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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⑯ - 재와 다이아몬드

기사승인 2019.01.21  10:3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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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⑯ - 재와 다이아몬드
 
 
  - 제작 : 1958년, 폴란드
  - 감독 : 안제이 바이다
  - 배우 : 즈브그니예프 시블스키, 에바 그르지제브스카 외
  - 필름 : 흑백
  - 상영시간 : 105분
  - 수상 : 베니스영화제 국제비평가상, 밴쿠버영화제 대상
 
 
 
 폴란드는 전후 유럽영화사에서 주목할 만한 역사를 써 내려간 나라다. 그 시작은 1950년대 새로운 영화그룹으로 출현한 이른바 ‘폴란드학파’에서 비롯된다.
 
소련의 억압과 검열 아래 예술이 이념의 선전도구에 머물러 있던 50년대 중반의 동유럽. 국립영화학교 출신이 주축이 된 폴란드 2세대 영화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으로 자국의 역사와 현실을 기록하려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폴란드영화 부흥의 주역 안제이 바이다 감독이 있었다.
 
전후 폴란드의 비극을 압축적으로 묘사한 ‘재와 다이아몬드(Ashes & Diamonds)'는 거장 안제이 바이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작품이자 폴란드 영화를 저울질하는 시금석과도 같은 영화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는 물러갔지만 그로부터 시작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피비린내 나는 대결과 비극적 결말을 묘사한 ‘재와 다이아몬드’는 좌・우 이념의 갈등 속에서 가슴 아픈 역사를 써야했던 우리들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폐허에 새겨진 폴란드의 슬픈 초상화
 
 폴란드 작가 예르지 안제예프스키의 동명소설을 각색한 ‘재와 다이아몬드’는 나치 패망직후 이데올로기 대립이 불러온 폴란드의 정치적, 도덕적 혼란 상태를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다.
 
화면 가득한 바이다 감독 특유의 상징과 은유, 빛과 어둠을 교차시키는 선 굵은 조명과 복고적인 카메라 샷, 현실세계와 주관적인 표현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갱스터 영화를 연상시키는 시퀀스, 개성 넘치는 캐릭터는 ‘재와 다이아몬드’를 성공한 작가주의 영화의 반열에 올려놓은 요인들이다.
 
영화의 주인공 마치엑(즈브그니예프 시블스키)과 안제이(아담 파블리코프스키)는 민족진영의 무장저항 조직원. 두 사람은 정치적 노선이 다른 공산진영의 노동당 비서 슈추카(바클라프 셰진스키)를 암살하는 임무를 맡는다.
 
나치의 항복 선언이 발표되던 날, 마치엑과 안제이는 이중첩자 노릇을 하는 시장의 비서 드레브노브스키(부그밀 코비에라)의 안내를 받아 슈추카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을 급습한다. 하지만 잘못된 정보로 인해 그들은 독일에서 귀환한 공장노동자 두 명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른 채 호텔 ‘모노폴’로 숨어든다. 살육의 현장을 찾은 슈추카는 “언제까지 이런 죽음이 되풀이 되어야 하느냐.”며 격앙된 목소리로 울분을 토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폴란드를 위한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답한다.
 
그날 밤. 호텔에서는 해방 기념 연회가 열린다. 마치엑은 그곳의 바에서 일하는 미모의 여급 크리스티나(에바 크르지제브스카)에게 수작을 걸며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남자의 그런 모습이 싫지 않은 크리스티나도 마치엑의 농지거리를 적당히 받아준다. 마침 노동당 비서 슈추카도 연회 참석차 호텔에 투숙하고 그를 목격한 마치엑은 슈추카의 옆방을 예약한다.
 
한편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고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현실에 안제이는 깊은 회의를 느낀다. 그런 안제이를 향해 조직의 대장은 “지금의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오직 투쟁만이 있을 뿐이며 거기에 선택의 여지는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주지시킨다. 대장은 마음이 흔들리는 안제이를 다른 조직의 책임자로 배치시킨다.
 
새로운 조직의 지휘관으로 떠나게 된 안제이를 만난 마치엑은 끝까지 암살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거사를 몇 시간 남기지 않은 마치엑은 크리스티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밤 10시가 되어 일을 끝낸 크리스티나는 마치엑의 방을 찾아오고, 두 사람은 짧지만 따뜻한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은 크리스티나는 홀로 남겨진다는 것의 의미를 잘 알기에 이별을 두려워 하지만 서로의 갈 길이 다름을 받아들인다.
 
