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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③ - 시민 케인

기사승인 2018.09.11  09:4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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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③ - 시민 케인
 
 
  - 제작 : 1941년, 미국
  - 감독 : 오손 웰스
  - 배우 : 오손 웰스, 조셉 코튼, 도로시 커밍고어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19분
  - 수상 : 아카데미 각본상 / 뉴욕 비평가협회 작품상
 
 
 
 한 남자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영화치고 ‘시민 케인(Citizen Kane)’만큼 세인의 주목을 받았으며, 영화 역사를 다시 쓰게 할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 걸작은 또 없을 것이다. 비록 1895년 르미에르 형제가 최초의 영화를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영화의 역사는 1941년 5월 1일 개봉한 ‘시민 케인’으로부터 다시 시작되었다”는 평론가들의 찬사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 케인’은 그야말로 ‘현대 영화의 바이블’ ‘현대 영화의 교과서’라 불러도 절대 손색없는 작품이다. 모더니즘 영화의 신호탄이 된 ‘시민 케인’의 등장은 이전 영화판을 지배해 왔던 많은 이론과 사고의 틀을 일순간에 구시대 유물로 전락케 한 일대 사건이었다.
 
천재 영화인의 출현
 
 하루아침에 영화판의 지각변동을 불러온 주인공은 약관 스물다섯의 청년 오손 웰스(Orson Welles; 1915~1985)였다. 그는 영화계에 뛰어들자마자 과감한 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당시에는 볼 수 없던 독보적인 영화문법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는 감독 데뷔작인 ‘시민 케인’을 통해 회화의 원근법 원리를 도입한 딥포커스, 피사체의 크기를 왜곡하는 로우앵글, 암전효과로 영상미를 극대화 하는 디졸브, 그리고 플래시백과 플래시포워드, 롱테이크, 대담한 경사앵글과 미니어처, 그림과 실사를 혼합한 특수효과, 최초의 엔딩 크레딧 등 카메라가 보여 줄 수 있는 온갖 테크닉을 화려하게 구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또한 하나의 드라마 속에 멜로, 로맨스, 코미디, 뮤지컬 형식을 모두 담아내는가 하면 변화무쌍한 편집, 환상적 음향과 분장, 독창적인 미장센과 몽타주의 조합,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과감한 내러티브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결과 ‘시민 케인’은 1960년대 이후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선정해 온 ‘세계 100대 영화’ 순위에서 수십 년간 부동의 1위 지위를 누리는 등 영화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게 된다.
 
그리움 뒤에 감춰진 한 인간의 욕망과 좌절
 
[▲젊은 시절의 웰스(왼쪽)와 노년기의 모습]
 1940년, 세계에서 손꼽히는 자산가였던 찰스 포스터 케인(오손 웰스)이 거대한 저택 제나두의 침실에서 ‘로즈버드(Rosebud)’라는 외마디 유언을 남기고 쓸쓸히 숨을 거둔다.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던 케인은 부모 소유 폐광산이 금광으로 변하면서 인생역전에 성공한 인물. 눈썰매를 타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여섯 살 소년 케인은 이후 신탁사업가 대처(조지 클로리스)씨에게 맡겨 져 부모와 떨어진 채 외롭게 성장한다. 스물다섯 살이 되어 완전 독립하게 된 케인은 여러 돈벌이 기회를 마다하고 언론사 경영에 발을 들인다. 뉴욕 인콰이어러지를 발행하게 된 케인은 노동자와 가난한 이들의 대변자가 될 것을 서약하고 연이은 폭로기사를 터뜨린다. 하루가 다르게 그의 인기는 치솟고 신문 발행부수도 급증한다. 이후 케인은 미국 전역의 신문사들을 차례로 인수, 합병하면서 언론재벌의 자리에 오르고 대통령 조카와 결혼까지 한다. 급기야 정계 진출을 마음먹은 케인은 뉴욕주지사 선거에 나서지만 무명 여가수 수잔(도로시 커밍고어)과의 불륜사실이 드러나 낙선한다. 결국 아내 에밀리(루스 워릭)와 이혼한 뒤 수잔과 재혼하지만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불운을 겪는다. 그의 친구이자 인콰이어러지 부편집인으로 동고동락한 친구 르랜드(조셉 코튼)마저 초심을 잃어버린 케인의 모습에 실망하여 신문사를 떠나고 수잔 역시 불화 끝에 케인과 헤어진다. 모두가 떠나버린 대저택 제나두에는 우울한 정적만이 감돌고 홀로 남은 케인은 외롭고 쓸쓸함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케인이 남긴 유언 ‘로즈 버드’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취재에 나선 한 기자의 행적을 따라가며 전개된다. 기자는 케인의 곁을 지켰던 신탁사업가 대처, 절친 르랜드, 두 번째 아내 수잔, 인콰이어러지 매니저 번스틴(에버트 슬론), 제나두의 집사 레이몬드(폴 스튜어트)를 만나 ‘로즈 버드’의 실체를 캐려하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한다. 영화의 막바지. 케인이 평생 긁어모았던 수집품 중에서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주인 없는 제나두의 소각로 속에서 태워진다. 더 취재할 것이 없어진 기자가 발길을 돌리는 순간 인부 하나가 작은 눈썰매를 불 속으로 집어던진다. 화면이 클로즈업 되고, 순간 관객들은 불타는 눈썰매에서 ‘로즈 버드'라는 글자를 발견하게 된다.
 
