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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56) - 초록물고기

기사승인 2020.03.01  10: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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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56) - 초록물고기
 
 
 
  - 제작: 1997년, 한국
  - 감독: 이창동
  - 배우: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외
  - 필름: 컬러
  - 상영시간: 114분
  - 수상: 청룡영화제 작품상 외
 
 
 
 정체성을 잃고 떠도는 한 젊은이와 그의 가족사를 배경으로 도시빈민의 부조리한 삶과 가족 해체, 탈출구를 잃은 불안한 청춘의 초상을 담은 ‘초록물고기’는 1990년대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팽창과 IMF 외환위기, 냉전 붕괴 등 격변기를 맞아 부침을 거듭하던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리얼하게 그려낸 느와르 걸작이다.
 
대표적인 작가주의 감독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이창동은 허무와 퇴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이 영화를 통해 폭력적인 도시개발의 병폐와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암흑가 주변의 사랑과 배신, 음모와 파멸을 실감나게 묘사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조직의 보스와 그의 여자, 그리고 보스의 여자를 사랑하는 조직원이라는, 너무 뻔해 보이는 소재 앞에서 결코 통속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으로 강렬한 문제의식마저 드러낸 이창동의 등장은 1990년대 한국영화계가 수확한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로 꼽힌다.
 
빨간 다리 밑의 추억
 
군에서 막 제대한 26살의 청년 막동(한석규)은 기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객차와 객차 사이 승강구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막동은 옆 칸 승강구에 매달려 바람을 쐬고 있는 미애(심혜진)라는 여인을 보게 된다. 미애의 위태로운 모습에 막동이 불안감을 느끼던 그때, 미애의 목에 감겨있던 장밋빛 스카프가 스르르 풀리더니 막동을 향해 날아온다. 자신의 얼굴을 덮은 스카프를 걷어낸 막동은 곧 미애의 모습을 쫓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객실로 들어간 막동은 세 명의 불량배에 둘러싸여 희롱당하고 있는 미애를 발견한다. 순진한 막동은 댓바람으로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오지게 두들겨 맞는다. 코피가 터지고 입술이 깨진 막동은 다음 역에서 내려 불량배들을 뒤따라간다. 그리고 전역기념패로 놈들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는 냅다 도망친다.
 
한바탕 활극을 벌이느라 기차를 놓친 막동은 늦은 밤 일산의 집에 도착한다. 어릴 적 뛰놀던, 아카시아 천지였던 벌판은 빽빽한 아파트 숲으로 변해버린지 오래. 한창 개발 중인 신도시에서 밀려난 막동네의 초라한 집은 유난히 적막한데, 집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파출부 일을 나가는 어머니와 뇌성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큰형(이호성)뿐이다.
 
술에 절어 사는 현직 경찰관 둘째 형(한선규), 트럭행상을 하는 다혈질의 셋째 형(정진영), 다방 레지가 된 여동생 순옥(오지혜) 등 막동의 다른 가족은 아버지 사망 후 모두 흩어져 산다. 막동은 가족끼리 작은 식당이라도 하면서 함께 살면 좋겠다는 꿈을 항상 꾼다. 파출부하는 엄마에게도, 다방 나가는 동생에게도 앞으로 돈은 자신이 벌 거라고 큰소리치지만 막동은 순수함 빼고는 가진 것도, 배운 것도, 기술도 없는 평범한 청년에 불과하다.
 
한편, 막동이 기차에 두고 내린 가방에서 메모수첩을 찾은 미애는 막동의 집에 전화를 걸어 연락처를 남긴다. 막동은 기차에서 미처 건네주지 못한 스카프를 돌려주려고 미애를 찾아간다. 미애는 밤업소의 가수다. 미애가 공연 뒤 업소를 나와 막동과 재회할 때 건달 몇이 따라와 미애를 불러 세운다. 사실 미애는 폭력조직 두목 배태곤(문성근)의 여자다. 태곤의 부하들은 두목 지시로 미애를 데려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영문을 모르는 막동은 또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가 태곤의 부하 판수(송강호)에게 맞아 코피가 터진다.
 
