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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⑭ - 모던타임스

기사승인 2019.01.01  10: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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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⑭ - 모던타임스
 
 
  - 제작 : 1936년, 미국
  - 감독 : 찰리 채플린
  - 배우 : 찰리 채플린, 파울레트 고다드, 타이니 샌포드 외
  - 필름 : 흑백․무성
  - 상영시간 : 87분
  - 특기사항 : 1992년 감독들이 뽑은 세계 10대 영화 중 6위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지 선정)
 
 
 
 한번쯤은 무성영화를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래서 대상작 몇 편을 놓고 숙고했다. 첫 번째 후보는 미국영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D. W 그리피스가 감독한 ‘국가의 탄생(1915)’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재건설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159분짜리 대작이다.
 
두 번째 후보는 독일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19)’. 최초의 호러무비로서 표현주의 영화의 텍스트가 된 작품이다. 강렬한 시각적 스타일과 기괴한 영상미가 뒤섞인 독특한 스타일이 눈길을 끈다.
 
세 번째 작품은 구 소련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이 만든 ‘전함 포템킨(1925)’이다. 해군 병사들의 선상반란과 오데사 항구의 대학살을 몽타주 기법으로 표현한 이 불세출의 명작은 ‘영화처럼 뛰어난 선동무기는 없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잔 다르크의 수난(1928)’을 후보로 올려보았다. 극단의 클로즈업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덴마크 거장 칼 데어도어 드라이어의 난해하고 실험적인 영화다. 잔 다르크의 종교재판 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대사 없이 빛과 그림자, 표정만으로도 얼마나 충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수작이다.
 
결론은 찰리 채플린
 
고민 끝에 필자가 선정한 영화는 위 대상에는 없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Modern Times)’다. 후보로 올린 네 편은 모두 세계영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작품들이다. 단순 감상 차원을 떠나 전공자들이 강의실에서 학문적으로 분석해야 할 만한 것들이어서 짧은 지면에 다루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조금은 유연해지기로 했다. 보다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되 그리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은 수준 있는 작품을 고르기로. 그래서 간택한 것이 ‘모던타임스’다. 이 정도라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리 채플린은 발성영화를 꽤나 싫어한 사람이다. 1927년 유성영화가 세상에 나오자 그는 “영화는 끝났다. 더 이상 사람들은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라며 은퇴의사까지 밝혔다. 그러나 당대의 천재 찰리 채플린도 시대의 흐름을 거부하지는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시점에 내놓은 ‘모던타임스’에서 그는 유성영화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극히 소수 장면에 사람의 음성을 삽입했고 노래하는 자신의 육성도 최초로 담았다. ‘모던타임스’는 찰리 채플린이 만든 최후의 무성영화로 기록된다. 배우 목소리가 일부 녹음되기는 했지만 대부분 대사 없이 촬영했고 필요한 해설은 모두 자막 처리했다. 그래서 ‘모던타임스’는 무성영화로 분류된다.
 
찰리 채플린은 평소 가난과 자본, 신분과 계급의 모순, 종교권력의 폐해 등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 동일선 상에서 실업과 파업, 일자리를 빼앗는 기계의 등장에 따른 노동자의 애환을 실감나게 표현한 영화가 ‘모던타임스’다. 스토리를 보자.
 
기계 앞에 말살되는 인간의 본성
 
배경은 대공황의 광풍이 휘몰던 1930년대 미국. ‘떠돌이’ 찰리(찰리 채플린/극 중 이름은 없지만 편의상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는 전기철강회사에서 기계 부품조립을 담당하는 직공이다. 그와 동료들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공급되는 부품을 두 개의 스패너만으로 계속 조이는 단순노동에 종사한다. 노동자들은 조금의 쉴 틈도 없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부품조립에 얼이 빠질 정도다. 회사 사장은 공장 내부에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 감시를 한다. 사장의 감시는 도를 넘어 화장실 안에서의 행동까지 통제한다.
 
오후에도 공장의 작업량은 계속 증가되어 모든 조업은 최고 속도로 진행된다. 벌이 눈앞에 웽웽거려도 쫓아내지 못한다. 잠시라도 딴짓을 하면 옆의 동료가 그만큼 곤욕을 치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진땀을 빼는 그 시각, 사장은 집무실에서 한가롭게 퍼즐놀이를 즐기고 있다. 무의식적이고 반사적인 행동으로 손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볼트를 죄던 찰리는 광속도로 따라오는 기계의 속도에 힘이 부치자 아예 컨베이어벨트에 올라타 볼트를 죈다. 그러다 기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찰리는 톱니 사이에 끼어서도 계속 볼트를 조인다.
 
