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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칼럼] 명곡 순례 (44)동백아가씨 (1964년 作)

기사승인 2021.08.20  1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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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산도 작사 / 백영호 작곡 / 이미자 노래

▶▶트로트의 열풍이 계속되는 2021년, 우리 전통 가요 및 옛 가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보릿 고개 등 고난의 시대를 거치며 국민의 위로가 되어준 가요를 추억하며 1980년대 이전의 가요명곡을 돌아보기로 한다
 
[▲이미자(좌)와 백영호(우)]
가요계의 찬란한 공식인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의 첫 시작을 알린 곡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작사가, 작곡가, 가수를 탄생시킨 명곡이다. 발표 이후 금지곡으로 묶이는 고난이 있었지만 이에 아랑곳없이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우리 가요 역사상 최고의 명곡으로 꼽히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는 최고의 작사가, 작곡가, 가수의 노래다. 이미자의 시대가 개막되었고, 늦깎이 작곡가로 출발한 백영호의 시대도 펼쳐지게 한 노래가 동백아가씨다. 꽃잎이 흩날리며 낙화하는 다른 꽃들과 달리 꽃송이 자체로 낙화하는 동백은 사랑과도 같다. 뿔뿔이 흩어져 버리는 마음이 아닌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통째로 바치는 순정이 아니겠는가.
 
작곡가 백영호는 그가 나고 자란 남쪽 바다 곁의 붉게 물든 동백을 보며 애절한 사랑의 멜로디를 떠올렸을까? 동백의 붉음이 그리움에 든 멍이라 여기며 감성 넘치는 가락을 떠올렸을까? 이 붉음이 훗날 동백아가씨가 금지곡으로 묶였던 이유라는 후문이 있기는 하지만 사유가 어찌되었건 동백아가씨를 애창하는 이들의 마음까지 금지시킬 순 없었다.
 
또한 제목이 촌스럽다 하여 레코드판 뒷면에 실렸다고 하나 이 또한 동백아가씨에 대한 국민적인 애정과는 별개였다. 작곡가 백영호는 직접 레코드판을 들고 다방이나 음악 감상실을 돌며 홍보에 나서며 노래를 알렸다고 하니 노래를 대중들에게 알리고자 했던 열정은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콧대만 높은 헛된 자존심이 아닌 이토록 길이 남을 명곡을 만들어낸 진정한 자존심을 보여준 백영호의 행보를 돌이켜 보며 생각에 잠긴다. 뒷면에 실리든, 앞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든 명곡은 어떻게 하여서든 결국 명곡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silverinews 허길우 news1@silverinews.com

<저작권자 © 실버아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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