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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㊽ - 바그다드 카페

기사승인 2019.12.11  1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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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㊽ - 바그다드 카페
 
 
  - 제작: 1987년, 독일·미국
  - 감독: 퍼시 애들론
  - 배우: CCH 파운더, 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 외
  - 필름: 컬러
  - 상영시간: 108분
  - 수상: 세자르 영화제 외국어영화상
 
 
 
내가 삶에 지쳐있을 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준다면. 어느 한 사람의 등장이 세상에 작은 기적을 불러온다면. 평범한 내가 타인의 삶에 긍정과 희망을 심어주는 존재일 수 있다면···.
 
풀 한 포기 없으며 메마른 모래바람만 지나는 거친 사막 위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당신은 믿을 수 있을까.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는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어느 날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서 만난 두 여인. 국적과 피부색마저 다른 그녀들이 다 쓰러져 가던 사막 위의 허름한 카페를 별천지 오아시스로 만들어놓는다는 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 지 어느덧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남녀노소, 계층과 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내 인생의 영화’로 꼽아온 ‘바그다드 카페’. 저예산 독립영화라 해도 무방할 만큼 소품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이 영화가 지닌 따스한 감성과 영혼을 위로하는 감동의 쓰나미는 그 어느 대작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매혹적이며 고급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여인
 
독일여성 야스민(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은 남편과 라스베이거스 인근 모하비사막을 여행 중이다. 무슨 까닭인지 부부는 된통 싸움을 벌인다. 티격태격 시작된 충돌은 격한 몸싸움으로 번지고 야스민은 손가방과 짐 보따리 하나만 들린 채 차에서 쫓겨난다.
 
성질이 만만찮은 남편은 휑하니 가 버리고 길 위에 홀로 남은 야스민은 트렁크를 질질 끌며 발목이 푹푹 빠지는 모래밭을 걷는다.
 
사막 한가운데 있는 카페 바그다드. 여주인 브렌다(CCH 파우더)는 이곳에서 주유소와 모텔을 함께 운영한다. 제법 넓은 터에 자리는 잡았지만 시설이 낡고 형편없어 구석구석 먼지만 쌓인 데다 왕래하는 사람도 적어 파리를 날리기 일쑤다.
 
명색이 카페인데도 커피머신이 고장 나 손님에게 커피를 팔지 못하는 바그다드 카페. 브렌다의 남편 살(스모키 켐벨)은 오늘도 필요한 커피머신은 구해오질 않고 길에서 보온병이나 주어와 브렌다의 속을 긁어놓는다.
 
개념 없는 남편, 종일 카페에서 피아노만 두드리며 노닥거리는 아들 살라모 (대런 프래그: 이 녀석, 미혼부 신세로 어디서 애까지 낳아 와 제 엄마를 일찌감치 할머니 신세로 만들어 놓았다), 일은 조금도 거들지 않고 놀기 바쁜 딸 필리스(모니카 칼혼: 온갖 멋은 다 부리며 동네 건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게 일이다), 별로 할 일이 없는 바텐더 코앵카(조지 아귈라: 손님 없으면 낮잠 자는 게 특기),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손자새끼까지. 브렌다 주변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복장만 긁어놓을 뿐이다.
 
주어온 보온병을 도로 갖다 놔라, 그렇게는 못 한다, 부부싸움 끝에 브렌다는 남편을 아예 집에서 쫓아낸다. 남편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감정이 북받친 브렌다는 눈물을 쏟는다. 바로 그때, 브렌다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귀부인의 정창 차림으로 브렌다 앞에 등장한 여자는 다름 아닌 야스민. 육중한 덩치에 희멀건 피부의 그녀와 달리 호리호리하고 까칠한 이미지의 흑인 브렌다는 외모부터 대조적이다. 게다가 지금 한 여자는 남편에게 쫓겨나 난생처음 와 보는 이상한 카페에서 방을 구하고 있고, 한 여자는 방금 남편을 쫓아낸 뒤 속을 끓이고 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사막을 건너오느라 비지땀을 흘린 야스민과 남편과의 싸움 끝에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 브렌다. 두 여자의 운명적 만남은 그렇게 이뤄진다.
 
