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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㉘ - 와일드 번치

기사승인 2019.05.21  10: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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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00년, 인생100년 ㉘ - 와일드 번치
 
 
 -  제작 : 1969년, 미국
 -  감독 : 샘 페킨파
 -  배우 : 윌리엄 홀든, 어네스트 보그나인 외
 -  필름 : 컬러
 -  상영시간 : 143분
 -  수상 : 전미 비평가협회 촬영상
 
 
 
 홍콩 무협영화가 붐을 이루기 전 한국 사람에게 가장 인기 있던 액션장르는 서부영화였다. 서부 개척시대 전설적인 총잡이로 이름을 날린 제시 제임스, 와이어트 어프, 닥 할러데이, 버펄로 빌즈, 자니 링고, 빌리 더 키드,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등 실존했던 건 파이터들의 실명이 등장하기도 했던 정통 서부영화는 백인 우월주의와 보수적 색채가 농후한 미국식 영웅담 일색이었지만 수컷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권선징악의 통쾌함이 주는 카다르시스가 있어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석양을 등지고 나타난 방랑의 건맨. 조용히 마을을 지나고 싶었던 이 사나이는 선량한 주민과 아녀자를 괴롭히는 못된 무뢰배의 응징에 나선다. 늘 그렇듯, 1대 다수의 혈투가 벌어지고, 작열하는 태양 아래 떠돌이 총잡이의 ‘더블 배럴 샷건’과 ‘레버 액션 라이플’이 불을 뿜으면 마을에는 평화가 찾아온다. 여인의 고혹적인 눈빛마저 외면한 총잡이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채 말을 타고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대략 이런 흐름으로 전개되는 것이 웨스턴 영화의 패턴이다.
 
수정주의 서부극의 등장
 
1903년 ‘대 열차 강도’로 서부영화의 포문이 열린 이래 존 포드 감독으로 상징되어 온 미국식 서부영화는 대개 명사수 총잡이가 정의와 법을 수호하는 영웅으로 등장한다. ‘역마차(존 포드/1939)’, ‘하이 눈(프레드 진네만/1952)’ ‘셰인(조지 스티븐스/1953)’ 같은 작품이 좋은 본보기다. 다만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흑인 등 소수자를 악의 무리로 규정하고, 우월한 백인이 세상의 질서를 잡아간다는 식의 줄거리는 늘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부영화의 인기는 한동안 시들 줄 몰랐다.
 
 국식 웨스턴이 인기를 끌자 1960년대 중반에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으로 대변되는 이탈리아식 서부극, 즉 ‘마카로니 웨스턴’ 이라 불린 새로운 스타일의 서부영화가 등장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리게 하는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를 비롯해 ‘황야의 은화 1불’ ‘장고’ 같은 작품이 바로 그런 영화들이다.
 
마카로니 웨스턴은 미국식 웨스턴과 달리 거액의 돈과 황금을 둘러싸고 죽고 죽이는 싸움을 벌이는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그 과정에는 사나이들의 이해와 탐욕, 음모와 배신이 난무한다. 일종의 ‘더티 웨스턴’이라 할 수 있겠다. 내용은 좀 추잡하지만 망토와 롱코트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프랑코 네로, 줄리아노 젬마의 아우라, ‘방랑의 휘파람’으로 상징되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멋진 음악은 팬들을 사로잡고도 남았다.
 
한동안 주가를 올리던 서부영화는 1960년대 후반을 향하면서 조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저변에는 미국사회의 시대정서가 자리한다. 당시 미국사회는 베트남전 확산과 반전여론, 흑백갈등의 고조, 동성애와 히피문화 등으로 어수선했다. 백인 중심의 ‘위대한 아메리카’ 신화는 퇴색하고 있었고 미국식 개인주의와 개척시대 역사에 대한 찬양에 동조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것조차 불분명해진 시대에 권총 한 자루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만화 같은 발상은 더 이상 먹혀들지 않았다. 게다가 서부극의 대부 존 포드조차 1962년 내놓은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를 끝으로 이미 정통 서부영화와의 이별을 고한 터였다.
 