크리스티나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영혼의 위안을 받은 마치엑은 일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마치엑은 “더는 사람을 죽이며 도망 다니는 짓은 하기 싫다.”고 안제이에게 토로한다. 사랑이란 것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살아왔지만 크리스티나와의 만남 이후 평범한 삶
을 갈구하게 된 마치엑. 안제이는 그런 마치엑을 향해 “누구도 강요하지 않아. 이건 네 스스로 나선 일”이라며 “네가 군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는 말을 남긴 뒤 작별한다. 마치엑은 고뇌에 빠지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는 주역이 되겠다는 야망에 집착한 나머지 결국 암살임무를 실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스페인과 러시아에서 파시스트들과 싸우며 조국의 해방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해 온 슈추카는 이상적인 사회주의 유토피아의 건설을 꿈꾸는 사려 깊은 혁명가다. 전쟁의 승리와 함께 러시아 공산당의 고위간부로 임명되어 조국으로 돌아온 슈추카에게는 어두운 가족사가 있다. 그의 아내 마리아는 독일군의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고 어린 아들 마렉은 처제인 카타치나가 데려다 키웠다. 그 카타치나의 남편은 다름 아닌 슈추카의 암살을 지휘하는 지하조직의 대장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슈추카의 아들은 당연히 민족주의 진영의 전사로 성장한다. 부자간에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된 것이다.
 
호텔에 머물던 슈추카는 비밀경찰국으로부터 아들 마렉을 체포했다는 소식을 보고받는다. 마음이 급해진 슈추카는 경호 차량이 도착하기도 전에 호텔을 나서고, 마치엑은 어두운 밤 홀로 길을 나선 슈추카의 뒤를 쫓아가 권총으로 그를 살해한다.
 
호텔의 연회는 밤을 넘겨 이튿날 동이 틀 무렵까지 계속된다. 마치엑은 도시를 벗어나기 직전 다시 한번 크리스티나에게 작별을 고하고 호텔을 떠난다. 기차역 부근에 다다른 마치엑은 변절한 시장의 비서를 구타하는 안제이를 보게 된다. 안제이가 떠나자 이번에는 마치엑을 알아 본 비서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쫓아온다. 비서를 피해 달아나던 마치엑은 일단의 군인 무리와 부딪힌다. 마치엑을 수상히 여긴 군인들은 그를 붙잡으려 하고, 검문에 불응하여 달아나던 마치엑은 군인들이 쏜 총에 치명상을 입는다.
 
관통상을 입은 마치엑은 배를 움켜쥐고 계속 달린다. 피를 흘리며 쓰레기 야적장에 다다른 마치엑은 더 이상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고꾸라진다. 더러운 쓰레기 더미 위를 기어가던 마치엑의 사지는 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이내 마치엑은 숨을 거두고 황량한 벌판 위에 버려진 그의 주검 위로 새까만 까마귀 떼가 날아든다.
 
“그때가 좋았지”
 
 영화의 제목 ‘재와 다이아몬드’는 19세기 폴란드의 낭만주의 시인 치프리안 노르비트의 시 구절에서 따왔다. ‘조국을 위해 자신을 불태워 재가 될지언정 그 가치는 영원한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마치엑과 크리스티나가 폐허 속 납골당에 들어가 벽면에 새겨진 비문을 읽는 장면에서 시의 전문이 소개된다.
 
해방 공간의 하루 밤과 낮 사이의 이야기를 다룬 ‘재와 다이아몬드’는 어둡고 침통한 질문으로 시작한다. 정치적 테러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노동자의 시신 앞에서 동료 노동자들은 ‘언제까지 이 죽음의 파티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분노에 찬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은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말뿐이다. 암울한 폴란드의 미래를 암시하는 이 질문과 답을 통해 관객은 불행한 폴란드의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민족진영의 일원으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해온 마치엑과 안제이. 그들은 호텔 바에서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은 죽고 없어진 동지들의 자랑스러운 이름을 부르며 그들은 “그때가 좋았지”라고 위로하듯 말한다. 같은 시각. 호텔 방의 공산당원 슈추카 역시 동료당원과 함께 과거 조국해방을 위해 투쟁하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들 역시 말한다. “그때가 좋았지”라고. 그러나 하나의 목표가 소멸된 순간 정치적 이념에 따라 어제의 동지는 오늘의 적이 되어 갈라선다. 진영의 논리가 절대 선으로 등장하고 개인의 선택은 무력해진다.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세계
 
 

   안제이 바이다(1926~2016)감독은 굴곡진 폴란드 현대사와 늘 함께 했던 인물이다. 16세 때부터 레지스탕스에 가담하여 저항 활동을 한 그는 크라쿠프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국립영화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폴란드영화의 아버지 알렉산더 포드 밑에서 조감독으로 일하다 1955년 영화 ‘세대’로 감독 데뷔했다. 이후 폴란드학파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동구권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 넣는 주역이 된다.
 