첫 대면부터 브렌다는 야스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사막을 혼자 여행하는 꼴에다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까지, 여러 면이 수상쩍기 때문이다. 어쨌든 브렌다는 방을 내주고, 야스민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그곳에 여장을 푼다.
 
바그다드 카페는 찾는 손님은 적지만 나름 개성있는 인물들이 모여 작은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아간다. 캠핑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루디(잭 파란스)는 자칭 할리우드 세트미술가 출신으로,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 나중에 야스민에게 호감을 보이며 접근하는데, 느끼한 구석은 있지만 본성은 착해 보이는 사람이다.
 
화물트럭 기사를 상대로 문신 영업을 하는 타투이스트 데비(크리스틴 카우프만)도 이곳의 빼놓을 수 없는 식구. 늘씬한 몸매와 미모를 갖추고 있지만 머리는 좀 비어 보인다.
카페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있는 젊은 여행객 에디(알란 크레이그). 그는 노을 지는 카페 마당에서 묘기에 가까울 정도로 멋지게 부메랑을 던지며 혼자서도 잘 논다.
 
이밖에 마을 치안을 돌보며 가끔 카페에 들르는 인디언 혈통의 보안관 아니(아페 사나쾃), 히스패닉 계인 바텐더 코앵카, 흑인 일색의 브렌다 가족, 독일 로젠하임에서 온 야스민까지 바그다드 카페는 바야흐로 트럼프 같은 인간이 딱 싫어할 부류의 종자들로 복닥거린다.
 
야스민이 카페에 묵은 다음 날, 브렌다는 청소를 하러 야스민의 방에 들어갔다 질겁한다. 방안에 온통 남자 옷만 걸려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야스민의 트렁크가 남편 것과 바뀌어서 빚어진 사태다. 그러나 자초지종을 모르는 브렌다는 가뜩이나 이상한 여자라고 의심하던 차에 ‘옳지, 너 딱 걸렸어’라며 보안관을 부른다. 신원확인 후 보안관은 별일 아니라며 돌아가지만 브렌다는 영 찝찝한 듯 야스민을 계속 색안경 낀 눈으로 바라본다.
 
남편이 집을 나간 뒤 브렌다가 처리할 일은 더 늘어난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녀의 일을 돕지 않는다. 오늘도 아들은 피아노에만 매쳐 있고 딸은 진작 읍내 패거리들과 사라졌다. 브렌다는 하는 수 없이 직접 차를 몰고 장을 보러 나간다.
 
그런데 주인 없는 카페를 둘러보던 야스민은 뭘 좀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브렌다의 사무실에 들어가 쌓여있는 쓰레기를 말끔히 들어낸다. 묵은 먼지도 탈탈 털어내고 구석구석 쓸고 닦는다. 그리고 잠시 뒤 브렌다가 장에서 돌아온다.
 
브렌다는 말끔해진 사무실을 보자 화부터 낸다. 그녀는 야스민을 노려보며 “누구야! 내 사무실에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며 고래고래 악을 쓴다. 브렌다가 하도 날 선 반응을 보이자 야스민은 “전 좋아하실 것 같아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브렌다는 어이없다는 듯 “아이고~ 손님이 주인에게 서비스를 하신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네”라며 더 역정을 낸다.
 
모조리 원상복구 하라며 핏대를 세우는 브렌다의 기세에 쪼그라든 야스민은 내다 버린 쓰레기를 다시 주워오려고 한다. 그러자 좀 심했다 싶었는지 브렌다는 그만 됐다고 말한다. 카페 일로 골머리를 앓던 차에 ‘너 잘 걸렸다’ 싶어 성질 좀 부렸건만 브렌다도 깨끗해진 카페가 내심 싫지만은 않았던 게다.
 
그런 소동이 있은 뒤 사람 좋고 오지랖 넓은 야스민은 주위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기 시작한다. 브렌다의 작은 딸 필리스는 말이 통하는 야스민과 급격히 친해진다. 살라모도 자신의 피아노 연주에 유일하게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은 야스민 밖에 없다며 그녀에게 바흐를 헌정한다.
 
