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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㊸ - 가을소나타

기사승인 2019.10.21  15: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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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㊸ - 가을소나타
 
 
  - 제작: 1978년, 스웨덴·독일·영국·프랑스
  - 감독: 잉마르 베리만
  - 배우: 잉그리드 버그만, 리브 울만 외
  - 필름: 컬러
  - 상영시간: 93분
  - 수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마음에도 바람이 부는 늦은 가을. 목가적 풍경의 호수가 있는 북유럽의 작은 마을. 창문 커튼 너머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 창가에 앉아 편지를 쓰는 여인. 그리고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 2번.
 
스웨덴이 낳은 거장 잉마르 베리만의 후기 걸작 ‘가을 소나타(Autumn Sonata)'는 평화로운 가을 풍경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조용하고 안락한 분위기로 출발한 영화는 이내 갈등과 불안, 강박과 분노, 슬픔과 고통의 연주회로 변해버린다.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와 관계묘사에 탁월했던 잉마르 베리만(1918~2007)은 일찍이 신과 인간, 삶과 죽음, 존재와 구원이라는 화두 앞에서 철학과 신학, 존재론적인 해답을 구하려고 고심한 인물이다. ‘제7의 봉인(1957)’ ‘산딸기(1957)’ ‘처녀의 샘(1960)’ 같은 작품은 잉마르 베리만의 그 같은 성향이 잘 녹아 있는 영화들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 잉마르 베리만의 시선은 여성들의 세계를 아주 냉정하게 관찰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가을소나타’다. 갈등과 애증으로 점철된 어느 모녀의 불안한 심리세계와 파국으로 치닫는 극한의 감정대립을 섬세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잉마르 베리만의 후기 필모그래피에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명작으로 기록된다.
 
두 모녀에 잠재된 불안
 
호숫가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한 작은 마을. 목회자로 일하는 남편 빅토르(할바르 뷔욕)와 작가인 그의 아내 에바(리브 울만)는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산다. 어느 가을날, 커튼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는 거실의 탁자에 앉아 에바는 편지를 쓴다. 수신인은 그녀의 엄마인 샬롯(잉그리드 버그만)이다.
 
엄마의 오랜 연인이었던 레오나르도 아저씨가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은 에바는 충격과 외로움에 빠져있을 엄마를 위해 위로와 함께 며칠간 자신의 집에 와서 머리를 식히고 가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 것이다.
 
샬롯은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세계 도처를 무대로 연주활동을 다닐 만큼 인정받는 실력자. 저명한 피아니스트로서 성공과 명예를 얻은 샬롯은 그 대신 남편, 아이들과는 단란한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다. 자존감과 성취욕이 강한 그녀에게는 가족보다 피아노가 우선이다. 엄마가 피아노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어린 에바는 모성에 더 목말라 하며 외롭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낙엽 쌓인 에바의 집 뜰 안으로 자동차 한 대가 거침없이 미끄러져 들어온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샬롯. 창 너머로 엄마의 모습을 본 에바는 단숨에 달려 나와 포옹한다. 나이는 들었지만 너무나 세련되고 품위가 넘치는 샬롯. 그에 비해 수수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한 에바의 모습은 사뭇 대조적이다.
 
무려 7년 만의 재회. 긴 세월을 보지 못했는데도 엄마는 딸이 살아가는 것에 별로 궁금한 점이 없어 보인다. 샬롯은 그저 형식적인 태도로 딸의 근황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만다. 대신 죽은 연인 레오나르도에 대한 감정과 노년에 피아니스트로서 느끼는 애환과 고충 따위를 줄줄이 늘어놓느라 여념이 없다.
 
그나마 있던 분위기도 에바의 입에서 헬레나란 이름이 튀어나오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어색해진다. 헬레나(레나 니만)는 에바의 여동생으로서, 심각한 질병 때문에 사지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지체부자유자다. 언어소통도 어렵다. 요양원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헬레나가 2년 전부터 이곳에 와있었다는 말을 듣자 샬롯은 불같이 화를 낸다.
 
“그런 사실을 왜 편지에 쓰지 않았냐.”며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샬롯. 편지에 헬레나 얘기를 썼다면 엄마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실 샬롯은 심한 장애를 가진 딸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헬레나는 항상 지워지지 않는 그늘이다. ‘오늘만큼은 헬레나를 보고 싶지 않다’던 샬롯은 혼란한 감정이 수습되었는지 헬레나의 방으로 간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휠체어의 딸을 힘껏 끌어안고 키스한다.
 
헬레나가 샬롯의 마음속에 그늘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면 에바의 내면에도 도저히 지울 수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그것은 몇 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나 지금은 곁에 없는 아들 에릭에 대한 흔적이다.
 
