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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명곡 순례 (45) 용두산 엘레지 (1964년 作)

기사승인 2021.08.24  13: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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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봉산 작사 / 고봉산 작곡 / 고봉산 노래

▶▶트로트의 열풍이 계속되는 2021년, 우리 전통 가요 및 옛 가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보릿 고개 등 고난의 시대를 거치며 국민의 위로가 되어준 가요를 추억하며 1980년대 이전의 가요명곡을 돌아보기로 한다
 
1961년 ‘아메리카 마도로스’로 데뷔한 고봉산의 자작곡이다. 당시 유명한 작곡가와의 인연이 없던 고봉산은 홀로 작곡 공부를 했으며, 1964년 아세아레코드 최치수 사장이 용두산에 관한 노래 이야기를 하자 야심차게 내놓은 곡이 바로 ‘용두산 엘레지’다. 이 곡의 히트 이후 고봉산은 가수와 작곡가 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용두산 엘레지가 ‘동백 아가씨’나 ‘하숙생’처럼 우리 가요사 최고의 명곡으로 손꼽혀온 곡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많은 이들에게 재조명되고 있는 이유는 미스트롯의 송가인이 부르면서 젊은 층까지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송가인 뿐 아니라 최정자, 하춘화, 주현미 등 가창력 최고의 여성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여러 무대에서 후배 가수들이 즐겨 부르기도 했다. 그토록 여성가수들이 즐겨 부르고 애창한 노래가 된 것은 그만큼 이 노래가 가수들의 애절한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용두산 공원의 194 계단은 연인들이 사랑을 맹세하던 낭만의 장소이자 용두산의 랜드마크이다. 용두산 공원이 일제 강점기에 조성되고 그 시절 용두산 꼭대기에 일장기가 게양되었다는 아픈 사연이 있기도 하지만, 계단을 한발 한발 오르며 맹세했던 사랑이 노랫말처럼 무참히 깨져버린 아픔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용두산의 계단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모양새로 조금씩 바뀌어왔지만 계단에 어려 있는 사랑의 맹세는 어디로 도망가지 않고 누군가들의 추억에 묻혀있을 것이다.
 
사랑이 지금처럼 흔한 말이 아니었던 그때, 진정으로 사랑을 약속하며 용두산 계단을 올랐던 그 분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종종 용두산 엘레지를 열창하는 여가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지는 않을까?
 
 

silverinews 허길우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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