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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④ - 길

기사승인 2018.09.21  13: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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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④ - 길
 
  
  - 제작 : 1954년, 이탈리아
  - 감독 : 페데리코 펠리니
  - 배우 : 안소니 퀸, 줄리에타 마시나, 리처드 베이스하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94분
  - 수상 :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와 백치 여인 젤소미나, 그리고 줄광대 마토는 모두 길 위의 인생들이다. 정처 없는 유랑극단 생활이 삶의 전부인 세 떠돌이의 인생과 사랑, 연민과 고독, 그리고 상실의 고통을 담은 영화 ‘길’은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 감독의 이름을 세계적인 클래스로 각인시켜 놓은 고전 명작이다.
 
 전후(戰後)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울타리 안에서 사실주의에 입각한 영화를 지향하던 펠리니는 다양한 영상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변신의 길을 걷게 된다. 현실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정신, 보다 객관적인 리얼리즘을 추구하던 그가 매우 서정적이고 시적 운율이 넘쳐나는 주관적인 작품세계로의 전향을 꾀하는 기로에 위치한 영화가 ‘길’이다. 황폐화된 인간의 내면, 운명과 시간이 빚는 비극적 상황, 서정적인 리듬 등 보다 영화적인 요소에 치중하려한 펠리니의 이 과도기적 행보는 네오리얼리즘의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인 몸짓으로 인식되었다.
 
길 위의 인생들이 펼치는 비극적 삶
 
 지능이 좀 모자라는 여자 젤소미나(줄리에타 마시나)는 홀어머니, 여동생 넷과 함께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다. 젤소미나는 어느 날 나타난 떠돌이 차력사 잠파노(안소니 퀸)에게 팔려간다. 생활이 궁핍한 젤소미나의 어머니는 큰딸 로사를 잠파노에게 팔아넘긴 뒤 그녀가 죽자 작은딸 젤소미나마저 1만 리라에 팔아넘긴 것. 
 
 마차 달린 오토바이 하나로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며 쇠사슬 끊는 차력과 코미디 악극을 공연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잠파노는 기운이 세고 술과 여자를 밝히는 거친 사나이. 잠파노는 낮에는 가혹한 매질과 함께 젤소미나에게 나팔과 드럼 연주를 가르치고 밤에는 그녀를 성적 도구로서 학대한다. 하지만 젤소미나는 잠파노를 가엽게 여겨 그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외줄타기 명수인 줄광대 마토(리처드 베이스하트)를 만나 같은 서커스단에서 활동하게 된다. 마토는 잠파노를 이유 없이 놀려대며 그와 늘 티격태격 다투는 사이. 어느 날 흥분한 잠파노는 마토에게 칼을 휘둘러 경찰서에 수감된다. 마토는 늘 장난기 가득한 광대이지만 젤소미나에게는 인간의 존재 이유를 이야기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충고한다. 그리고 자신이 즐겨 연주하는 바이올린 곡을 그녀에게 가르쳐준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잠파노는 젤소미나와 함께 길을 떠나고 마토 역시 다른 곳으로 떠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우연히 길 위에서 다시 만난다. 경찰서에 잡혀간 일 때문에 분이 풀리지 않은 잠파노는 마토가 또 놀려대자 주먹을 날리고, 머리를 다친 마토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만다. 마토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젤소미나는 그날 이후 식음을 전폐하고 울기만 한다. 추운 겨울날. 젤소미나가 더 이상 광대 일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잠파노는 길 위에서 잠들어 버린 그녀를 버려둔 채 도망간다. 
 
 몇 년 후. 다른 유랑극단에 합류한 잠파노는 어느 바닷가 마을을 산책한다. 그때 어디선가 귀에 익은 멜로디가 잠파노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그 멜로디는 젤소미나가 마토에게 배워 트럼펫으로 연주하던 바로 그 곡조. 잠파노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한 여인에게 묻는다. “그 노래는 어디서 배웠소?” 여인은 4~5년 전 그곳에 흘러들어온 한 여자가 울기만 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다가 이내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전한다. 젤소미나의 죽음을 확인한 잠파노는 그녀가 자신에게 구원의 존재였음을 뒤늦게 깨달으며 깊은 연민과 죄의식으로 괴로워한다. 밤바다에 절규하는 잠파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영화는 끝난다.
 
펠리니의 ‘뮤즈’ 줄리에타 마시나
 
 믿고 보아도 좋은 배우 안소니 퀸(1915~2001, 사진 오른쪽)의 연기도 훌륭하지만 ‘길’은 젤소미나를 연기한 줄리에타 마시나의 영화와 다름없다. 펠리니 감독의 아내로, 펠리니 자신이 늘 ‘내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해왔던 줄리에타 마시나(1921~1994, 왼쪽)는 이 영화에서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백치 젤소미나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영화 속에서 젤소미나의 나이는 알 수 없다. 그녀가 소녀인지, 아가씨인지, 여인인지. 이유는 젤소미나 역할을 한 줄리에타 마시나의 외모와 연기 때문이다. 출연 당시 줄리에타 마시나의 실제나이는 33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잔뜩 겁먹은 큰 눈망울, 장난기 어린 미소,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가련한 소녀 이미지로 관객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하는 코믹한 연기는 물론이고 보호본능을 자극케 하는 작은 몸매, 천사와 광녀(狂女)의 이미지를 모두 지닌 야릇한 표정,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음성과 동작 하나하나까지 그녀의 연기는 메서드 액팅(Method Acting) 그 자체다.
 