미애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태곤은 막동에게 건물 주차관리를 맡긴다. 일터가 생긴 막동은 돈을 모아 가족들과 함께 살 희망에 부푼다. 그러던 어느 날, 태곤의 부하 몇이 주차장에 나타나 막무가내로 행동한다. 그들 중 한 명인 판수는 지난번 자신이 패준 막동에게 유독 깐족거린다. 화가 난 막동은 그와 엉겨 붙지만 또 두들겨 맞는다. 지고 못사는 성격의 막동은 돌아가는 판수의 뒷머리에 각목을 날린다. 그 사건은 곧 태곤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막동의 혈기를 높이 산 태곤은 막동에게 두툼한 돈 봉투를 쥐어주며 일 하나를 떠맡긴다.
 
막동의 임무는 태곤의 사업에 걸림돌이 되는 어떤 인물을 곤경에 빠트리는 것. 막동은 자신의 손가락을 문짝에 짓이겨 부러뜨리는 공갈 자해로 상대방이 꼼짝 못하도록 올가미를 씌운다. 태곤은 골치 아픈 문제를 간단히 해결한 막동을 어여삐 여겨 최측근 심복으로 끌어들이는 한편 자신과 미애의 수행비서 역할을 맡긴다.
 
베트콩’이란 별명을 가진 배태곤은 맨주먹 하나로 조직의 보스에 오른 인물. 태곤은 조직 간의 전쟁보다는 권력기관에 줄을 대는 로비로 자신의 나와바리를 지켜나가는 스타일. 그는 이권을 위해서라면 애인인 미애의 몸까지 상납할 만큼 비정한 인간이다. 10여 년에 걸친 영등포 일대 조폭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뒤 바야흐로 일산 신도시 복합 상가 개발권을 손에 쥔 태곤은 장밋빛 미래에 도취된다.
 
태곤의 품에 갇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미애. 그녀는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살피게 된 막동의 순수한 마음씨에 끌리기 시작한다. 막동이 취객에게 봉변당하고 있는 미애를 도와준 일이 있은 뒤부터 둘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지지만 그들의 사랑은 태곤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때문에 항상 미완에 그친다.
 
어느 날, 미애는 막동이 가지고 있는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당에 커다란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막동의 집을 찍어놓은 사진이다.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애는 사진을 자신에게 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막동의 가족은 엄마 생신을 맞아 소풍을 떠난다. 온 식구가 모인 야유회는 즐겁게 시작하지만 역시 그놈의 술이 화근. 둘째의 술타령 때문에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그 바람에 뇌성마비 장남은 발작을 일으킨다. 한 성깔 하는 셋째의 도발까지 이어져 소풍은 치고받는 개판싸움터로 변질한다. 그러자 막동은 차를 몰아 가족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한다. 막장으로 치닫는 가족을 바라보는 막동의 눈빛에는 왠지 비감한 결의가 느껴진다.
 
잘 나가던 태곤의 앞길에 갑자기 장애물이 등장한다. 태곤이 한때 형님으로 모셨던 김양길(명계남)이 출소한 것. 양길은 대놓고 태곤의 구역을 침범하기 시작한다. 태곤은 뇌물을 써서 경찰 쪽을 움직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그런 찰나에 평소 불만을 품고 있던 판수와 몇몇 부하는 양길의 편으로 넘어가 태곤을 기습한다. 업소도 습격을 받아 쑥대밭이 되자 태곤은 사실상 항복을 선언한다. 그러나 양길은 항복을 받아내고도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태곤을 구타하여 큰 수모를 안긴다. 태곤은 부르르 떨며 뼛속 깊이 복수를 다짐한다.
 
며칠 뒤. 태곤은 막동을 재개발구역 옥상으로 불러낸다.
“막동이 꿈이 뭐라 그랬지?”
“식구들하고 같이 살면서, 조그만 식당이나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좋지. 나도 그 꿈 하나 믿고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올라왔어. 
 그냥 공짜로 올라온 게 아냐.”
말을 끝낸 태곤은 막동을 바싹 끌어안으며 은밀하게 무엇인가를 지시한다.
 
