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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야 에세이] 마음에 대하여 79

기사승인 2019.06.04  09:3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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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 찾아서_#35. 무의식(無意識)의 화신(化身)-1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은 무의식의 기운작용이 있어 그 화신으로 이치에 맞게 존재하고, 인간은 나 자신의 참나, 무의식의 기운을 ‘나’라고 인식하고 산다. 따라서 나 자신은 무의식의 기운이 형상으로 나타나 있는 것이고, 이 무의식으로 작용하는 기운을 인간은 ‘내 마음’이라고 인식하므로 나에게 어떤 무의식의 기운이 작용하는가에 따라 생명체(인간)는 그 무의식의 행동을 그대로 표현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든 지구상의 생명체는 무의식의 화신(化身)으로 그 이치에 맞는 형상으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며 이 같은 작용을 나는 ‘자연의 이치, 진리의 이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죽으면 ‘나’라고 인식하는 의식(意識)은 사라지고 무의식의 기운으로만 남는다. 그 무의식의 기운은 진리이치에 따라 그에 맞는 몸(형상)을 받을 뿐이며 이것이 바로 자업자득·인과응보의 이치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나(我)’는 참된 나는 아니므로 ‘나’라고 고집할 것 하나도 없으며, 내가 지어놓은 어제까지의 무의식이 형상으로 화(化)한 것이다. 오늘의 나는 내가 만들어 놓은 전생, 무의식의 기운이 화신(化身)으로 이생에서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무의식에 맞는 연기를 하고 있는 것 뿐이다.
 
따라서 지금 나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은 나의 무의식의 기운을 바탕으로 그에 따른 행동을 하므로 어떤 무의식이 나에게 영향을 주는가에 따라 나의 삶은 달라질 뿐이며, 그 결과에 따라 또 다른 무의식이 만들어지고 그에 맞게 윤회를 하는 것이 전부다. 무의식의 개념은 마치 콩나물시루 속과 같이 하나의 개념이지만, 그 콩나물시루 속에는 세부적으로 무수한 콩이 있는 것과 같다. 세부적으로 보면 콩이 가지고 있는 이치가 서로 다 다르므로 세상에 나타나 있는 무의식의 화신(化身, 생명체)은 그 모습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나를 화신(化身)으로 존재하게 한 그 무의식을 그대로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깨어 있는 의식으로 나의 오늘을 이치에 맞게 살 것인가는 각자의 몫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나’라는 주관자적인 의식이 깨어 있지 못하면 결국 ‘나’는 무의식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다른 화신(化身)으로 살게 되고 ‘나’의 주관자적인 의식을 잃어버린 다른 무의식의 기운으로 한 인생을 살다 갈 것이다.
 
 

silverinews 천산야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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