왜 ‘시민 케인’인가
 
 앞서 지적했듯이 ‘시민 케인’은 오손 웰스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다. 유성영화가 만들어진 이래 제작, 감독, 주연, 각본을 모두 겸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당시 25세였던 웰스는 케인의 젊은 시절부터 70살이 되어 죽어가는 노년의 케인에 이르기까지, 50년 세월을 넘나드는 주인공 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그는 또 기성 영화배우 아닌 연극인과 스태프들을 배우로 기용하는 파격을 통해 영화에 신선함을 불어넣었다. 그러니까 웰스 자신은 물론이고 조셉 코튼을 비롯한 이 영화 출연자 대다수에게 있어 ‘시민 케인’은 그들 인생의 첫 영화로 기록되는 셈이다.
 
 ‘시민 케인’은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스릴러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영화이다. 그러나 웰스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능수능란한 편집 솜씨로 평단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는 구차한 자막이나 내레이션 없이 단 한 컷의 장면 전환만으로도 수십 년 세월을 후퇴시키거나(플래시백) 앞당기는(플래시포워드) 수완을 보였다. 크리스마스에 여섯 살이었던 소년 케인이 새해가 되는 다음 장면에선 갑자기 스물다섯 청년으로 바뀌는 설정 등이 그런 예이다. 이처럼 빠른 템포와 경제적인 화면 전환은 1941년 당시에는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구조였으며 요즘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재기발랄한 것이다.
 
어른을 위한 한편의 동화
 
 ‘시민 케인’은 웰스의 천재성으로 반짝이는 영화였지만 그 열매가 반드시 단 것만은 아니 었다. ‘시민 케인’은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신문사와 통신사, 출판사, 방송국을 소유했으며 저속하고 선정적인 기사로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돌풍을 일으켰던 실존인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1863~1951)를 모델로 삼은 영화였다. 자신을 빗댄 영화에 분노한 신문황제 허스트는 웰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를 고소하겠다고 위협하는가 하면 자신이 소유한 막강한 매체의 힘을 이용해 ‘시민 케인’의 홍보를 원천 차단했다. 심지어 할리우드 측에 필름을 폐기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전국 개봉을 하지 못한 채 단관상영에 만족해야 했다. 웰스는 흥행에 참패함으로써 이후 제작자의 투자를 받는데 고초를 겪어야 했다. 아카데미상에도 9개 부문이나 노미네이트되었지만 허스트의 집요한 방해로 수상은 각본상 하나에 그쳤다.
 
 상처로 얼룩진 ‘시민 케인’의 진가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 평단을 중심으로 ‘시민 케인’이 지닌 영화적 가치에 대한 언급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걸작으로 널리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때는 허스트도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된 뒤였으니 어떠한 방해도 받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우여곡절을 거쳐 이 걸작은 수렁에서 건져졌지만 정작 웰스 자신은 ‘시민 케인’의 흥행 실패 이후 큰 빛을 보지 못했다. 그는 1944년 출연한 ‘제3의 사나이’ 정도를 빼고는 거의 B급 영화에나 출연하는 보잘 것 없는 배우로 전락했고 출연료를 한 푼 두 푼 모아 어렵사리 제작한 영화들도 빛을 보지 못했다. 세월도 약이 되지 못했을까. 시대를 앞서 나갔던 이 거인 역시 1985년 영화 속 케인과 같은 70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그는 평생 세 번 결혼을 했다. 그의 두 번째 아내는 1940년대를 풍미한 유명한 글래머 스타 리타 헤이워드(1918~1987)였다. 혹시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신 분이라면 주인공이 뚫어 놓은 탈출통로를 감추기 위해 감방 벽에 큰 사진을 걸어 놓았던 장면을 기억하시리라. 그 사진 속 핀업걸이 바로 리타 헤이워드다.
 