바르샤바 유대인의 무장봉기를 그린 영화 ‘지하수로(1957)’가 잉베르 베리만 감독의 ‘제7의 봉인’과 더불어 칸영화제 심사원상을 공동수상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그는 후속 작품 ‘재와 다이아몬드’를 통해 또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공산당을 비판적으로 표현했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에 칸영화제에 출품되지 못했다. 대신 베니스영화제에는 경쟁작 출품이 아닌, 일반 상영작으로 소개됐다.
 
폴란드 연대노조와 민주주의 운동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바이다 감독은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되자 망명길에 올라 유럽을 전전했다. 1989년 귀국한 그는 바웬사 대통령의 당선을 후원하고, 그 자신 역시 상원의원에 당선돼 정치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낭만적이며 극적이고,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시각양식의 활용을 선호했던 바이다는 1981년 다큐멘터리 영화 ‘철의 사나이’로 칸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으며 평생 영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아카데미 공로상과 2006년 베를린영화제 명예 금곰상을 수상했다.
 
‘재와 다이아몬드’는 바이다의 영화임과 동시에 주연으로 나온 즈브그니예프 시블스키(1927~1967)의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겠다는 이상주의에 빠진 젊은 암살자 마치엑을 연기한 시블스키는 매우 혁명적인 연기스타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영화 ‘이유 없는 반항(1955)’에서 보여준 제임스 딘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바이다 감독은 시블스키를 통해 영웅과 충동적인 반항아의 경계 위에 서 있는 위태로운 젊은 전사의 이미지를 창조해냈다.
 
입에 문 성냥개비, 야전잠바와 색이 들어간 안경, 입가에 머무는 야릇한 웃음, 장난기 섞인 신체언어와 그 안에 드리운 연민의 정서는 전후 폴란드 젊은 세대들이 겪는 혼란과 갈망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그는 40이라는 짧은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영원한 폴란드 영화의 전설로 남은 인물이다. 1967년 1월 8일, 보르츠와프 역에서 달리는 기차에 뛰어오르는 신을 찍던 그는 그만 사고로 기차에 깔려 죽고 말았다.
 
마치엑과의 짧은 사랑 뒤 이별하는 크리스티나를 연기한 에바 크루지제브스카(1939~2003). 그녀는 바이다 감독이 발굴한 신성이다. 영화 촬영을 앞두고 참신한 얼굴을 원하던 바이다 감독은 폴란드 전역의 영화학교를 뒤져 그녀를 찾아냈다. ‘재와 다이아몬드’는 견습생 수준에 머물러 있던 그녀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준 잊지 못할 작품이 됐다. 그녀는 이 영화로 프랑스아카데미가 주는 크리스털스타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는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라 로렌의 이미지를 뒤섞어 놓은 듯한 매력적인 외모의 그녀는 2003년 남편과 함께 스페인에 머물던 중 교통사고로 숨졌다.
 
‘재’와 ‘다이아몬드’
 
모든 사람들이
악몽과 헛된 꿈으로 분열될 때
누구도 월계관을 얻지는 못하리라’
 
- 킹크림슨 ‘에피타프’ 중에서
 
전사들이 흘린 피를 폴란드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바이다 감독의 영화 속 해석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조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일생을 바친 좌파 공산진영의 슈추카는 아들과 재회하기 직전 우파 저격범의 총에 죽게 된다. 그가 죽는 순간 ‘하늘에서는 폭죽이’ 터진다. 슈추카를 쏜 우파의 젊은 테러리스트 역시 군인들의 총을 맞고 ‘더러운 쓰레기더미에서’ 발버둥 치다 고통스럽게 죽는다. 두 죽음의 장면에 드리워진 강한 상징에도 불구하고 바이다 감독은 두 사람 모두를 희생자로 기록할 뿐 누가 ‘재’가 되고, 누가 ‘다이아몬드’로 남았는지 답하지 않는다. 모순과 부조리로 얼룩진 이 세상에서 명쾌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무심한 역사 또한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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