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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65

기사승인 2019.04.16  09: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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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 찾아서_#21. 마음(心)과 나(我)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참나’라고 하는 진리적 기운이 있어서이다. 지구 위에 모든 생명체는 이 진리라는 기운(자연 기운) 속에 살고 있다. 인간은 육신이 있으므로 이 기운을 인지하는 기능이 있으며 이것을 ‘내 마음’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이 기능은 죽으면 사라지는 것이고 참나라고 하는 무의식(無意識)의 기운만 남는다. 그러나 살아 있으므로 인지하는 마음인 ‘나’라고 하는 이것을 나는 아상(我相)이라고 했고, 사람은 이것을 ‘내 마음’이라고 인지하고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내 마음’이라고 인식하는 이 마음은 내가 죽으면 인지하지 못하고, 무의식(참나, 진리의 기운)으로만 남고 이 무의식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빙의 현상(업장)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참나’라는 이 기운은 그대로 여여자연하게 영구하게 존재하지만, 육신이 살아 있음으로써 ‘나’라는 상의 마음을 인지하고, 죽으면 의식이 없으므로 나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몸이 있으면 의식과 무의식이 함께 공존하지만 죽으면 무의식(참나의 기운)으로만 남고 이 참나가 인(因)이 되고, 참나 속에 있는 흔적이 과(果)가 되어 나는 다시 그 이치에 따라 태어나는 것뿐이다. 이것이 인과(因果)의 정석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내 마음, ‘나’라고 인식하는 것은 진리 기운(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이같이 진리적으로 존재하는 무의식의 기운을 육신이 있으므로 있는 ‘의식’인 ‘나’라고 인식할 뿐이고 이것은 마치 깜깜한 방에 불을 켜고 끄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몸이 있어서 인지하는 기운은 자업자득, 인과응보의 이치에 따른 나(참나)의 기운이며, 우리는 자업자득, 인과응보 그 이치대로 살고 있을 뿐이며 이것을 바로 운명(運命), 또는 본성(本性)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이 기운(마음)은 참나의 것일 수도 있고, 내 것이 아닌 다른 것(기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윤회에 들지 못한 다른 사람의 ‘참나-마음’일 수 있다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빙의(업장)의 개념이다. 따라서 이 무의식의 기운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은 무의식에 빠진 행동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정신병(조현병) 등과 같이 개개인의 업에 따라 무수한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현상은 물질 개념으로 치료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치를 깨달은 자의 마음(상이 없는 마음)으로만 치료가 가능하다 할 것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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