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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⑧ - 젊은이의 양지

기사승인 2018.11.01  11: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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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⑧ - 젊은이의 양지
 
 
  - 제작 : 1951년, 미국
  - 감독 : 조지 스티븐스
  - 배우 : 몽고메리 클리프트, 엘리자베스 테일러, 셜리 윈터스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22분
  - 수상 : 아카데미 영화제 감독, 각색, 음악, 의상, 촬영, 편집상
          골든 글로브 작품상
 
 
 
 1906년 미국. 상류사회 진입의 야망에 부풀어 있던 스물세 살 청년 체스터 질레트는 임신한 애인 그레이스 브라운을 살해한다. 두 사람은 질레트의 삼촌이 운영하는 치마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눈이 맞아 깊은 관계에 빠진 사이. 임신사실을 밝히며 결혼을 요구하는 브라운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진 질레트는 호수로 그녀를 유인, 테니스 라켓으로 머리를 가격한 후 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다. 사건 직후 체포된 질레트는 살인죄로 기소되어 2년 뒤 전기의자로 보내져 사형당한다.
 
미국 자본주의 사회의 적폐와 그로 인한 인간의 비극에 주목해 왔던 작가 시어도어 드라이저(1871~1945)는 1925년 체스터 질레트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실화소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을 발표한다. 미국 사실주의 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이 된 ‘아메리카의 비극’은 1931년 조셉 F. 스텐버그 감독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20년 뒤, 조지 스티븐스(1904~1975) 감독이 리메이크한 것이 ‘젊은이의 양지(A Place In The Sun)’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고 평단의 호평 속에 아카데미 6관왕의 영예를 누렸다.
 
1920년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젊은이의 양지’는 아무리 손을 뻗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동경하는 한 젊은이의 비뚤어진 욕망과 파멸을 그리고 있다. 영화는 멜로로 시작하여 이후 치정스릴러로 치닫고 마침내 법정드라마로 이어지며 비극의 마침표를 찍는다. 인생의 ‘양지(陽地)’를 좇지만 결국 ‘음지(陰地)’의 나락으로 빠져버리고 마는 한 청춘의 일그러진 모습이 긴 여운과 씁쓸함을 남기는 영화다.
 
끝 모를 욕망이 부른 파멸의 그림자
 
 옷 가지를 넣은 트렁크 하나를 들고 허허벌판 고속도로변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사나이. 그의 이름은 조지 이스트먼(몽고메리 클리프트)이다. 별 볼 일 없는 시골청년 조지는 대도시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삼촌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기 위해 고물트럭에 몸을 싣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선교사 일을 하는 엄격한 어머니 한나(앤 리비어) 밑에서 자란 조지는 그저 그런 촌뜨기이지만 내심 커다란 야망을 품고 있는 인물이다.
 
삼촌 찰스(허버트 헤이스) 소유의 여자수영복 공장 포장부에서 일하게 된 조지는 가난 한 여공 엘리스(셜리 윈터스)에 호감을 가진다. 일체의 사내 연애를 금지하고 있는 공장에서 동료의 눈을 피해 몰래 데이트를 즐기던 둘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지고 결국 육체적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조지의 생일날. 엘리스는 조촐한 파티를 열겠다며 조지에게 일찍 와달라고 청한다. 같은 날 삼촌 찰스는 자신의 대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에 조지를 초대한다. 내로라하는 상류사회 인사들이 모인 파티에서 조지는 기름 위의 물처럼 겉돈다. 왕따처럼 어디에도 끼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그에게 눈부신 미모를 지닌 안젤라 비커스(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호감을 보이며 다가온다. 둘은 밤늦도록 댄스를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각. 초라한 파티 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던 엘리스는 늦게 귀가한 조지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며 질투한다. 엘리스는 자신의 임신 사실을 털어놓게 되고, 이야기를 들은 조지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관리부서로 승진한 조지와 엘리스의 관계는 더욱 서먹해진다. 가책을 느낀 조지는 엘리스가 걱정되어 어렵게 전화를 하지만 이내 걸려온 비커스의 전화를 받자 언제 그랬냐는 듯 즐거워하며 데이트를 약속한다. 조지는 비커스와 파티 장소로 향한다. 이제 상류사회 누구도 명문가 여식 비커스와 교제하는 조지를 무시하지 못한다. 조지 또한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동화된다. 그러나 조지에게는 어딘가 모를 우울한 그림자가 늘 드리워 있다. 비커스는 그런 조지를 따뜻하게 위로한다. 결국 조지는 비커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비커스 역시 조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며 깊은 키스를 나눈다.
 