야스민은 루디의 그림모델이 되기도 하고 에릭에게 부메랑을 배운다. 그리고 저녁에는 남편 가방에서 나온 마술세트를 가지고 혼자 마술을 공부한다. 브렌다의 아들과 딸은 아예 야스민의 방에 진을 치고, 손자는 야스민의 품에서 잠이 든다.
 
그런 모습에 부아가 치민 브렌다는 야스민에게 “가서 당신 애 하고나 놀라”며 소리를 지른다. 얼굴이 붉어진 야스민이 “난 아이가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순간 둘 사이에 짧은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잠시 뒤 야스민 앞에 다시 나타난 브렌다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까의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며 사과한다.
 
야스민의 상처를 건드린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그 날 이후 브렌다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야스민도 카페에 나와 일을 돕고 손님 앞에서 그간 쌓은 마술 솜씨를 자랑한다. 어느덧 입소문을 타고 바그다드 카페는 야스민의 마술쇼를 보러 오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주방은 바빠지고 덩달아 타투 손님까지 많아져 데비도 때아닌 호황을 누린다.
 
사막을 지나는 트럭 운전사들은 서로 무전을 교신하며 바그다드 카페로 몰려든다. 야스민의 마술쇼, 분위기를 띄우는 살라모의 피아노, 필리스의 애교 넘치는 서빙으로 카페는 활기가 넘치고 브렌다도 만면에 웃음을 짓게 된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한창 바그다드 카페의 분위기가 살아날 무렵 마을 보안관이 나타나 야스민의 관광비자 기간이 만료되었음을 통보한다. 브렌다와 야스민의 표정은 굳어지고, 추방 위기에 놓인 야스민은 급히 짐을 챙겨 독일로 돌아간다.
 
야스민이 떠난 카페는 하루아침에 삭막했던 이전으로 돌아간다. 쇼를 보러온 손님들은 실망하여 발길을 돌린다. 브렌다의 식구와 루디, 데비, 에릭이 카페에 남아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특히 야스민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이심전심 서로를 교감했던 루디의 허전함은 말로 다 할 길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소파에 누워 깜박 졸고 있던 브렌다는 요란한 전화벨에 놀라 퍼뜩 깬다. 급히 뛰어가 전화를 받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는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힘없이 사무실을 나오던 브렌다는 카페를 향해 걸어오는 누군가를 발견한다. 그는 다름 아닌 야스민이다. 브렌다는 한걸음에 달려가 뜨겁게 포옹한다. 살라모와 필리스도 야스민을 보고 달려 나온다.
 
야스민이 돌아오자 바그다드 카페에는 다시 웃음소리가 퍼진다. 많은 손님이 찾아오고 살라모의 피아노는 더 흥겨워진다. 야스민의 마술에 브렌다의 뮤지컬 공연까지 곁들여지면서 바야흐로 바그다드 카페는 브로드웨이가 부럽지 않은 멋진 장소로 부활한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은 법. 한동안 쫓겨났던 브렌다의 남편도 엉겁결에 제 발로 집에 기어들어 온다. 브렌다는 그런 남편을 미소로 맞는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야스민을 그리워했던 루디. 그는 다시는 헤어질 수 없다며 야스민에게 청혼한다.
 
사막에 핀 우정의 꽃
 
흙먼지 섞인 마른 바람이 불고, 커피기계는 늘 망가져 있으며, 바텐더는 손님이 없다는 핑계로 낮잠만 자는 곳. 이 한심한 카페에 낯선 이방인이 나타나면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다.
 
카슨 맥컬러스의 1951년 소설 ‘슬픈 카페의 노래(The Ballad Of The Sad Cafe)’에서 모티브를 얻은 ‘바그다드 카페’는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여자가 티격태격 싸우다 의기투합하여 사막 한복판의 망조든 카페를 파라다이스로 바꾸어 놓는다는 유쾌한 설정의 영화다.
 