4살의 어린 아들을 익사 사고로 잃은 에바는 이따금 치우지 않고 놔둔 아들의 방에 들어가 슬픔을 삭인다. 샬롯은 그런 모습에서 에바의 불행을 느낀다. 사위 빅토르는 말한다. “그녀도 행복한 시절이 있었지요.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러고 보면 샬롯은 에바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에바가 행복했던 시절, 샬롯은 여러 번 초대를 받고도 콘서트를 핑계 삼아 단 한 번도 딸의 집을 찾은 적이 없었다.
 
저녁식사 후. 샬롯은 교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한다는 에바에게 피아노를 쳐볼 것을 권유한다. 에바는 오래전부터 엄마가 자신의 연주를 들어주길 바라왔지만 왠지 주눅 들고 위축된 자세로 머뭇거리다 건반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팽의 소나타. 그런데 딸의 연주를 듣는 샬롯의 표정은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 미묘하게 변해간다.
 
연주를 마친 에바는 엄마의 평가를 듣고 싶어한다. 샬롯은 짧고 극히 의례적인 칭찬으로 대충 넘기려 한다. 진심어린 충고를 듣고 싶은 에바는 진지한 평가를 다시 부탁한다. 그러자 샬롯은 기다렸다는 듯 혹평을 쏟아낸다. “네 연주는 맥이 빠졌어··· 느낌과 감성을 구분 못하고··· 침착하고 분명하고 가혹할 정도로 절제할 줄도 알아야 해··· 표현력이 부족하며··· 자신감, 열정, 고뇌를 담지 못했지···” 그러면서 샬롯은 시범을 보이듯 침착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쇼팽을 연주한다.
 
냉정한 평가를 부탁했지만,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엄마의 혹평을 들으며 에바의 표정은 어둡고 딱딱하게 굳어진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 칭찬에 인색하고 때론 남처럼 차갑기만 한 엄마의 태도 앞에서 에바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모멸감을 느껴 몸을 떤다.
 
그날 밤. 평소 불면증에 시달리는 샬롯은 짧은 숙면 중에 악몽을 꾸고 비명을 지른다. 엄마 소리에 놀란 에바도 잠을 깬다. 잠이 오지 않는 모녀는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와인 잔을 사이에 둔 모녀는 조금씩 서로의 흉금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몇 잔의 술 때문이었을까. 처음엔 조심스럽던 에바도 마음속에 담아둔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샬롯의 가슴에 꽂힌다. 샬롯은 난생처음 딸이 드러낸 울분, 원망, 분노, 증오, 저주의 감정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잘 나가는 엄마 때문에 아빠와 나는 불행했어요. 나는 엄마가 시간 날 때 가지고 노는 인형이었죠. 엄마가 일할 땐 아무도 방해하면 안 되는 거여서 난 문밖에서 소리만 들었어요. 엄만 다정한 척 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죠.” 결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는 샬롯. 그녀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봇물처럼 터진 에바의 분노와 원망서린 항변은 막을 길이 없다.
 
“항상 엄마처럼 예뻐지고 싶었어요. 엄마가 나를 싫어할까봐 걱정했어요. 각진 얼굴에 눈은 소처럼 크고 입술은 두껍고 눈썹은 없었죠. 그런 내자신이 싫었어요. 한 번은 엄마가 그랬어요. ‘넌 남자로 태어났어야 했다’고.”
 
항상 엄마에 짓눌려 자신을 잃어버린 에바는 엄마를 미워할 수 없는 나머지 미움이 공포로 변하고 그래서 악몽이 되고, 결국 자신마저 미처 가는 것 같은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자신은 죽기 살기로 엄마를 좋아하려 했지만 한 번도 엄마는 곁을 내주지 않았었다는 에바의 말에 샬롯은 당황한다.
 
딸이 그토록 자신을 증오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샬롯.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었느냐”는 엄마에게 에바는 “제 말을 들으려고 한 적이 없었잖아요. 엄마는 현실 도피적이고 마음이 불구인 사람이에요.”라고 일침을 가한다. 자신도 한때는 가정을 위해 연주를 포기한 적이 있었다고 변명하는 샬롯. 그러나 몸 상태가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선택한 당시 상황을 에바는 뻔히 알고 있다. 에바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에 더 실망한다.
 
“엄마는 내 평생에 상처를 주었어요. 엄마같이 위험한 사람은 격리해야 해요. 엄마와 딸이란 관계는 감정과 혼란, 파괴로 이뤄진 최악의 결합이에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것이 정당화되지요. 엄마의 상처를 딸에게 물려주고, 엄마의 실망에 딸들이 보답해야 하고, 엄마의 불행은 딸의 불행이에요. 영원히 끊어질 수 없는 탯줄인 거죠. 엄마, 그렇죠? 딸의 불행이 엄마의 행복인가요? 내 슬픔이 엄마의 기쁨인가요?”
 
