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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57) - 천상의 소녀

기사승인 2020.03.11  09: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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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57) - 천상의 소녀
 
 
  - 제작: 2003년, 아프가니스탄·일본·이란
  - 감독: 세디그 바르막
  -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외
  - 필름: 컬러
  - 상영시간: 83분
  - 수상: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 /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외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과격주의 수니파 무장 세력을 일컫는 용어다. 급진적인 이슬람 율법 통치를 신봉하는 이 조직은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지나친 인권침해 행위로 국제사회의 강력한 비난을 불렀다. 여성의 전신을 덮는 ‘부르카’ 착용을 의무화하고, 이를 어긴 사람은 돌로 쳐 죽일 만큼 악명 높은 집단이 탈레반이다.
 
이슬람 이상주의국가 건설을 지상의 목표로 삼는 탈레반은 1995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한다. 그들은 나지불라 전 대통령 형제를 잔인한 방법으로 공개처형한 뒤 과도정부를 내세워 이슬람 공화국을 선포했다. 9·11테러에 대한 미국의 보복 공격으로 탈레반 조직은2001년 와해되지만, 그때까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박해의 삶을 살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세디그 바르막(1962~ ) 감독의 첫 장편영화 ‘천상의 소녀(Osama)'는 탈레반 정권하에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남장(男裝)의 길을 택해야 했던 한 소녀의 비극적 운명과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처참한 삶을 고발한 작품이다. 눈물조차 사치로 여겨야 할 만큼 지독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참상을 어찌나 실감나게 표현했는지, 영화는 철조망처럼 굵고 거친 고통의 흔적들을 군데군데 새겨 놓고 있다.
 
세디그 바르막의 카메라는 조국의 암울한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야속하다 싶을 정도로 냉정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찾으려는 듯, 폐허의 대지를 종횡무진 누비는 카메라의 사투는 모두의 울분을 자아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프간이 전하는 어느 소녀의 슬픈 이야기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러시아와의 오랜 전쟁, 그리고 내전으로 극심한 정치 불안과 경제난에 빠진 아프간 사회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거리에는 거지가 넘쳐나고 전통의상 부르카를 두른 여인들은 배고픔을 참지 못해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이 저주받은 도시의 외침은 탈레반의 최루탄과 물대포, 실탄사격과 곤봉세례 앞에서 언제나 처참하 게 짓밟힐 뿐이다.
 
그 절망의 땅 한가운데서 12살 소녀 레일라(마리나 골바하리)는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극단적인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탈레반 정권은 여자의 경제활동을 금지하는 한편 여자 혼자서는 밖에 나돌아 다닐 수도 없게 강제한다. 레일라의 아버지는 전쟁 중에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일할 남자가 아무도 없는 레일라의 가족은 앉은 자리에서 굶어 죽을 위기를 맞는다.
 
레일라의 엄마는 남몰래 간병인 노릇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해왔지만 병원은 넉 달이나 밀린 임금을 주지 않고 문을 닫아 버린다. 생사의 기로에 선 가족들은 레일라를 남자아이로 변장시킨 뒤 돈벌이시킬 궁리를 한다. 그러나 엄격한 탈레반 사회에서 그 같은 짓은 목숨을 내걸지 않고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위험한 행동이다.
 
할머니는 “네가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굶어 죽게 된다.”며 손녀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른다. 엄마는 남편이 입었던 바지를 줄여 딸에게 입혀준다. 그렇게 해서 레일라는 하루아침에 남자아이로 변신한다.
 
부르카 대신 바지를 입고 모자마저 눌러 쓴 레일라는 엄마와 함께 거리로 나온다. 겉보기엔 영락없는 소년의 모습. 그러나 쭈뼛거리는 걸음, 잔뜩 겁먹은 표정, 움츠러든 어깨, 곱상한 얼굴은 쉬 감출 수 없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고아소년 에스판디(아리프 헤라티)는 그런 레일라를 단박에 알아보고는 신고하겠다고 겁을 준다. 레일라는 그 말에 지레 겁을 먹지만 사실 에스판디는 레일라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꼬마다.
 
레일라는 엄마와 함께 아버지의 옛 전우가 운영한다는 식료잡화점을 찾아간다.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서다. 아버지의 옛 전우라는 사람도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로 어렵게 가게를 꾸려나가는 상황. 그럼에도 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레일라를 점원으로 받아준다.
 
레일라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그녀의 행동거지는 여전히 눈에 띄고 어색한 구석이 많다. 아니나 다를까, 오래지 않아 레일라는 탈레반 사내의 미행을 받는다. 완전히 사색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레일라는 극심한 공포로 오들오들 떤다.
 