독일 배우 마리안느 제게브레히트(1945~ )와 가이아나 출신 미국배우 CCH 파운더(1952~ )는 영화를 떠받치는 두 기둥이다. 뚱뚱해서 아름다운 여자, 사람 좋아 보이는 ‘오지라퍼’ 야스민과 늘 삐쳐있는 머리칼처럼 예민하고 한 성깔 하는 여자 브렌다의 삐거덕거리는 조합이 믿기지 않는 기적을 불러오는 데 이 영화의 매력이 있다.
 
그림모델을 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씩 옷을 벗어던지고 종국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누드로 변하는 아줌마 야스민의 아찔한(?) 19금 연기, 겉으론 강인한 것 같지만 남편과 싸운 끝에는 눈물을 찔끔거리고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는 제 스스로 마음 아파하는 ‘천생 여자’ 브렌다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압권이다.
 
조연들의 연기도 감칠맛 난다. 어딘가 사이비 냄새가 나는 자칭 전직 화가 루디 역의 잭 파란스. 그는 악역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였지만 여기서는 이웃에 저런 아저씨 한 명쯤 있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능청맞은 연기로 시선을 끈다. 남자들 엉덩이에 문신이나 새기면서 혼자 고상한 척은 다하는 데비 역의 크리스틴 카우프만도 그리 밉지 않다.
 
퍼시 애들론 감독은 이 영화의 사막 장면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보이길 원했다. 그래서 특수 필터를 사용해 쓸쓸한 사막의 보랏빛 태양과 부메랑이 허공을 가르는 붉은 저녁, 하늘의 무지개 등 빈티지 냄새 물씬한 영상을 탄생시켰다. 이처럼 황홀한 화면에 주제곡 ‘콜링 유(Calling You)'가 잉크 번지듯 스며들면 그땐 아찔해진다.
 
‘콜링 유(Calling You)'를 빼놓고 ‘바그다드 카페’를 언급할 순 없다. 감미롭고 호소력 짙은 가스펠 싱어송 라이터 제베타 스틸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몽환적이다. 건조한 사막의 붉은 태양 아래 나직이 깔리는 이 재즈 블루스만큼 사막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해 낸 음악도 없을 것이다.
 
종종 ‘바그다드 카페’를 페미니즘 영화의 테두리에 가두려는 경향이 있지만 그보다는 ‘치유’와 ‘소통’의 인생영화쯤으로 해두면 어떨까 싶다. 누군가에 빌붙어 먹고살려는 (봉준호 ‘기생충’) 이기적인 시대에 연대와 공존, 치유와 소통의 기적을 만들며 서로의 결핍을 메워가는 야스민과 브렌다의 모습은 단순한 우정 쌓기의 차원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오래전, 라스베이거스를 지나는 사막의 중간 어디쯤에 나그네들이 쉬어 가는 노변카페가 하나 있었지. 이름만으로도 온통 쓸쓸함이 묻어나는 곳, 신기루처럼 피어오르는 사막의 붉은 태양과 황혼의 노을이 길손을 유혹하는 곳, 매일 밤이면 작은 기적을 하나씩 만들어내는 그곳의 이름은 ‘바그다드 카페’라네.
 
* 덧붙이는 글 -------------------------------------------------------------
 
영화 속 ‘바그다드(Bagdad)’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Baghdad)'가 아닌,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 근처의 옛 도시 이름이다(스펠링도 다르다). 한때 번창했으나 1973년 근처에 새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쇠퇴하여 지금은 도시의 흔적이 많이 사라졌다. 과거 이곳에 ‘바그다드 카페’라는 이름의 쉼터가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곳에서 서쪽으로 80여 Km 떨어진 뉴베리 스프링스의 ‘사이드 와인 더 카페’에서 촬영됐다. 영화 덕에 카페는 유명해졌고, 이후 이름을 아예 ‘바그다드 카페’로 바꿔 영업하고 있다. 이곳엔 촬영 당시의 소품과 출연배우들의 스냅샷 등 과거 흔적이 그대로 간직돼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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