시들해진 서부극 장르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람이 샘 페킨파(1925~1984)다. 존 포드의 적자로 불리던 그는 1969년, 서부 개척시대 최후의 총잡이를 다룬 영화를 만든다. ‘와일드 번치(The Wild Bunch)’다. 감독 스스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악인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 이 영화는 기존의 정통 웨스턴과는 궤를 달리하는 스토리라인과 촬영, 편집기법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이름하여 ‘수정주의 서부극’이 탄생한 것이다.
 
‘폭력의 피카소’ 샘 페킨파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는 마지막 건 파이터 세대인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가 주축이 되어 1899년 결성한 갱스터 조직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일명 ‘오클라호마 롱 라이더스’라 불렸던 이 조직은 은행털이와 열차강도를 일삼은 악명 높은 갱단이었다. 이전의 서부극이 악당을 벌하는 정의의 심판자들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와일드 번치’는 철저히 악당들의 영화다. 낭만적인 영웅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악당들만 존재한다. 그리고 피범벅 잔인한 살육장면이 추가된다.
 
고전주의 웨스턴과 달리 백색 인종의 만행을 고발하며 반 영웅적, 사실주의적, 현실 비판적 메시지를 담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 계열의 이런 서부극을 일컬어 세인들은 ‘수정주의 서부극’이라 이름 지었다. 1992년 히트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에 이르기까지, 이후 나온 서부영화들은 거의 수정주의 서부극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 원조가 샘 페킨파인 셈이다.
 
영화는 와일드 번치 갱단이 그들의 조직원을 살해한 멕시코 반군과 갱단을 쫓는 현상금 사냥꾼을 상대로 벌이는 유혈 참극을 그리고 있다. 리얼리티 만점의 총격전으로 스크린 전체를 낭자한 유혈로 도배한 이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국내 개봉 때는 상당 분량이 잘려나가기도 했다.
 
‘피의 무도회’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와일드 번치’의 클라이맥스는 영화 후반부 대혈투에서 그 방점을 찍는다. 권총과 라이플, 다이너마이트가 작렬하고 수백 발의 탄환을 쏟아내는 게틀링 기관총이 등장하는 순간 극장은 피의 향연으로 물들었다. 여기에 당시로선 혁명적이랄 수 있는 슬로모션 촬영기법을 구사하면서 샘 페킨파는 처참한 죽음의 순간을 매우 서정적이며 미학적으로 그려낸 최초의 감독이 된다.
 
이 한 편의 영화로 ‘죽음조차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게 된 샘 페킨파는 일거에 논쟁적인 감독의 지위로 격상한다. 그는 진정 폭력을 카다르시스로 승화시킬 줄 아는 감독이었다. 그에게는 ‘폭력미학의 거장’ ‘폭력의 피카소’라는 칭호가 붙게 된다. 그는 기왕 존재할 수밖에 없는 폭력이라면 가능한 멋지고 아름답게 표현하자는 주관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같은 그의 철학은 후대 영화인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마틴 스콜세지, 오우삼, 쿠엔틴 타란티노, 박찬욱 등은 샘 페킨파가 아로새긴 피의 얼룩 아래서 그를 영화적 스승으로 모시며 성장한 인물들이다.
 
‘내일 없는’ 마초들의 사생결단 유혈극
 
1913년, 저물어 가는 서부시대의 텍사스. 노쇠한 총잡이 파이크(윌리엄 홀든)가 이끄는 갱 조직 ‘와일드 번치’ 일당 여덟 명이 금품강탈을 위해 철도사무소를 습격한다. 철도회사가 고용한 현상금 사냥꾼들이 매복해 있는 줄 모르는 파이크와 그의 동료들은 은괴를 빼앗은 뒤 막 그곳을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반대편 건물 옥상에 매복한 적들을 발견한 파이크 일당은 마침 예배를 끝내고 거리행진에 나선 주민들을 방패삼아 탈출을 시도한다. 이윽고 피아를 가릴 수 없는 무자비한 총격전이 시작된다. 야비한 도적떼와 현상금에 눈이 먼 사냥꾼들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치열한 싸움을 펼친다. 마을은 피로 얼룩진 쑥대밭이 된다.
 