다음날. 레일라를 미행했던 탈레반 사내가 식료잡화점에 나타난다. 그는 다짜고짜 레일라를 끌고 간다. 레일라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학교의 운동장. 이미 그곳에는 다른 남자아이들도 많이 끌려와 있다. 그중에는 구걸소년 에스판디의 모습도 있다.
 
탈레반 수뇌부는 마을의 남자아이를 모두 징집해 강제로 코란을 암송케 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소년들은 미래의 유능한 전사들이기 때문이다. 레일라 역시 그런 자원으로 끌려왔다. 그러니 아직 정체는 드러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남자를 상징하는 터번을 머리에 두른 아이들은 이슬람 율법을 배우고 엄격한 군사교육을 받는다. 철부지들은 마냥 즐거워 날뛰지만 레일라는 지뢰밭 위에 버려진 아이처럼 매 순간 숨이 막혀버릴 지경이다.
 
세정(洗淨)의식에 대한 교육이 있던 날. 사춘기 소년들은 몽정을 겪은 후 몸을 깨끗이 닦는 가르침을 받는다. 하반신을 가리고 상체만 드러낸 소년들은 물을 뿌리며 욕조에 몸을 담근다. 반면 레일라는 옷도 벗지 못하고 욕실 한쪽 벽에 붙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마침 교사의 눈에 띈 레일라는 앞으로 불려 나온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이, 레일라의 가슴은 아직 성숙한 여인의 그것처럼 부풀어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 덕에 레일라는 여느 소년들처럼 무탈하게 교육을 마친다.
 
언제라도 정체가 드러날까 두려운 레일라의 커다란 눈망울은 항상 불안에 떨고 있다. 세정교육은 어찌어찌 피해갔지만 레일라의 곱상한 얼굴과 가녀린 손발은 언제나 다른 소년들의 의심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짓궂은 남자아이들이 레일라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옷을 벗기려 덤벼든다. 때마침 에스판디가 나타나 도망갈 길을 열어주는 바람에 레일라는 간신히 위기를 넘긴다.
 
다음날도 소년들은 레일라를 둘러싸고 괴롭힌다. 결국 레일라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러자 에스판디가 아이들을 뜯어말리며 소리친다.
“얘는 계집애가 아니야! 이 아이 이름은 오사마라고!”
 
에스판디는 레일라에게 ‘오사마’라는 남자 이름을 붙여주지만 소년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자 에스판디는 레일라가 높은 나무에도 올라갈 수 있다고 치켜세운다.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남자아이만 할 수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는 수없이 레일라는 벌벌 떨며 나무 위를 기어오른다. 이윽고 나무둥치 끝에 도달한 레일라를 보려고 아이들이 새까맣게 몰려들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소란을 일으킨 죄로 레일라는 벌을 받는다. 깊은 우물 한중간에 두 팔이 묶인 채로 동동 매달린 레일라는 죽음 직전의 공포를 체험한다. 까닥하면 아득한 심연으로 추락할지 모를 무서움 속에서 레일라는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거의 잃은 레일라는 체벌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레일라는 더 심각한 상황을 맞는다.
 
웬일인지 우물에서 나온 레일라 몸에는 선혈이 낭자하다. 극심한 공포와 긴장 탓이었을까. 레일라는 그만 자신의 두 다리에 붉은 초경(初經)의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레일라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난 순간 소년들이 사방에서 레일라를 공격한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레일라. 그러나 좁은 운동장 안에서 레일라가 몸을 숨길 곳은 어디에도 없다. 레일라는 곧 소년들에게 포위된다. 더 이상 레일라를 도울 수 없는 에스판디는 끌려가는 레일라의 모습을 보며 눈물짓는다.
 
레일라의 머리를 덮고 있던 터번은 회수되고, 굴레의 상징과도 같은 부르카가 다시 씌워진다. 그리고 가엾은 레일라는 감옥으로 보내진다. 희망이 완전히 단절된 춥고 어둡고 축축한 그곳에서 레일라는 한 마리 나비처럼 자유롭게 줄넘기를 뛰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치는 환상을 경험한다. 과연 레일라에게도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을까.
 
곧 공개재판이 열린다. 수감 중이던 서방의 외신기자 한 명은 간첩혐의로 군중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 총살된다. 병원에서 환자를 돌봐주던 파란 눈의 여의사는 알라 신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돌에 맞아 죽는다. 그 다음으로 레일라가 끌려 나온다.
 
한편, 알라를 욕보였다며 죽음으로 소녀를 단죄할 것만 같던 탈레반 지도자는 무슨 까닭인지 판결을 앞두고 마음을 바꾼다. 그는 레일라를 살려주는 대신 할아버지뻘이 되고도 남을 만큼 늙은 어느 탈레반 전사의 첩으로 살라고 명령한다. 차라리 죽음만도 못한 형벌을 받은 레일라. 그녀는 엄마에게 보내달라며 애원하지만 정욕의 눈빛이 철철 흘러넘치는 늙은 탈레반은 미소를 흘리며 레일라를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간다.
 