한편 산부인과를 다녀온 엘리스는 자꾸만 어긋나가는 조지에게 빨리 결혼해 줄 것을 요구한다. 조지는 사내 연애 사실이 드러나면 둘 다 실직할 수 있으니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말하면서 시간을 번다. 사면초가에 놓인 조지는 마침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익사사고 뉴스를 듣는다. 속으로 무슨 결심이라도 하는 걸까. 조지의 눈동자가 두려움과 불안에 떨려온다. 그런 와중에도 비커스를 향한 조지의 욕망은 식을 줄 모른다. 조지는 엘리스에게 거짓말을 하고 비커스 가족이 휴가를 보내는 호숫가로 향한다. 상류사회의 일원이 된 듯 조지는 보트를 타고 윈드서핑, 승마, 수영을 즐긴다. 그러는 사이 엘리스의 존재는 잊혀만 간다. 한편 신문에서 비커스와 함께 휴가를 즐기는 조지의 사진을 본 엘리스는 깊은 좌절에 빠진다. 궁지에 몰린 엘리스는 조지에게 당장 결혼하지 않으면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한다.
 
엘리스의 압박이 거세지자 조지는 혼인신고를 위해 법원으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노동절이어서 둘은 헛걸음으로 돌아온다. 조지는 기분전환을 위해 하루 소풍을 다녀오자며 엘리스를 꾄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엘리스는 조지를 따라 순순히 호수로 향한다. 조지는 가명으로 보트를 빌려 엘리스와 함께 호수 깊은 곳까지 배를 저어간다. 밤이 깊어가고, 엘리스는 별빛 아래서 둘만의 세상을 꿈꾸는 말들을 쏟아낸다. 이를 듣는 조지의 얼굴은 싸늘하게 굳어가고 이마는 점점 식은땀으로 젖는다. 조지는 분홍빛 환상에 젖어 계속 떠들어대며 사랑을 갈구하는 엘리스에게 질려버린다. 참다못한 조지가 “그만하라!”고 소리치자 사태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엘리스는 “내가 죽기를 바라느냐”며 울음을 터뜨린다. 속내를 들킨 조지가 더 화를 내자 엘리스는 조지의 화를 풀어주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 순간 배는 중심을 잃고 전복된다. 조지와 엘리스도 호수 한복판으로 빠져버린다. 얼마 뒤, 혼자 헤엄쳐 나온 조지는 남몰래 숲속을 벗어나 비커스가 있는 별장으로 향한다.
 
익사사건 신고를 받은 검찰은 탐문수사 끝에 조지를 체포한다. 조지는 법원으로 압송되고, 조지의 이중생활을 알게 된 비커스는 실신한다. 드디어 재판이 열린다. 조지는 “엘리스를 호수로 데려갔으나 죽일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사고는 우연히 일어난 것”이라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러나 직장동료, 하숙집 주인, 산부인과 의사, 버스 정류장 안내인, 보이스카우트 대원, 보트관리인 등 모든 증인이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쏟아 놓는다. 여론은 조지를 전기의자로 보내라며 들끓는다. 변호사는 “살해할 의도를 품은 것과 그것을 실제 실행한 것은 다른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은 조지가 엘리스를 충분히 구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살해의도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에게 1급 살인죄 평결을 내린다. 그러나 조지는 끝내 자신의 유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지를 면회하기 위해 엄마 한나가 캔자스시티에서 달려온다. 동석한 목사는 엘리스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비커스만을 생각하며 구조를 포기한 조지를 향해 “그것은 마음속의 살인과 다르지 않다”는 말을 남긴다. 엄마는 아들에게 의연하게 죽음을 맞을 것을 당부하며 신에게 자식을 잘못 가르친 자신을 용서하라며 기도한다. 비커스도 사형을 앞둔 조지를 찾는다. 비커스는 자신이 살아있는 한 언제까지나 조지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지는 “이전에 몰랐던 것들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는 여러 가지로 유죄”라며 자신을 잊어 달라는 말을 남긴 뒤 사형장으로 향한다.
 
