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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⑫ - 공포의 보수

기사승인 2018.12.11  10: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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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⑫ - 공포의 보수
 
 
  - 제작 : 1953년, 프랑스․이탈리아
  - 감독 : 앙리 조르주 클루니
  - 배우 : 이브 몽땅, 샤를 바넬, 폴코 룰리, 피터 반 아이크, 
             베라 클루조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47분
  - 수상 :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 / 칸 영화제 그랑프리
 
 
 
 필자가 이제껏 본 영화 중 이처럼 극한의 서스펜스와 스릴을 느끼게 한 작품은 또 없었다. 사방에 피가 튀는 엽기적 살육 장면 하나 없이도 몹시 가학적인 방식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을 선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공포의 보수(Le Salaire De La Peur)'는 프랑스 느와르의 정통성을 표방하는 앙리 조르주 클루니 감독의 대표 걸작이다.
 
과거 할리우드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이 서스펜스의 대가로 명성을 날렸다면 앙리 조르주 클루니는 프랑스를 넘어 유럽을 대표하는 서스펜스의 거장이었다. 히치콕이 장르의 플레임 안에서 다양한 서스펜스의 기교를 선보인 반면 클루니는 매우 스트레이트한 스타일로써, 당대 사회현실 속에 서스펜스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사실주의적 표현에 방점을 두었던 인물이다. 그는 ‘공포(恐怖)의 보수(報酬)’에서 돈을 좇아 사지로 뛰어드는 불나비 같은 네 사나이의 모습을 통해,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인간의 무모한 도전과 비겁한 일면은 물론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에 가려진 허상과 폐해까지 낱낱이 고발한다. 베를린과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동시 석권했을 만큼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폭약 싣고 불바다로 향하는 사내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인이 운영하는 석유회사가 있는 남미 볼리비아의 후진 마을 라스 피에도라스는 하루가 멀다하고 일자리를 찾아오는 그렇고 그런 이방인들로 북적인다. 한낮의 무더위 속에서 난민처럼 밀려드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오늘도 하릴없이 에르난데스의 선술집  주변에 모여 노닥거린다. 그들은 비행기 삯이 없어 쉽사리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프랑스인 마리오(이브 몽탕) 역시 무일푼 신세로 빈둥거리기는 마찬가지. 술집 여급 린다(베라 클루조)는 남들의 눈을 피해 마리오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그에게 용돈을 챙겨주기도 한다. 그런 린다를 주인 에르난데스는 성적 노리개로 취급하지만 마리오는 그저 남일 보듯 한다.
 
어느 날. 전직 갱 단원 출신 조(샤를 바넬)가 마을로 들어온다. 공항 관원에게 뇌물을 먹이고 입국 통과한 조. 그 역시 이곳에 일자리를 찾아온 별 볼일 없는 처지다. 그러나 풍채 좋고 돈푼께나 있어 보이는 조에게 에르난데스는 아첨을 부리며 환대한다. 그런 꼴이 못마땅한 다른 이방인들과 조 사이에 은근한 기 싸움이 벌어지는데, 조의 깡다구에 눌려 이방인들은 찍소리도 못한다. 마리오는 배짱 두둑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조에게 호감을 느끼며 급속히 가까워진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장벽 너머에 위치한 석유회사 SOC(Southern Oil Company). 이곳은 열악한 마을의 환경과 달리 별천지다. 1,500Km에 달하는 송유관을 소유한 이 회사의 책임자 오브라이언(윌리엄 텁스)은 한때 조와 사업을 같이했던 인물. 그러나 오브라이언은 자신을 찾아온 조를 문전박대한다. 반면 SOC의 취약한 송유관 상태를 목격한 조는 조만간 일거리가 생길 것을 예감한다. 그리고 사고가 발생한다. 마을에서 500Km 떨어진 산꼭대기 유전지대에서 화재가 일어나 불길에 싸인 것. 비정한 사업가 오브라이언은 사고 책임을 사상자들의 몫으로 떠넘기려 하고, 부상자는 아예 죽어버리기를 바란다.
 
SOC 수뇌부는 유정을 폭파하여 화재를 진압할 계획을 세운다. 폭파작업에 쓸 니트로글리세린 1톤씩을 실어 나를 두 대의 트럭도 준비된다. 문제는 조그만 진동과 충격에도 폭발해 버리는 이 위험물을 실어 나를 운전수를 확보하는 일이다. SOC는 1인당 2천 달러의 보수를 미끼로 내걸고 이방인을 상대로 운전수를 모집한다. 2천 달러라는 액수는 이방인들이 지옥 같은 이 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자 유혹이 된다. 실기테스트를 거친 끝에 마리오와 이탈리아인 루이지(폴코 룰리), 독일인 빔바(피터 반 아이크), 그리고 스멜로프(조 데스트)가 선발된다. 조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탈락된다.
 
출발 시각은 다음날 새벽 4시. 제 시각에 나타나지 않는 스멜로프 대신에 조가 모습을 드러낸다(아마도 조의 협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일의 사고를 대비해 니트로글리세린을 나눠 실은 두 대의 트럭은 30분 간격으로 출발한다. 마리오와 조, 빔바와 루이지가 각각 짝을 이룬다. 마리오가 출발 직전 겁을 내자 조는 자신을 믿으라며 큰소리친다.
 