날이 밝자 샬롯은 도망치듯 짐을 싸들고 에바의 집을 빠져나온다. 끝내 딸에게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에바는 더 이상은 엄마를 볼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가을은 더 깊어간다. 에바는 아들 에릭의 무덤가에 앉아 생각에 빠진다. 에바는 자신이 엄마를 쫓아낸 것만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사랑하는 엄마. 제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랑 대신 엄마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했어요··· 용서를 빌고 싶어요. 이 편지가 잘 도착할지 모르겠어요. 보실지 안 보실지도. 어쩌면 너무 늦었는지도··· 하지만 제 발견이 헛된 것이 아니길 바라요. 결국 용서란게 있죠. 서로를 돌봐주게 되는 엄청난 기회 말이에요. 서로 돕고, 애정 표현을 할 수 있는. 다시는 제 삶에서 엄마를 지우지 않겠어요. 계속 노력할게요. 늦었어도 포기 안 해요. 늦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분명 늦지 않았어요.”
 
‘결핍’이 만든 마음의 상처
 
지나친 자존감으로 나르시시즘에 빠져 사는 엄마와 모성결핍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마음의 병을 앓는 딸이 전하는 안타까운 가을 이야기는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고 비극을 초래하는지 또렷이 보여준다.
 
에바라는 인물은 그저 엄마와의 뒤틀린 관계 안에서만 존재하며 엄마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평범한 딸이다. 반면 잘 나가는 엄마는 가정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삶에만 몰두한다. 잠시 가정으로 돌아와 애정을 쏟아부을 기회가 있었지만 엄마의 일그러진 표현방식은 딸의 인생에 오히려 상처만 남기게 된다. 자신의 커리어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엄마와 작가가 된 이후에도 유년기의 애정결핍과 평생의 열등감으로 고통받는 딸이 파국으로 치달으며 보여주는 극한의 대립, 두 모녀의 복잡한 감정세계가 충돌하는 지점을 바라보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다.
 
영화에서 에바와 샬롯이 서로 상대의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딸의 연주를 들으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감정의 변화를 미묘하게 담아내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표정, 딸의 연주에 혹평을 쏟아낸 뒤 과시하듯 자신의 연주를 하는 엄마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리브 울만의 감정 섞인 얼굴은 전율을 불러올 정도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인생유작
 
잉그리드 버그만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스웨덴 최고의 배우다. 한때 전 세계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카사블랑카의 연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불세출의 여배우였지만 정작 자국 출신 감독인 잉마르 베리만과 작업한 영화는 ‘가을소나타’ 한 작품뿐이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장애를 앓는 작은 딸을 두고 “그 애는 왜 죽지도 않지?”라는 대사를 할 만큼 인간답지 못하지만 예술가로서의 당당함, 기품과 열정은 잃지 않는다. 극 중의 샬롯은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신만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음악을 통해서만 감정표출 방법을 배운다. 그래서 타인을 사랑하는 방식에 익숙지 못한 미성숙한 엄마가 된다. 잉그리드 버그만은 이처럼 부끄러움과 자긍심이 뒤섞인 위선적인 얼굴의 샬롯을 기막히게 표현해냈다.
 
당시 63세. 치명적인 과거의 미모는 세월에 묻혔다지만 우아하고 지적이며 감성적으로 무르익은 잉그리드 버그만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촬영 당시 이미 유방암 판정을 받아 치료 중이었으며 영화 개봉 4년 뒤 운명했다. 1915년 8월 29일 태어난 그녀가 사망한 날은 공교롭게도 67세 생일이던 1982년 8월 29일이다. ‘가을소나타’는 그녀 인생의 마지막 영화다.
 
리브 울만(1938~ )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쌓이고 쌓인 감정을 절규하듯 토해내는 그녀의 연기는 영화 속 설정과는 정반대로 대선배 잉그리드 버그만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다. 잉마르 베리만은 그녀를 스스럼없이 ‘나의 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불렀고 대중 역시 리브 울만을 잉마르 베리만의 페르소나로 불렀다. 한때 두 사람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여 딸을 낳기도 했다. 린 울만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아이가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의 에바 역으로 출연했다. 연기파 배우로 확고한 인정을 받은 리브 울만은 90년대 이후에는 감독으로 나서 직접 몇 편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갈등과 반목의 이야기 뒤에는 화해와 용서라는 따뜻한 결말을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가을소나타’는 섣불리 온정주의를 드러내거나 함부로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에바가 엄마에게 편지를 보내고, 샬롯이 그 편지를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말의 희망을 남겨둘 뿐이다. 훗날 모녀는 상처를 딛고 화합의 이중주를 연주했을까. 기대는 해보지만 결과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세상에는 세월도 약이 되지 못하는 상처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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