 갱 단원 3명이 사살되었지만 파이크와 더치(어네스트 보그나인), 엔젤(제이미 산체스), 라일 고치(워렌 오츠)와 텍터 고치(벤 존슨)형제 등 다섯 명은 무사히 사지를 빠져나온다.
 
현상금 사냥꾼 무리를 이끄는 손튼(로버트 라이언)은 과거 파이크와 한솥밥을 먹었던 친구사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손튼은 한 달 안에 파이크를 잡아들이지 못하면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할 신세다. 그는 추격대를 정비해 파이크의 뒤를 쫓는다.
 
은신처에 도착한 파이크 일당은 목숨 걸고 강탈한 은괴가 쓸모없는 고철덩어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들은 다시 국경수비대의 급료를 탈취할 목적으로 국경을 가로지르는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멕시코로 잠입한다.
 
갱단 일원인 엔젤의 고향마을에 도착한 파이크 일행은 그곳 주민들이 반군 두목 마파치 장군(에밀리오 페르난데스)의 학정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엔젤은 자신의 애인 테레사가 마파치의 정부가 되었다는 사실에 치를 떤다.
 
정황파악을 위해 마파치의 아지트를 찾은 와일드 번치. 그곳에서 옛 연인 테레사를 만난 엔젤은 마파치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총으로 쏘아 죽인다. 곧 파이크 일행은 반군에 포위되지만 마파치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간다. 마파치는 오히려 국경을 통과하는 미군의 무기 수송열차를 탈취해 달라는 부탁을 하며 와일드 번치와 동맹을 맺는다.
 
파이크는 금을 받는 조건으로 제의를 수락한다. 단, 엔젤은 고향의 동포들이 마파치와 싸울 수 있도록 금 대신 총 한 상자와 탄약을 가져가겠다고 파이크에게 말한다. 일당이 따뜻한 목욕과 술, 여자에 빠져 있는 사이 손튼의 추격대는 턱밑까지 따라붙는다. 손튼은 파이크가 무기를 탈취할 것을 예상하고 미리 무기 수송열차에 오른다.
 
신형 무기와 탄약을 잔뜩 실은 열차가 지나가는 날. 왕년에 파이크와 한 패였던 늙은 총잡이 사이크스(에드먼드 오브라이언)가 합류한 가운데 일당은 작전을 개시한다. 기차가 잠시 멈춘 사이 열차에 잠입한 일당은 신참들로 구성된 경계병을 쉽게 제압한다. 열차가 분리돼 무기 칸이 떨어져 나간 사실을 뒤늦게 안 나머지 군인들과 손튼 추격대가 말을 풀어 뒤를 쫓지만 파이크 일당은 이들을 여유 있게 따돌린다.
 
한편 정규군과 전투 중인 마파치 반군은 화력의 열세로 퇴각을 거듭한다. 참담한 패배에 마파치는 무기가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반면 파이크는 마파치가 무기만 빼앗고 약속한 금은 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 무기 상자에 폭파장치를 연결한 뒤 반군을 협박한다. 하는 수 없이 약속한 금을 모두 건네주고 무기를 인수받은 마파치.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에 엔젤이 원주민들에게 넘겨준 무기 한 상자의 행방을 문제 삼아 엔젤을 감금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직면한 파이크는 고민에 빠진다. 그 와중에 사이크스는 손튼에게 쫓기던 중 총상을 입고 대열에서 이탈한다. 영리하고 찰거머리 같은 손튼의 성향을 잘 아는 파이크는 차라리 마파치의 소굴로 피신하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생각에 반군의 진지로 향한다.
 