동전던지기 결과 조와 마리오가 이른 새벽의 하늘을 가르며 1진으로 출발한다. 조그만 물웅덩이, 작은 돌부리 하나도 조심해야 하는 상황. 거센 바람 역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어 시속 40Km 이상의 속도는 낼 수 없다. 운전대를 잡은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한기를 느끼며 불안해한다. 늦게 출발한 빔바의 트럭이 바짝 다가오자 조는 식은땀을 흘리며 멈춰 선다. 빔바의 트럭이 추월해 나가고, 마리오는 호언장담과 달리 잔뜩 겁을 먹은 조에게 실망하여 운전대를 빼앗는다.
 
지옥의 레이스, 그 허무한 종말
 
S자로 이어진 산길로 들어선 두 대의 트럭은 첫 번째 난코스에 직면한다. 천길 벼랑 끝에 나무판자로 설치해 놓은 위험천만한 플랫폼 위에서 차를 후진한 뒤 유턴해야 하는 상황. 판자는 삭아 구멍이 나있고 바닥은 몹시 미끄럽다. 조금만 이탈해도 트럭은 난간 없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폭약과 함께 산산 조각날 운명이다. 빔바는 루이지의 도움을 받아 첫 난관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뒤이어 도착한 마리오의 트럭. 형편없는 판자 상태를 본 조는 그만 포기하자고 말한다. 마리오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운전대를 잡는다. 하는 수 없이 뒤에서 후진을 봐주던 조는 트럭에 떠밀려 절벽 아래로 미끄러지고 그길로 숨어버린다. 마리오는 천신만고의 사투 끝에 벼랑 위를 벗어난다. 이때 구조물을 지지하던 강철케이블이 트럭 적재함 고리에 걸리는 바람에 나무플랫폼은 완전히 파괴돼 소실된다. 마리오는 다시 나타난 조를 마음껏 조롱한다.
 
순조롭게 앞서가던 빔바 일행은 뜻하지 않은 장애물과 또 만난다. 산중턱 한복판에 엄청난 바위덩어리가 굴러떨어져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 족히 50톤은 돼 보이는 거대한 낙석 앞에서 루이지는 절망한다. 그러나 침착한 빔바는 니트로글리세린으로 바위를 폭파시켜 길을 뚫으려 한다. 마리오의 트럭이 곧이어 도착하고, 일행은 트럭 두 대를 안전환 곳으로 대피시킨다. 빔바는 살 떨리는 작업 끝에 기폭장치를 완성하여 바위를 성공적으로 폭파한다. 네 사나이는 환호하고 잠시 경쟁 상태에서 벗어나 진한 우정을 나눈다.
 
다소 평이해진 코스를 달리는 두 대의 트럭. 루이지에게 운전대를 맡긴 빔바는 면도를 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마리오도 조에게 담배를 말아달라며 모처럼 긴장을 풀어보려 한다. 그 순간 마리오와 조는 눈앞에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어나는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다. 앞서가던 빔바와 루이지의 트럭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충격을 받은 조는 마리오에게 차를 멈출 것을 요구한다. 마리오는 차에서 내려 도망가는 조를 쫓아간다. 둘 사이에 주먹질이 오가고, 조는 젊은 마리오를 당해내지 못한다. 얌전히 끝까지 따라오라는 마리오를 향해 조는 “나는 지쳤어, 나는 겁쟁이야.”라며 애원한다.
 
빔바 일행이 사고를 당한 지점에 다다른 마리오와 조. 폭발 당시의 충격으로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난 곳에는 파괴된 송유관에서 쏟아지는 원유가 고여 거대한 수영장을 만들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하면 기름연못이 길을 막아 트럭은 진행할 수 없다. 또 바닥이 미끄러워 도중에 바퀴가 헛돌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옴짝달싹 못한다. 다급해진 조는 기름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 바닥 깊이와 장애물 상태를 살핀다. 그런데 트럭 앞에서 진로를 봐주던 조는 그만 기름구덩이 속 나뭇가지에 걸려 고꾸라지고, 이미 트럭을 움직이기 시작한 마리오는 어쩔 수 없이 조의 다리를 밟고 지나가 버린다. 수십 톤 트럭이 주는 끔찍한 고통에 조는 비명을 지르면서 실신해 버린다.
 
온몸에 기름을 뒤집어 쓴 험한 몰골로 구출된 조는 부스러진 다리가 주는 고통에 까무러치기를 반복한다. 마리오는 조수석에 기대어 고통을 호소하는 조를 한쪽 팔로 감싸 안으며 잠들지 말라고 계속 말을 시킨다. 이틀 밤을 달려온 마리오의 피곤한 시야에 마침내 목적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들어온다. 활활 타오르는 화재현장의 불빛이 어둠을 밝히듯 모든 것이 희망으로 바뀌려는 순간 피를 많이 흘린 조는 아쉽게 숨을 거둔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들뜬 기분으로 조를 흔들어 깨우는 마리오. 응답 없는 조를 확인한 마리오는 굵은 눈물을 떨군다.
 