젊은이의 우상 ‘몬티’와 세기의 미녀 ‘리즈’
 
이 영화의 백미는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를 펼치는 세 인물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엘리자베스 테일러, 셜리 윈터스가 보여주는 눈부신 연기다.
 
셜리 윈터스(1920~2006)는 싸구려 월세 집 여주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도시 하층민 여성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초기의 날씬하고 귀여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대신 적당히 살이 오른 통통한 30대의 셜리 윈터스는 메이크업 없는 민얼굴로 나와 욕망 가득한 남자친구로부터 버림받는 비련의 엘리스를 연기했다.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연기파 셜리 윈터스는 출연한 영화마다 유독 죽음을 당하는 비운의 역할을 많이 맡은 배우다. 특히 1978년 재난영화 ‘포세이돈 어드벤처’에서 진 해크먼을 구하고 익사하는 전직 수영선수 아줌마로 나왔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국내 팬이 아직도 많다.
 
수렁에 빠지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치명적인 미모를 지닌 ‘리즈’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2011).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무 살이었다. 열 살 되던 1942년 ‘귀로’라는 작품으로 일찌감치 영화계에 데뷔한 그녀는 ‘젊은이의 양지’를 통해 절정의 미모를 뽐내며 당대 최고의 미녀로 군림하게 된다. 푸른색에 보랏빛이 감돌아 사파이어보다 더 아름다웠다는 매력만점의 눈동자, 고혹적인 목소리, 다이아몬드를 깎아 빚은 듯 완벽한 마스크를 지닌 그녀는 사랑을 리드해 나가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끝내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좌절하는 사교계의 꽃 안젤라 비커스로 분(扮)해 열연했다. ‘녹원의 천사(1944)’ ‘작은 아씨들(1949)’ ‘자이언트(1956)’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1958)’ ‘지난여름 갑자기(1959)’ ‘버터필드8(아카데미 여우주연상/1960)’ ‘클레오파트라(1963)’ ‘누가 버지니아울프를 두려워하라(아카데미 여우주연상/1966)’ 등 그녀가 출연한 일련의 영화는 하나같이 영화사의 전설로 남을만한 작품들이다. 불세출의 미모와 그에 결코 뒤지지 않는 출중한 연기력을 겸비한 그녀는 진정한 은막의 스타이자 세기의 연인이었다.
 

우수와 고독이 감도는 마스크, 얼음처럼 차가우면서도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유약함과 예민함, 극도의 불안감에 싸인 듯 흔들리는 눈동자, 콤플렉스에 가득 찬 이미지를 풍기지만 완벽한 조각미남의 외모를 갖춘 몽고메리 클리프트(1920~1966)만큼 주인공 조지이스트먼의 역할에 딱 들어맞은 배우는 없을 것이다. 어정쩡한 걸음걸이, 고뇌를 잔뜩 담은 깊은 눈매, 조소와 수줍음을 동시에 머금은 야릇한 미소, 무언가에 쫓기는 듯 초조해 보이기만 하는 그의 모습은 반항의 상징으로 불린 제임스 딘의 원조 격이다(실제로 그는 제임스 딘이 주연한 ‘에덴의 동쪽’ 출연을 거절하기도 했다). 그는 ‘젊은이의 양지’에서 불을 향해 뛰어드는 한 마리 불나비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는 연기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1949)’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종착역(1953)’ ‘애정이 꽃피는 나무(1957)’ ‘젊은 사자들(1958)’ 등에 출연하며 성공가도를 달려왔으나 그는 영화 속 캐릭터처럼 현실에서도 고뇌에 가득 찬 인생을 살다 간 인간으로 기억된다. ‘젊은이의 양지’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이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을 평생 숨기며 살았다. 당시 미국사회는 동성애자를 정신병자로 분류하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비밀스럽게 살아야 했던 그는 교통사고로 얼굴이 망가진 이후에는 술과 마약에 빠져 생활했다. 알레르기와 대장염 등 이런저런 고질병에도 몹시 시달렸다. 결국 시대의 아이콘으로 일세를 풍미했던 이 사내는 1966년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영원히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았던 아름다운 고독자 ‘몬티’의 갑작스런 죽음에 많은 이들이 깊은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그때 그의 나이 불과 마흔 다섯이었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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