양길이 운영하는 클럽 ‘불스 나이트’. 짙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막동이 소란스런 클럽 안으로 들어선다. 잠시 뒤 클럽 화장실. 막동은 소변을 보고 걸어 나오는 양길의 배에 칼을 꽂아 넣는다. 양길은 의외의 기습에 꼼짝없이 당하고 만다. 양길의 시체를 화장실 빈칸에 처넣은 막동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순간 넋이 빠져 어쩔 줄 모른다.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의 흥건한 핏물을 손으로 닦아내던 막동은 황급히 클럽을 빠져나온다.
 
공중전화 부스의 막동.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막동의 몸은 덜덜 떨린다. 전화기 저편으로 큰형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막동은 동네 빨간 다리 아래에서 초록물고기를 잡는다고 뛰어다니다가 쓰레빠를 잃어버렸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눈물 반, 웃음 반으로 횡설수설 떠들어대는 막동.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깊은 슬픔과 회한에 젖어들며 곧 뜨거운 오열로 변한다.
 
그날 밤, 태곤은 막동을 상가 공사장으로 불러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몇 마디를 주고받는 태곤과 막동. 그리고 막동이 태곤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순간 갑자기 태곤의 예리한 칼끝이 막동의 복부를 파고든다.
 
별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골목을 빠져나온 태곤은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옆에 앉은 사람은 미애다. 그런데 숨이 끊어진 줄 알았던 막동이 비틀거리며 골목을 나와 태곤의 차로 걸어온다. 막동을 본 미애는 비명을 지른다. 보닛 위로 쓰러지는 막동. 차 앞 유리에 달라붙어 하얀 입김을 토하며 마지막 숨을 내쉬는 막동의 힘없는 눈동자가 미애를 바라본다. 곧 태곤이 차를 후진하자 막동은 그 자리에 고꾸라져 숨을 거둔다.
 
몇 달 후. 저 멀리 신도시 아파트가 내다보이는 어느 식당 앞에 검정 그랜저 한 대가 와서 멈춘다. 식당의 간판은 ‘큰 나무집’. 얼마 전 일산으로 이사 온 태곤과 임신하여 배가 부른 미애가 차에서 내린다. 그들이 들어선 식당은 다름 아닌 막동의 집. 막동이 죽은 후 그의 가족들은 한데 모여 식당을 하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곳이 막동의 집인 줄 모르는 태곤과 미애는 삼계탕을 시킨다.
 
식사를 마친 미애는 식당 밖을 돌아본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미애는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풍경에 적잖이 당황한다. 그리고 그 집 마당에 우뚝 서 있는 버드나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미애의 얼굴은 단단히 굳어진다. 무서운 예감에 사로잡힌 미애는 차로 달려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백을 뒤진다. 그리고 과거 막동이 주었던 흑백사진을 꺼내본다. 사진을 들고 눈앞의 큰 나무를 바라보던 미애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죽여 뜨거운 울음을 삼킨다. 그사이 계산을 마친 태곤이 돌아와 차를 빼 식당을 빠져나간다. 막동의 가족은 사라지는 태곤과 미애의 뒤꽁무니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한다.
 
유년의 꿈을 말하는 초록물고기
 
가수, 성우를 거쳐 1994년 MBC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야망을 좇는 제비족 홍식 역에 캐스팅되어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한석규는 1990년대에는 필적할 이가 없을 만큼 최고의 인기를 누린 원톱의 남자배우였다. 데뷔작 ‘닥터봉(1995)’을 필두로 ‘은행나무 침대(1996)’ ‘초록물고기’ ‘넘버 3’ ‘접속(이상 1997)’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쉬리(1999)’ 등 그는 출연한 작품마다 빅히트를 기록하여 흥행보증수표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평범한 외모에서 오는 친근함, 어떤 역이든 완벽하게 소화하는 연기능력, 부드러운 감성과 듣는 이를 편하게 해주는 특유의 보이스컬러, 미소 안에 머물러 있는 슬픈 감성,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자연스러움은 그를 상징하는 요소들이다. ‘초록물고기’는 한석규의 그런 장점들이 골고루 스며있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다.
 