 자신을 세상에서 쓸모없는 존재로 생각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젤소미나에게 존재의 이유를 가르쳐주는 사람은 줄광대 마토다. 둘이 나누는 대화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토 : 여하튼 세상에 있는 것은 모두 어딘가 쓸모가 
      있대. 예를 들자면…. 자, 거기 돌을 봐.
젤소미나 : 어느 돌이요?
마토 : 아, 이거! 아무거나. 이것도 어딘가 쓸모 있어. 
      이런 돌멩이도 말이야.
젤소미나 : 뭐에 써요?
마토 : 뭐에 쓰냐 하면… 이 돌멩이가 뭐에 쓰일지는 
      몰라. 하지만 쓰일 데가 있을 거야. 이게 소용없다
      면 만사가 소용없어! 저 별들마저… 적어도 난 그렇
      게 믿어. 그래 너도 그래! 뭔가 쓸모가 있을 거야.
 
 그러나 종교적 구원을 줄 것만 같았던 마토의 어이없는 죽음은 결국 젤소미나의 인생을 막다른 길로 내모는 동기가 되고 만다.
 
처절한 상실의 고통
 
 영화를 이끌어 가는 또 하나의 주인공 잠파노. 그는 자신을 재워준 수녀원의 장식물까지 훔치려 드는 파렴치한 인간인 동시에 늘 젤소미나를 가혹하게 대하고, 종국에는 살인을 저지르더니 활용가치가 없어진 젤소미나를 버리고 도망가는 비정한 인물이다.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은 그도 젤소미나가 트럼펫으로 마토의 연주곡을 불어대는 모습에서는 묘한 질투를 느낀다. 종국에 그는 순수하고 따뜻한 영혼을 지녔던 젤소미나의 부재를 통해 죄의식을 느끼고 괴로워하지만 그의 아픔은 결코 치유되지 못한다.
 
 멕시칸의 피를 타고난 안소니 퀸은 이국적 외모와 선 굵은 연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스타이다. ‘노틀담의 꼽추’ ‘희랍인 조르바’ ‘노인과 바다’ ‘바라바’ ‘25시’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의 영화에서 목격했듯이 그가 맡은 캐릭터를 보면 모든 영화가 그의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기획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는 항상 배역에 딱 맞아떨어지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다만 초창기 안소니 퀸의 존재감을 잘 몰랐던 ‘길’의 제작자가 잠파노 역에 버트 랑카스타, 젤소미나 역에 이탈리아 여배우 실바나 망가노를 캐스팅하려고 하자 펠리니 감독이 이를 저지했다고 한다. 단언컨대 펠리니 감독의 사람 보는 혜안이 없었다면 ‘길’은 오늘날 고전의 반열에 결코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길’을 언급할 때 빼놓아서 안 될 인물이 또 있다. 먼지 날리는 황량한 로마의 외곽 길들을 로케이션 카메라로 멋지게 잡아낸 촬영감독 오텔로 마르텔리와 음악을 담당한 니노 로타(Nino Rota)이다. 특히 ‘태양은 가득히’ ‘로미오와 줄리엣’ ‘대부Ⅱ’ 등의 메인 테마 작곡가로 훗날 주가를 올리게 되는 니노 로타는 ‘길’에서 우수에 젖은 트럼펫 곡 ‘젤소미나의 테마’를 만들어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세상에는 여러 갈래 길이 있으며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길 위에서 울고 웃는다. 누구는 사랑에 환희하고, 이별에 괴로워하며, 외로움에 질식하고, 고독에 몸부림친다. 바닷가에서 동생들과 천진스럽게 뛰노는 젤소미나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회한에 빠져 울부짖는 잠파노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먼 길을 돌아와, 이제는 자신이 선택한 길의 끝에서 절규하는 잠파노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숙명 앞에서 나약한 모습으로 허물어지고 만다.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은 사라져 버렸고 때늦은 후회는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공허하기만 하다. 이런 게 인생이라면 세상은 너무도 허무한 곳이다.
 
 
▶ 용어해설 : 메서드 연기(Method Acting) ----------------------------------------------
 
영화나 드라마의 배역을 맡은 연기자가 자신의 처지를 배역 속 인물과 동일시하여 혼신을 다하는 극사실주의적 연기를 일컫는다. 즉 연기자가 극중 인물과 똑같은 삶을 사는 경험 등을 통하여 극중 인물의 외면과 내면, 즉 육신과 정신 모두를 완벽하게 재현해 낼 경우 메서드 연기라는 표현을 쓴다. 예를 들어 배우가 지체장애를 앓는 역할을 맡을 경우 실제 생활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든가, 또는 뚱보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고의로 몸무게를 수십 킬로그램 늘리는 식으로 완벽한 변신을 꾀하는 경우가 그런 케이스다.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니로, 잭 니콜슨, 알 파치노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 국내 배우 김명민 등이 대표적인 메서드 연기자로 분류되며 팬들은 이런 배우들에게 ‘연기파 배우’ ‘연기 본좌’ 등의 칭호를 붙여 찬사를 표시한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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