레일라를 데려온 늙은 탈레반은 이미 3명의 첩과 배다른 자식 여럿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여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발에 족쇄를 채우고 밖에서 문도 걸어 잠그는 치밀하고도 비정한 인간이다. 레일라처럼 강제로 끌려와 인생을 망쳐버린, 그래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여자들은 늙은 탈레반이 어서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여자들은 초야(初夜)를 치를 레일라의 몸을 치장해 주며 함께 슬픔을 나눈다.
 
고성처럼 단단히 걸어 잠근 탈레반의 저택에 짙은 어둠이 내린다. 축 늘어진 젖가슴과 기름진 아랫배를 흉하게 드러낸 늙은 탈레반은 목욕통에 들어가 탐욕스런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씻어내기 시작한다. 같은 시각, 골방 벽에 기대어 흐느끼는 레일라의 서러운 울음은 무심한 별빛을 타고 밤하늘을 적신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절박한 드라마
 
“비 오는 날 무지개가 떴을 때, 간절히 기도를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지. 무지개 아래를 지나면 소년은 소녀가 되고, 소녀는 소년이 된다는.”
 
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전설을 들려주며 할머니는 소녀의 머리카락을 자른다. 어느새 거울 속의 소녀는 남자아이로 변해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한 일이라지만 사실이 탄로 나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아주 위험한 일. 그러나 소녀는 싹둑 잘린 머리카락을 화분에 심으며 부질없는 희망을 품어본다. ‘머리카락이 자라면 다시 여자가 될 수 있을까’.
 
아프간 내전의 막바지 5년. 탈레반 정권이 득세하던 시절에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보는 것도 엄격히 금지됐었다. 세디그 바르막 감독은 망명지에서 돌아와 아픔의 역사를 기록하는 작업에 착수하지만 촬영현장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발전기를 끌고 다녀야 하는 등 고초가 심했다. 잔존하는 탈레반 옹호세력도 알게 모르게 방해공작을 펼쳤고 배우 섭외도 쉽지 않았다. 영화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완성되었지만 세디그 바르막은 훗날 자신의 영화가 조국의 현실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며 과연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회의를 품게 되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천상의 소녀’는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프랑스 예술극장연합 작품상, 뉴딜영화제 여우주연상, 런던영화제 작품상, 마닐라영화제 여우주연상, 부산영화제 관객상 및 뉴 커런츠 특별상 등 연이은 수상으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를 계기로 탈레반의 만행은 더 널리 알려졌고 아프간을 향한 공감어린 시선도 증폭됐다. 세디그 바르막은 자신이 한탄한 바대로 한 편의 영화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였지만 사람들이 올바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징검다리는 놓은 것이다.
 
‘천상의 소녀’는 탈레반 정권시절, 한 소녀가 학교를 다니기 위해 남장을 했다가 발각돼 처벌받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다. 주인공 레일라 역의 캐스팅을 위해 세디그 바르막은 전국의 고아원과 학교를 돌아다니며 3천 명의 아이들을 만났다. 그러다 추운 밤거리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마리나 골바하리를 목격한 세디그 바르막은 원망과 두려움을 잔뜩 머금은 큰 눈망울에 꽂혀버려 주저 없이 그녀를 주인공으로 낙점했다.
 
마리나 골바하리의 당시 나이가 13세. 프로필 상 1989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가족조차 골바하리의 정확한 생년월일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골바하리에게는 고작 14달러의 출연료가 주어졌지만 이 한편의 영화 출연을 계기로 그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하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극중 레일라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연기한 배우들도 피난민 캠프에서 캐스팅된 인물들이며, 고아소년 에스판디를 연기한 아리프 헤라티 역시 거리에서 주인 잃고 떠도는 개를 주워다 팔거나 동냥으로 살아가는 불우한 소년이었다.
 
‘잊을 수는 없지만 용서는 하겠다.’
어두운 자막에 프린트된 한 줄의 경구(警句), 그러니까 넬슨 만델라의 명언을 인용한 영화의 오프닝은 나름 인상적이다.
 
세상은 용서를 말하지만 비극으로 봉쇄된 아프간의 상처는 그 어떤 위로와 처방으로도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게 패인 상태로 남아있다. 그런 까닭일까. 영화는 전설 속에 나오는 희망의 무지개를 보여주지 못하고 끝난다. 화분 속 머리카락이 결코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소녀의 눈물을 그 누구도 닦아주지 못한 것처럼, 아프간의 초라하고 부박한 현실은 여전히 가슴에 돋는 슬픔이 되어 폐허의 하늘을 날고 있을 뿐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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