볼트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온 사물만 보면 습관적으로 조이는 버릇이 생긴 찰리는 동료 노동자의 젖꼭지, 귓불, 콧방울만 보아도 스패너를 들이댄다. 또 여직원 치마에 달린 엉덩이 단추를 조이려고 달려들어 한바탕 소동도 일으킨다. 직업병 증세가 심해진 찰리는 급기야 거리로 뛰쳐나가 소화전 볼트도 풀려하고 지나가는 귀부인의 앞가슴을 향해 돌진한다. 다시 공장으로 돌아와서는 기계의 조정 장치들을 망가뜨리고 통제시스템마저 마비시킨다. 공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결국 찰리는 병원으로 후송된다. 신경쇠약 치료를 받은 찰리는 퇴원하지만 실직자가 된다. 그사이 경제공황 여파로 거의 모든 생산시설은 폐업되고 거리는 실업자로 넘쳐난다. 그런데 길을 걷다 인파에 떠밀린 찰리는 얼떨결에 데모 행렬의 선두에 서게 된다. 그 일로 찰리는 폭동 주모자로 인식되어 수감된다.
 
장면이 바뀌어 카메라는 맨발의 한 부랑아 소녀(파울레트 고다트)를 비춘다. 어머니가 죽고 실업자인 아버지 밑에서 빈곤한 생활을 하는 이 소녀는 바나나를 훔쳐 동네 아이들과 동생, 아버지에게 나눠준다. 어느 날, 폭동현장에 달려간 소녀는 총을 맞고 쓰러져 숨진 아버지를 발견한다. 졸지에 고아가 된 소녀와 동생들은 경찰에 인계되고 소녀는 도망친다. 경찰은 소녀를 지명수배한다. 한편 찰리는 수감 중 마약범이 설탕그릇에 몰래 감춘 코카인을 잘못 먹고 취하여 제때 감방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때 죄수 몇 명이 보안관과 간수들을 총으로 협박하며 탈주하는 사건이 터지고, 약기운에 빠진 찰리가 나타나 그들을 제압한다. 찰리는 공로를 인정받아 사면된다. 찰리는 감방생활이 오히려 안락하고 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배 만드는 조선소에 취업한 찰리는 건조 중인 배를 침몰시키는 엉뚱한 사고를 저질러 쫓겨난다. 그는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같은 시각. 맨발 소녀는 빵을 하나 훔쳐 달아나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찰리와 부딪혀 넘어져 붙잡힌다. 찰리는 경찰에게 자신이 빵을 훔친 범인이라고 거짓말하고 소녀 대신 체포된다. 하지만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방면되자 이번에는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 무전취식을 하다 체포된다. 찰리와 소녀는 범인 호송차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둘은 호송차가 사고로 전복된 틈을 이용해 함께 도주한다.
 
찰리는 한 백화점의 야간경비원으로 취직한다. 찰리는 백화점이 문을 닫자 소녀를 데려와 좋은 음식을 먹이고 완구코너에 가서 재밌게 논다. 롤러스케이트도 탄다. 그리고 침구전시장에 있는 멋진 침대에 소녀를 재운다. 그날 밤 백화점에 강도가 들어 찰리를 위협하고 물건을 훔친다. 그런데 강도 중 한 명이 철강공장에서 함께 일을 했던 동료 빅 빌(타이니 샌포드)이었다. 찰리는 실직 후 강도로 전락한 동료와 밤새 럼주를 마시고 취한다. 백화점은 난장판이 되고 찰리는 다시 경찰서로 연행된다.
 
열흘 뒤 풀려난 찰리는 밖에서 기다리던 맨발의 소녀와 감격의 재회를 한다. 찰리는 그사이 소녀가 마련해 둔 집으로 향한다. 그곳은 다 부서져 가는 허름한 판잣집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천국과 다름없는 안식처였다. 전기철강 공장에 재취업 한 찰리는 오랫동안 정지돼 있던 기계를 수리하다 또 말썽을 일으킨다. 게다가 다시 파업이 벌어져 찰리는 그날로 쫓겨난다. 엎친 데 덮친다고, 찰리는 길을 걷다 판자를 밟는데 그만 벽돌이 튕겨나가는 바람에 또 시위가담자로 오인돼 경찰서에 갇힌다.
 
소녀는 바의 댄서로 취직해 많은 인기를 얻게 된다. 출소한 찰리는 소녀의 주선으로 그녀와 같이 일하게 된다. 이곳에서 찰리는 쇼맨으로서 감춰진 진가를 발휘한다. 우스꽝스러운 동작과 코믹한 노래에 손님의 폭소가 터지고 앙코르 세례가 이어진다. 모처럼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은 찰리는 사장과 장기계약을 맺기로 한다. 바로 그때 소녀를 수배 중인 경찰이 바에 들이닥치고 찰리는 소녀를 도와 그곳을 탈출한다. 찰리에게 주어진 모처럼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가 버린다.
 
밤길을 걸어 어딘지 모를 곳에 도착한 찰리와 소녀. 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언덕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본다. 노력해도 소용없는 삶에 지친 소녀는 울고 만다. 찰리가 따뜻한 말로 소녀를 다독인다. “힘내요! 죽는단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린 잘 버틸 거예요,” 소녀와 찰리는 어딘가에 존재할지도 모를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향해 용기 내어 다시 길을 나선다. 손을 꼭 잡고 걷는 두 사람의 등 뒤로 이른 새벽 여명이 밝아온다.
 