 ‘시민 케인’에 대한 일부의 혹평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온갖 영화 기술을 쓸어 넣은 조잡한 종합선물세트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오래 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하려고 들지 않았던’ 것에 도전하여 영화사의 새로운 지평을 스스로 열어간 웰스의 실험정신과 창조성은 결코 비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영화의 라스트로 돌아가자. 오직 관객만이 ‘로즈 버드’의 정체를 알게 될 뿐, 작품 속 그 누구도 ‘로즈 버드’의 실체를 모르는 채 영화는 끝난다. 주인공 케인이 죽어가는 순간 애타게 찾았던 ‘로즈 버드(장미 봉오리)’는 바로 케인이 어린 시절 타고 놀던 눈썰매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충격적인 엔딩을 통해 우리는 케인이 추구했던 것은 돈과 명예, 권력이 아닌 ‘그리움’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어둡고 우울했던 케인의 가슴 한 가운데에도 잊히지 않는 어린 날의 향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시민 케인’은 작은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현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을 위한 한편의 동화가 되어 끝을 맺는다. 그리고 영화는 묻는다. 당신의 ‘로즈버드’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 글쓴이 주 : 아주 오래 전 영화여서 감상할 기회가 적은 만큼 DVD를 구입해 시청해 보시길 권합니다. 저작권보호기간이 끝나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 가능하며 화질 또한 선명합니다. 함께 수록된 해설까지 시청하시면 영화 이해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용어해설 -------------------------------------------------------
 
▲디졸브(Dissolve) : 웰스는 연극인 출신답게 무대 한쪽의 불이 꺼지는 동시에 다른 한쪽이 밝아지는 연극의 디졸브 개념을 영화에 최초로 도입했다. 케인의 친구 르랜드가 과거를 회상하는 신에서 많이 차용되었다(사진 오른쪽). 르랜드가 케인과 함께했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 순간 화면 한쪽에 타자를 치는 케인의 모습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한 장면이 서서히 어두워지며 사라지는 순간 그 위로 다른 장면이 포개지듯 새롭게 나타나는 이 장면전환 효과는 극도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창출한다.
 
 
▲딥 포커스(Deep Focus) : 카메라가 어느 한 사물에 초점을 맞추면 그 외의 배경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딥 포커스 촬영을 하면 화면에 나타나는 모든 사물이 초점의 흐림 없이 선명하게 보인다. 따라서 관객은 어느 특정한 사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사물에 주의하면서 감상할 수 있다. 왼쪽 사진을 보자. 이 장면은 어린 케인을 신탁하기 위해 케인의 부모와 신탁사업가 대처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전방의 등장인물 세 사람뿐 아니라 저 멀리 창밖에서 놀고 있는 어린 케인에게도 초점이 맞춰져 관객의 시선은 어디든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딥 포커스 촬영기술은 이전의 일부 영화에서도 시도된 바 있지만 이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 낸 것은 ‘시민 케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딥 포커스에 대한 웰스의 지론은 이렇다. “감독이 관객에게 이 장면만 보시오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각자에게 눈이 있으니 한 쇼트 내에서 각자가 보고 싶은 것을 보면 그만이다.”
 
▲로우앵글(Low Angle) : 피사체의 크기를 조작하는 기술. 일명 ‘낮은 천장’효과라고도 한다. 마룻바닥을 뜯어낸 자리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아래서 위로 사물을 비추는 식으로 촬영한다. 상대적으로 피사체가 크게 보이는 효과를 나타낸다. 오른쪽 사진을 보면 천장은 낮고 상대적으로 케인의 모습은 거인처럼 느껴진다. 로우 앵글은 이처럼 왜곡된 화면을 통해 등장인물의 힘과 권력, 또는 심리적 단절감 등을 드러내고자 할 때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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