신들에게 위험한 장소가 될 수 있다. 특히 승강기가 없는 노후 주택, 집안 곳곳에 있는 단차, 미끄러운 욕실, 주방의 가스 등등. 나이가 들고 심신이 약해지면서 점차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지만 이웃을 상실한 바쁜 도시인 누구도 어르신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렇게 어르신들은 도시의 집에 홀로 남아 서서히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가는 것이다.
 
곧 다가올 초고령사회는 외로움과의 전쟁이다. 그 누구도 이 싸움을 피해갈 수 없다. 누구나 언젠가는 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시대, 우리에게 어떤 대안이 있을까?
 
다시 가족에서부터 그 가능성을 짚어 본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충분히 독립적이지 않다면, 가족의 존재는 힘이 아니라 짐이 될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에 의존하는 자녀, 부양 부담으로 노년의 부모님 장수를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현실에서 가족은 노후의 안전망이 아닌 생존의 위협요소가 될 수도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인식은 빠르게 변하여 젊은 세대는 노년의 부모에 대한 부양책임이 자식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부모세대 또한 노년의 삶을 자식에게 의존할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노년의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려면 결국 거주지를 중심으로 관계망을 구축하여야 한다. 가까이 사는 이웃들과 교류를 트고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참 쉽지 않다. 만인이 만인을 경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삭막해진 도시에서 낯선 이의 친절과 접근은 늘 경계의 대상이다. 좋은 마음으로 시도해 보지만 몇 번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고 나면 더 이상은 지속하기가 힘들어 포기하고 만다. 이 때 포기하지 않고 더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는 대안 중의 하나가 공동체주택이다, 관심이 공동체주택에 이르게 되면 ‘누구와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르게 된다.
 
이때 필자를 포함하여 누구나 처음에는 ‘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 중에 함께할 만한 사람이 없는지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사람을 떠 올려 보지만 막상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 다음으로는 “나이 들어 자식들 떠나보내고 나면 우리 함께 어울려 살자”고 술만 마시면 안주 삼아 이야기 하던 오랜 친구들,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또한 로망일 뿐, 현실화되는 일은 거의 없다. 주위 사람들과 공동체주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아는 누군가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주택을 시도했지만 진행과정에서 싸움이 벌어져 실패하고 친구 사이만 멀어졌다”라는 류의 안 좋은 소리만 가득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우선 ‘아는 것’과 ‘함께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공동체주택을 생각할 때, 당연히 내가 모르는 사람과는 함께 살 수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가까운 사람’, ‘잘 아는 사람’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 사이가 ‘가깝다’는 어떤 의미일까?
 
우리 사회에서 그것은 바로 학연 · 지연 · 혈연의 관계이다. 너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 있어야 한다. 표면적이고 일차적인 동질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온갖 이유와 명분으로 연을 만든다. 일단 이해관계가 형성되면 서로를 단단히 묶어야 한다. 유일한 덕목은 의리이고 배신은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끊임없이 서로를 확인한다.
 
“우리가 남이가?”
 
우리 세대는 모두 이 말을 기억할 것이다. 지금은 수인이 되어 있는 김기춘씨가 92년 대선 정국에 부산의 기관장들을 모아 놓고 한 말이다. 우리나라 민주화의 시계를 한 순간에 수십 년 거꾸로 돌렸을 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를 지역주의의 늪에 빠지게 한 망국적 한 마디이다.
 
이런 관계 피곤하다.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이러한 관계는 결코 건강하지 못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계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으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고통을 받고 있다. 직장의 상사, 동료, 친구, 심지어 가족일 수도 있다. 모두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는 일보다 관계 때문에 힘들다고 하고, 밖에서는 친구 때문에 힘들어 하고, 집에서는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모두가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한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관계를 회피하고 거부하고 멀리하는 의미의 ‘관태기’, ‘관계다이어트’, ‘티슈인맥’과 같은 신조어를 낳고 있다.
 
‘우리가 남이가?‘, 이런 관계 말고 좀 다른 관계는 없을까?
 
 

silverinews 김수동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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