웃음, 그 뒤에 감춰진 눈물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1889~1977)이 남긴 이 명언으로 우리는 그의 영화 철학을 온전히 읽을 수 있다. 그는 희극의 이면에 감춰진 슬픔을 표현하는데 있어 독보적인 배우였다. 자신은 무대에서 상대를 웃기지만 그것을 보는 이들은 울게 만드는 비범한 재주, 그 자신은 슬프게 연기하지만 그를 보고 있는 이들은 행복에 빠지게 하는 묘한 재능을 가진 그는 자빠지고 나뒹구는 슬랩스틱 블랙코미디의 일인자였다.
 
통이 헐렁한 바지, 짧고 꽉 끼는 양복상의, 지팡이와 작은 중절모, 앞 코가 눌린 긴 구두, 칫솔 모양의 콧수염은 누구나 아는 찰리 채플린의 트레이드마크다. 키 165cm의 이 왜소한 사나이는 그 체구에 다 담지 못할 끼와 넘치는 재능을 타고난 예술인이었다. 집시의 피가 흐르는 그는 5세 때부터 무대에 오르기 시작해 춤과 노래, 광대극, 팬터마임 등을 몸에 익혔다. 그는 자신이 만든 거의 모든 영화의 제작, 감독, 각본, 주연, 음악을 도맡는 천재이자 완벽주의자였다.
 
‘황금광시대(1925)’ ‘서커스(1928)’ ‘시티라이트(1931)’ ‘모던타임스(1936)’ ‘위대한 독재자(1940)’ ‘살인광시대(1947)’ ‘라임라이트(1952)’ 등 그의 대표작들은 주로 제국주의의 횡포,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소외와 차별 등 매우 민감한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현실비판 인식에 부담을 느낀 미국 정부는 그를 공산주의자로 내몰았다. 그리고 ‘라임라이트’ 시사회를 위해 그가 영국에 건너간 사이 귀국불허 조치를 내려 영구 추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영화는 한동안 극장상영이 불허됐다. ‘모던타임스’는 찰리 채플린 탄생 100주년을 맞은 1989년에야 개봉됐고, 당시 27만 명이 관람하는 대박 흥행기록을 보였다. 미국도 영화발전에 끼친 찰리 채플린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 1972년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여했다. 시상식 참석을 위해 20년 만에 미국 땅을 밟은 찰리 채플린은 감격에 겨워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영화 이외엔 다른 관심사가 없었을 것만 같았던 찰리 채플린. 그러나 여자 편력에 관한 한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요란한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 주변에 늘 여자가 따랐고, 혼외자식 문제로 골치를 앓았다. 그는 평생 네 번의 공식결혼을 했다. 공교롭게도 배우자들은 모두 10대 소녀들이었다. 아역배우 출신인 첫 번째 아내 밀드레이 해리스는 결혼 당시 16세였고 두 번째 아내 리타 그레이도 16세였다. ‘모던 타임스’에서 맨발 소녀로 나온 파울레트 고다드(사진)는 영화 출연 당시 세 번째 부인 신분이었다. 19세 때 찰리 채플린과 결혼해 6년을 살았다(그녀는 이혼 후 ‘개선문’의 작가 레마르크와 재혼했다). 찰리 채플린이 죽을 때까지 해로한 네 번째 부인 우나 오닐은 18세 때 결혼했다. 당시 찰리 채플린은 54세로, 장인인 극작가 유진 오닐보다 한 살 어렸다. 둘은 8명의 자식을 낳았다. 큰 딸이 영화 ‘닥터 지바고(1965)’에서 지바고 아내 토냐 역으로 출연한 제럴딘 채플린이다. 찰리 채플린은 1977년 스위스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8세. 그의 유해는 자택 근처 묘지에 안장됐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찰리 채플린의 시신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돈을 노린 도굴꾼의 소행이었다. 범인들은 체포됐고 채플린 시신은 나중에 제네바 호수가의 한 농장에서 발견됐다. 아내 우나 오닐은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2m 두께 콘크리트로 관을 제작해 시신을 다시 매장했다.
 
‘모던’한 세상, 왜 불행한가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모던’해진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디지털 세상이지만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은 언제나 그대로인 게 문제다. 문명이 진화할수록 인간은 더 소외받고 불행을 느낀다. 모순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은 참으로 불가해한 곳이다.
 
2018년 12월 11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운송설비를 점검하는 24세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석탄운반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다. 찰리가 컨베이어 기계에 빨려 들어가 볼트를 죄던 장면이 떠올랐다. 찰리 채플린이 수십 년 전 세상을 향해 던진 경고가 아직도 유효한 곳,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다. 지하의 찰리 채플린도 슬퍼할 일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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