넷이 출발하여 셋이 죽은 상황. SOC 직원들의 격한 환영을 뒤로하고 마리오는 세상을 삼켜버릴 듯 이글거리는 불을 향해 걸어가다 탈진하여 쓰러진다. 다음날. 화재는 진압되고, 친구의 몫까지 4천 달러 수표를 받아든 마리오는 은행 문 닫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며 트럭에 오른다. 그 시각. 마리오의 생존 소식을 듣게 된 에르난데스의 선술집은 축제 분위기에 빠지고 린다는 이방인들과 함께 왈츠를 추며 기쁨을 나눈다.
 
목적을 달성한 마리오도 들뜬 마음으로 마을로 향한다. 그 역시 왈츠 곡에 맞춰 춤을 추듯 가파른 비탈길에서 지그재그로 신나게 차를 몬다. 집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서였을까. 비탈을 내려오던 마리오의 트럭은 급커브에서 미처 제어를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수십 길 벼랑으로 굴러 내린 트럭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불이 붙고, 마리오는 눈을 뜬 채로 그 자리에서 절명한다. 목숨을 담보로 지옥의 레이스를 펼친 사나이들의 겁 없는 도전은 이처럼 비극적이다 못해 너무나 어이없는 종말로 막을 내린다
 
온몸을 강타하는 스릴, 서스펜스
 
폭약이 실린 트럭을 몰며 불붙은 유전지대로 향하는 네 사나이의 피 말리는 액션을 일일이 필설로 풀어내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영화는 끈끈한 희생정신으로 장애물을 돌파하는 빔바와 루이지, 겁쟁이로 돌변한 동료를 마음껏 조롱하며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마리오, 나약한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는 조의 상반된 모습을 통해 죽음의 공포 앞에 노출된 인간의 원초적 심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또 남미 원주민과 이방인을 착취하는 미국 자본의 비열한 행태를 고발하는 등 노골적인 반미 색채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영혼을 파괴하듯, 막장으로 치닫는 인간들의 처참한 결말을 보여주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부패, 눈앞의 금전을 좇는 마초들의 무모한 도전을 충격적인 반전 한방으로 끝내버리는 ‘공포의 보수’. 그런 까닭에 ‘공포의 보수’는 별 다섯 개, 10점 만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엄청난 스릴과 서스펜스를 선사하지만 극도의 허무주의 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앙리 조르주 클루조(1907~1977)는 1943년 발표한 영화 ‘까마귀’로 프랑스 사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감독이다. 한 의사의 부정을 폭로하는 익명의 편지로 시작된 공포와 서스펜스가 온 마을을 뒤덮는 내용을 담은 이 영화로 인해 클루조는 반프랑스적 인물로 지목돼 영화계에서 퇴출된다. 이후 외지를 떠돌던 그는 1947년 해금되어 화려하게 복귀한다. 복귀 직후 발표한 ‘오르페브르의 부두(1947)’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마농(1949)’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뒤이어 ‘공포의 보수’로 베를린과 칸 영화제의 최고상을 동시 석권하는 기염을 토하더니 전설적인 스릴러물 ‘디아볼릭(1955)’으로 루이 델 뤼크 상과 뉴욕 평론가협회 외국어영화상을, 파블로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피카소의 미스터리(1956)’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명성을 떨쳤다. 그런 그가 1960년대 이후에는 침체기를 걷게 된다. 프랑스 영화의 새로운 사조인 누벨바그 세대가 그의 영화를 구시대 산물로 격하시켜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1977년 사망했지만 많은 영감을 받은 후배 감독들이 그의 작품을 다수 리메이크했다. 2차 대전 실화를 다룬 최신작 ‘덩케르크(2017)’를 감독한 크리스토퍼 놀란은 영화제작에 앞서 전장에서의 공포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공포의 보수’를 제1의 참고서로 삼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브 몽땅(1921~1991). 영화배우 보다는 샹송가수로 더 친숙할지 모를 그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존경받는 지식인으로 기억된다. 에디뜨 피아프의 후원 아래 그녀와 공연한 영화 ‘밤의 문’에 삽입된 불후의 명곡 ‘고엽’을 불러 일세를 풍미했다. 마릴린 먼로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으나 배우 시몬느 시뇨레와 결혼해 잘 살았다. 진보적 사상가로서 인권 및 평화, 반전운동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마리오와 짝을 이루는 조 역의 샤를 바넬(1892~1989). ‘공포의 보수’에서 가장 빛나는 연기력을 보여준 인물이다. 배짱 있는 건달에서 한순간에 겁쟁이로 변하는 나약한 모습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을 잘 표현한 그의 연기는 칸의 극찬을 받았다. 마리오를 짝사랑하는 여급 린다 역의 베라 클루조(1913~1960). 브라질 출신인 그녀는 이 영화의 감독 앙리 조르주 클루니의 실제 부인이었다. 육감적인 외모를 지닌 이 여배우는 안타깝게도 47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요절하고 말았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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