영화에서 한석규가 맡은 역할은 막 군에서 제대하여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회초년생 김막동이다. 막동은 우연한 기회에 암흑가의 조직원으로 발을 들여놓게 되고 그곳에서 보스의 여자 미애를 만난다.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던 막동과 미애는 서로를 안식처로 여겨 기대어 보지만 보스 태곤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해체된 가족의 복원을 꿈꾸는 막동.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막동의 죽음을 계기로 그의 가족은 한데 모여 살게 된다. 막동에게 가족은 언제나 그립고 아픈 존재다. 만나기만 하면 악악거리며 쌈질하기 일쑤지만 그렇다고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존재. 그런 가족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현실의 고리는 오로지 ‘돈’밖에 없다. 결국 막동은 가족을 위해 몸을 던진다.
 
상대파 두목을 제거하는 대가로 막동은 태곤에게서 거액을 받아내고 그 돈은 막동의 가족이 식당을 차리는 종자돈이 된다. 막동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들인 줄도 모르고 태곤과 미애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막동의 가족, 큰 나무 아래서 소리죽여 눈물을 삼키는 미애의 모습은 먹먹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신일고교 국어교사로 재임하며 소설가로 활동하던 이창동은 나이 40이 넘어 감독에 데뷔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시나리오를 쓴 것을 계기로 영화계에 입문한 이창동은 작가 출신답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내공이 특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하사탕(대종상 작품상)’ ‘오아시스(베니스 특별감독상)’ ‘밀양(칸 여우주연상)’ ‘시(칸 각본상)’ ‘버닝(칸 국제비평가 연맹상)’등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언제나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특히 감독 데뷔작인 ‘초록물고기’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 아래 명멸하는 어둠의 자식들의 허무와 퇴폐, 음모와 배신, 욕망과 불안, 폭력과 죽음의 정서를 균형 있고 절제 있는 언어로 다듬어냄으로써 한국형 느와르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초록물고기’를 통해 우리는 훗날 한국영화의 주역으로 성장하는 연기자들의 무명시절 모습을 여럿 보게 된다. 기차 안에서 미애를 희롱하는 양아치로 나온 이문식, 나이트클럽에서 술에 취해 미애를 괴롭히는 정재영의 25년 전 젊은 모습은 풋풋하다. 연출부원이었다가 얼떨결에 대타로 출연하여 대중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정진영(막동 셋째 형)은 이 작품 이후 지적인 이미지의 배우로 발돋움한다. 참고로 한선규라는 인물이 영화에서 막동의 둘째 형 (경찰관)역으로 출연했는데, 그는 실제로 한석규의 친형이다.
 
인상적인 조폭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독사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태곤을 잘근잘근 짓밟는 김양길 역 명계남(2016년 ‘동방우’라는 이름으로 개명)의 연기도 연기상 감이지만 태곤의 부하 ‘판수’를 연기한 송강호의 존재는 단연 갑 중의 갑이다. 1996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데뷔한 송강호는 그의 생애 두 번째 영화로 기록되는 ‘초록물고기’에서 진짜 건달을 방불케 하는 실감나는 연기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같은 해 발표된 조폭영화 ‘넘버 3’에서도 헝그리 정신과 무대뽀 정신을 강조하는 불사파의 보스로 나와 확실한 신스틸러로 자리 잡은 송강호는 훗날 누적관객 1억 명을 돌파한 국내 최초의 배우로 우뚝 서게 된다.
 
막동: “형, 우리 식구들 전부 같이 모여 살면 안 될까, 옛날같이.”
둘째: “자식, 아직도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냐? 같이 살면 뭐해? 서로 먹고살기 바쁜데.”
 
형제의 대화에서 보듯 막동은 언제나 가족의 결합을 꿈꾸지만 현실의 삶에 찌든 형은 그런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세상이 너무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폭력적 개발의 광풍이 지나간 자리에 도시 소시민이 설 땅은 이제 없는 듯하다.
 
어린 시절 막동은 빨간 다리 아래 개울에서 ‘초록물고기’를 잡다 ‘쓰레빠’를 잃어버렸다. 막동이 잡으려던 ‘초록물고기’는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의 분신인 동시에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동은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도박을 통하여 결국 ‘초록물고기’를 건져 올린다. 그러나 어린 날의 순수를 상징하던 그의 ‘쓰레빠’는 멀리 떠내려가 더는 찾을 수 없게 된다. 영원히.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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