그런데 마파치의 진영에 온 파이크 일행은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있는 엔젤을 목격한다. 파이크는 자신의 몫을 돌려줄 테니 엔젤을 풀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마파치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오히려 엔젤에게는 더 가혹한 고문이 가해질 뿐.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파티와 향락을 즐기는 마파치에 분노한 파이크는 중대결심을 한다.
 
파이크와 더치 그리고 고치 형제는 무장을 마치고 2백 명의 병력이 포진한 마파치의 소굴로 다시 들어간다. 파이크는 한 번 더 엔젤을 풀어줄 것을 요구하지만 오히려 마파치는 파이크가 보는 앞에서 엔젤의 목을 베어버린다. 순간 파이크의 총이 불을 뿜는다.
 
마침내 최후의 혈투가 시작된다. 2백 명에 포위된 네 명의 와일드 번치는 중과부족에도 불구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을 펼친다. 사방으로 피가 튀는 가운데 마파치의 졸개들은 벌떼처럼 덤벼든다. 고치 형제가 게틀링 기관총을 빼앗아 적에게 난사하다 벌집이 되어 숨지고, 더치는 폭약을 던지며 저항한다. 파이크 역시 게틀링의 방아쇠를 당긴다. 반군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나간다. 그러다 파이크는 소년병이 뒤에서 쏜 총을 맞는다. 적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나뒹구는 사이 온몸에 총상을 입은 파이크와 더치도 피투성이가 되어 숨진다.
 
총성이 멎고, 마파치 기지에는 피 냄새를 맡은 독수리 떼가 몰려든다. 그때까지 산 위에서 양측의 교전을 지켜보고 있던 손튼은 기지로 내려온다. 처참한 죽음의 현장을 돌아보는 손튼. 머신 건의 방아쇠를 쥔 채로 죽어 있는 파이크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온다. 손튼은 파이크의 권총을 수습해 말없이 기지 밖으로 나온다.
 
시신 약탈을 마친 손튼의 졸개들은 현상금이 붙은 파이크 일당의 너덜너덜해진 시신을 말에 얹고 돌아간다. 한때 친구였던 파이크의 최후를 목격한 손튼은 허탈감에 빠져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그만 주저앉고 만다. 먼지 날리는 황야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가득 묻어난다.
 
저물어 가는 서부에 바치는 진혼곡
 
샘 페킨파에게 서부는 인정사정 볼 것 없는 막장 공간이다. 부녀자와 아이들, 노인은 죽이지 않으며 뒤에서 총을 쏘지 않는다는 식의 불문율은 그의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깡그리 죽어야 한다. 서부의 질서는 무덤 속에 던져졌고 질서가 허물어진 자리는 까마귀와 굶주린 독수리 떼로 넘쳐날 뿐이다.
 
시종 스피디한 줌인과 아웃으로 긴장감을 확대하고, 슬로모션으로 관객의 움츠러든 근육을 이완시키는 그의 연출은 가히 신공을 방불케 한다. 죽음의 순간조차도 황홀하게 만드는 영상,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멜로디로 채워진 여백은 비장미로 물씬하다.
 
그런 이유로 샘 페킨파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인물로 비난받기도 했다. 과연 샘 페킨파는 폭력을 미화할 목적으로 ‘와일드 번치’를 찍은 것일까. 그보다는 장엄한 파멸이라는 냉혹한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정의가 사라진 추악한 세상을 조소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는 승자와 패자도 없는 허망한 참극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냉정한 샘 페킨파도 종국에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던 마초들의 마지막 남은 영웅심을 들춰내 보여준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불나비처럼 사지로 뛰어드는, 명예와 의리를 중시하며 죽음을 두려워 않는 와일드 번치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 정도 선에서 샘 페킨파는 저물어가는 시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것이다. ‘와일드 번치’는 와일드 웨스트의 종언을 알리는 샘 페킨파의 슬픈 진혼곡(鎭魂曲)이자 조종(弔鐘)인 셈이다.
 
 

silverinews 진고개 신사 news1@silver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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